월간동행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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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nnovate, 더 나은 의 (5)■ 바리새인의 가르침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43) ‘더 나은 의’ 를 추구하기 위한 다섯 번째 과정은 ‘원수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레위기의 율법을 언급하십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 19:18) 본래 하나님의 율법은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수도 갚지 말고 사랑하라"는 명령은 매우 부담스러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도 레위기의 말씀에 내포된 부담감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그 의미를 완화시켰습니다. 그들은 ‘네 몸과 같이’ 를 빠뜨린 채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도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로 바꾸었습니다. 그리하여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하신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경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미워해도 된다는 허용으로 간주했습니다. ■ 예수님의 재해석 그러나 이와 같은 가르침에 대해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재해석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마 5:44) 구약의 율법은 이웃을 사랑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님은 그 사랑의 대상을 원수에게까지 확대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선한 이웃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적대시하고 괴롭히는 원수 이웃은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콕 집어서 나를 적대시하는 사람들까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원수사랑 명령을 표현한 동사는 헬라어 ‘아가파오' 입니다. 나를 적대하는 사람에게 ‘관대하고 자비로운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기도하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우리에게 손해를 입히고, 모욕과 수치를 주고, 배신감을 안기며, 이유 없이 깎아 내리고, 늘 하는 일에 반대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명령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명령이다. 기도하는 매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원수들에게 가고, 그의 편이 되며, 그를 위해 하나님께 탄원한다.’’ 마음속에 원수에 대한 사랑이 조금이라도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를 위해 기도하려 한다면 원수 사랑을 절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도를 먼저 해야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을 기준으로 삼으면 결코 우리의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원수에게 사랑으로 되갚아 주는 단계까지 니아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짧은 문장이라도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을 위해 기도문을 적어 보십시오. 그러면 본 회퍼의 말처럼 그 사람에게 다가가고, 그의 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저히 품을 수 없을 것 같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증오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원리를 통해 ‘더 나은 의’를 실천하며 살아갈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2) 사랑의 지경을 넓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 5:46~47) 유대인들은 세리가 로마와 헤롯을 위해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담당했기에 창기와 마찬가지로 부정한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이방인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자신의 가족을 사랑할 줄 알고, 친구를 존중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선대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푼다고 하십니다. 이처럼 자기가 속한 집단의 구성원에게만 제한된 사랑은 세상이 기대하고 실천하는 수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나은 의’를 추구하기 위해 사랑의 지경을 넓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지경을 넓히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본능적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 중 대부분의 시간을 나 자신을 위해 보냅니다. 오늘날의 문화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자기 이익’이라는 렌즈를 통해 자기 중심적 삶을 살아가라고 부추깁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관계를 내 이익에 근거해 평가함으로써 나에게 별로 도움되지 않는 사람들과 사물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합니다. 이러한 관점이 강화되면 타인을 바라보는 마음이 점점 사라집니다. 내 마음에 드는 대상만을 골라서 사랑합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취향입니다. 사랑과 취향은 다릅니다. 우리가 사랑을 취향으로 이해한다면, 나의 취향에 맞는 존재가 사랑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내 안에 그를 향한 좋은 감정이 없다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내 삶의 경계를 넘어서 내게 찾아온 상대방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상대방에게 가치를 두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제대로 주목함으로써 사랑의 지경을 넓힐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온전함’은 목표에 도달함 또는 ‘성숙함’ 이라는 의미 입니다. 성도의 ‘온전함’은 ‘완전함’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흉내내는 가운데,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온전함’을 신앙생활의 목표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먼저 말씀하신 후에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온전하신 분이시지만, 우리는 스스로 온전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온전하라’로 번역된 단어는 ‘중간태’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이 명령은 능동태로써 온전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려는 사역에 열심히 참여하라는 의미입니다. 온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범을 따라 우리가 그 수준까지 성장하기를 예수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원수 사랑’을 이렇게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 나를 힘들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한 상대를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않고 도리어 적극적으로 복을 빌라고 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할 때 하나님은 그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 주십니다. 원수를 축복할 때 하나님은 그 원수를 축복하는 사람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배워 원수를 사랑하는 자리까지 나아갈 때 비로소 ‘더 나은 의’를 이룰 수 있습니다 . ■ 더 나은 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통해 원수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서기를 바라셨습니다. 나 중심에서 벗어나 사랑의 지경을 넓혀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닮아가며, 원수를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할 수 있는 온전함에 이르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더 나은 의를 추구하며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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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잘 담겠습니다.““더 잘 담겠습니다.“ 억울할 때 있으시죠? 힘든적도 많으시죠? 외롭기도 할 겁니다. 억울하고 힘들고 외로운 마음을 다 담을 수만 있다면…… 마음 그릇이 큰 사람은 주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고후 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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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경섭 은퇴장로 교회장(敎會葬)지난 7월 30일 화요일 오 전 9시, 영은교회 비전홀에서 고(故)김경섭 은퇴장로의 교회장이 있었다. 고(故) 김경섭 은퇴장로는 1931넌 8월 3일 황해도 수안군에서 태어나, 1962년 4월 김명화 권사와 결혼하여 슬하에 태선, 태화, 은주의 2남 1녀를 두었다. 고(故)김경섭 은퇴 장로는 1963넌 영은교회 교인으로 등록하여 1981넌 4월 집사 안수를 받았고, 1990년 4월 22일 장로 장립 후 사랑과 헌신으로 봉사하셨으며, 2001넌 12월 31일 장로직을 은퇴하신 후 은퇴장로로 교회를 섬기시다가 지난 2024넌 7월 28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다음은 이상의 은퇴장로의 조사이다. 조사(弔辭) 사랑하는 김경섭 장로님! 장로님께서는 영은교회를 가장 건전한 교회라고 말씀하시며 늘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언제나 영은교회를 위해 기도하셨고, 신앙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장로님은 중학교 국어교사로 교육계에도 몸담으셨던 시인교사였습니다. 황해도의 불교 집안에서 태어 나신 장로님께서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남쪽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고, 휴전 이듬해에 군에 입대하시어 예수님을 영접하고 후에 부모님과 형제들이 예수를 믿고 기독교인이 된 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회고를 하셨습니다. 존경하는 장로님! 이제 선한싸움을 싸우시고 달려 갈 길을 다 마치시고 의로운 재판장이신 우리 주님이 주실 의의 면류관을 쓰시고 기뻐하실 장로님의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장로님께서는 장수의 복을 받고 향년 93년을 장수 하시며 병원 생활을 하지 않으시고 사시다가 7월 25일 93회 생신을 잘 맞으셨습니다. 부르심을 받으시기 전날에는 저녁 식사도 시간을 맞추어 잘 드셨으며, 다음 날 아침 9시 20분에 조용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음을 둘째 아드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장로님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수고했다 칭찬하시며 그품에 안으시고 돌보아주실 것입니다. 장로님께서는 원로은퇴 장로실에서도 조용하시고 온화한 성품에 후배들에게 본이 되셨습니다. 장로님이 보여주셨던 아름다운 모습들과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잊지 않고 저마다의 삶의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며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겠습니다. 장로님과 함께 영은 교회를 섬길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은혜이고 감사였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 하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산 소망을 주신 예수님과 함께 저 천국에서 평안히 안식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머지않아 천국에서 기쁨으로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며 이것으로 조사를 마칩니다. 주후 2024년 7월 30일 은퇴장로 회장 이상의 은퇴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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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이 잘 안들려요(칵테일 파티 효과)참 재밌는 현상이 있습니다. 주변 환경이 시끄러운 장소에서도 내가 원하는 소리는 쏙쏙 들립니다. 인지심리학자인 콜린 체리 박사는 1953년 영국공항의 관제탑에서 하나의 확성기를 통해 동시에 여러 명의 비행사들의 보고가 들어오게 되는데 항공 관제사들이 어떻게 보고 내용을 알아듣는지 유심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스피커에서 동시에 두 명의 목소리, 혹은 그 이상의 목소리가 들리더라도 관제사들의 대부분은 특정 소리 하나만 집중해서 듣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또한 사람마다 다른 목소리의 톤과 속도, 말하는 사람의 성별 등에 따라 상대방의 메시지를 잡아내는 것도 달라진다는 걸 발견합니다. 이런 현상은 특정 직업군에서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속에서도 자주 경험하는 현상입니다. 주변 환경이 시끄러운 곳에서 대화를 할 때,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혹은 희미하게 들리는 자기 이름에 우리는 곧잘 받응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뇌가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내가 관심 있는 것 외에는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겁니다. 반대로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더 잘들을 수 있는거죠. 이런 현상을 콜린 체리 박사는 “칵테일 파티 효과’’ 라 불렀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지하철에서 졸다가도 자기가 내릴 역의 안내 방송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 이게 바로 칵테일 파티 효과입니다. 이런 칵테일 파티 효과는 우리 신앙에서도 발견됩니다. 어떤 사람은 돈, 투자종목 이야기, 어떤 사람은 이성에 대한 이야기, 또 어떤 사람은 드라마, 다른 사람의 뒷 이야기에 기가 막히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들리는 주제, 그것이 내 마음이 내 생각이 집중하고 있는 주제라는 겁니다. 여러분 말씀이 잘 들리고 말씀 한 구절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으십니까? 말씀을 더욱 많이 사모하시고 더욱 말씀을 기대하시고, 여러분의 삶의 가장 큰 관심의 주제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세요. 내 마음의 주제를 세상의 가치에서 영원한 하늘의 가치로 바꾸시는 영은의 모든 가족들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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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제5계명 : 아나바다 운동에 참여한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아나바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운동이다. 절약하는 습관은 돈을 아끼는 효과도 있지만, 환경을 보호할 때에도 중요하다.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플러그를 뽑아 대기전력까지 아끼고, 에너지 효율이 좋은 제품으로 교체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좋은 선택이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거나, 내가 필요한 물건으로 물물교환해 볼 수 있다. 내가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아도 제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물건은 사실상 쓰레기라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쓰레기를 이고 지고 사는 삶이 아닌, 중고장터, 바자회, 플리마켓 등 여러 이름으로 운영되는 곳에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것도 자원을 아끼고 올바르게 순환하는 방법이다. 교회나 회사에서 재생지와 이면지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영은, 녹색 십계명’을 선포하며 <영은, 아나바다>를 만들었다. 교회가 아나바다 장터를 운영하고 물건을 아끼고 서로 나눈다면 참 좋겠다. 선물 받은 좋은 옷인데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면, 고민하고 옷장에 걸어만 두다가 결국 버리는 때도 있다. 그럴 때 떠오르는 그 성도에게 선물한다면 어떨까? 새것만 선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서로 나누는 것도 좋은 선물이 될수 있다. 두번째 <영은, 아나바다>는 월간계획이다. 생태적인 삶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과감히 포기하고 대체해야 할 물건들이 있다. 기존에 사용하던 플라스틱 원료 물티슈, 화학 성분 세제 등이 그러하다. 교회가 이러한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의 몇몇 교회들이 “제로웨이스트 숍”을 운영하여 성도들과 지역 사회 이웃들에게 친환경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하고 있다. 또 우리 집에 쌓여있는 텀블러/책/화장품/문구류 등을 나누고 이 계획에 따라 한 달에 한 번 내가 가진 물건을 돌이켜 정리해 보고, 내게 필요한 건 딱 하나라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교회 안과 밖에 나보다 이것이 더 필요한 이들과 나누고, 당장 그 하나도 없는 이웃에게 선물할 수 있는 영은의 성도들이 되어 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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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노방전도복음 전하는 일에 크게 생각 없이 살아온 제 인생에 예수님을 모르는 남편과 시댁을 만난 저는 신혼생활 내내 하나님께 속상함을 이야기했고 결국 ‘믿음의 명문가’라는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위해 남편과 시어머니가 예수님을 알고 만나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도폭발팀을 모집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저와는 관계없는 훈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마음에 부담이 몰려왔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앉았는데 갑자기 전도폭발이 떠올라 눈을 번쩍 떴습니다. 순간 기도하고 싶어지지가 않더라구요. 하지만 마음을 다시 잡고 하나님께 제가 전도폭발을 안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늘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드리고 이틀 뒤에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일을 통해 저를 완벽하게 설득해 내셨습니다. 전도폭발 강의가 시작되고 복음 제시 전문을 암송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이것만 잘 외워도 전도대상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잘 이야기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암송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글자 하나만 틀려도 버벅대기 일쑤였고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복음 제시 예수그리스도 부분을 날마다 암송하며 내 입으로 고백할 때마다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죗값을 대신 치르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그 한없는 사랑이 떠올라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제 인생 첫 노방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 대뜸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너무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럴수록 성령님께선 기도로 더 준비하게 하셨고, 훈련자 권사님을 통해 복음제시를 할 수 있게 문을 열어 주셔서 덕분에 복음 전하는 귀한 일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교회 새가족으로 등록하신 할머니께 복음을 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우리와의 약속 자체가 많이 귀찮아 보이셨지만 그분의 쓸쓸하고 외로운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 나누는 가운데 그분의 마음이 많이 열리셨고 복음을 들으시고는 이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이후에 기도하는 것과 성경읽는 것을 알려드리니 사모하는 마음을 비치셨고, 7일후에도 함께 만남을 가졌는데 그땐 너무 반갑게 웃으며 반겨주셨습니다, 그리고 몇번이고 함께 기도하고 같이 떠듬떠듬 성경을 읽는 가운데 제 마음도 함께 뜨거워졌고 진정 복음 안에 참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는 귀한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로 도와주신 동역자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복음으로 무장시켜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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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노장(老將), 송준근 은퇴장로 <1>토요일이면 코스트코 앞에서 “오직 예수”라는 전도띠를 두르고 전도하는 송준근 은퇴 장로를 볼 수 있다. 올해 나이 93살의 ‘전도 노장(老將)’ 송준근 장로의 전도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일평생 ‘전도의 사명’을 가지고 살아온 송준근 장로님! 지면을 통해 장로님의 전도 이야기를 들어 본다. ■ 3대째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송준근 장로 송준근 장로는 1931년 평남 강동군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장로님은 모태신앙으로 3대가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부친은 평남 삼합리교회의 영수(장로 밑의 직분)였고 모친은 집사였다. 조부모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6.25 전쟁이 터지자 장로님은 홀로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장남을 잃은 부친은 외아들 장로님을 교회전도사에게 부탁하며 안전하게 남한으로 데려가 줄 것을 부탁했다. 그때 장로님은 19살 청년이었다. 장로님이 피난 내려와 처음 정착한 곳은 영락교회 피난민 수용소였다. 그 수용소에서 평양에서 살다가 피난 온 누님과 매형을 만날 수 있었다. 남한에서 만난 유일한 가족이었다. 수용소에서 나와서 누님과 함께 인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이후 누님 가족과 서울로 이사와 생활했다. 그때 효창공원에 있는 창덕교회에 출석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매형의 형님이어서 6~7년간 창덕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 신앙의 위기와 회개 누님과 함께 살던 장로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누님집에서 나와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장로님은 신앙의 위기를 맞게 됐다. 누님 집을 떠나 살면서 장로님은 예수님을 잊고 말았다. 교회와는 멀어졌고, 세상의 온갖 죄에 빠져 방황했다. 그러다가 화곡동에 있는 강서성결교회를 다니게 됐다. 이 교회에서 장환 목사님을 만난 게 주님의 은혜였다. 장로님은 강서성결교회에서 다시 옛 신앙을 회복할 수 있었다. 목사님 앞에 선 장로님은 눈물로 회개했다. 인천에 살면서 알게 된 허정옥 권사와 결혼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장로님은 삶의 출발선에서 용기를 내어 화곡동에 탁구장을 차렸다. 감사한 마음으로 강서성결교회 장환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개업예배를 드렸다. 장로님은 저녁마다 탁구장 바닥을 닦으며 회개의 기도를 했다. 세상의 모든 죄 된 것을 끊기로 ‘맹세’했다. 다시 죄를 짓는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행5:1~6)처럼 현장에서 죽겠다고 맹세의 기도를했다. ■ 장안평기독신우회를 일으키다 그렇게 회개의 눈물로 시작한 탁구장은 얼마 되지않아 완전히 바닥을 보였다. 장로님에게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하지만 장로님은 하나님의 용서를 믿으며 다시 일어섰다. 장로님은 장안평 자동차매매 시장을 찾아갔다. 눈물겨운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로 그곳에서 중고자동차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밑천도 없이 시작한 장사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돈을 많이 벌게 되었고, 영은교회 옆에 있는 한양연립을 2천만 원에 매입해 내 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주님의 기적 같은 은혜였다. 중고차매매를 하면서 장로님은 전도의 사명을 갖게 되었다. 1989년, 장로님은 장한평 자동차 중고시장에 있던 ‘기독신우회’에 들어갔다. 미미했던 기독신우회에서 믿는 이들과 함께 합심하여 예배를 드렸다. A~D 네 개 동 중 입주자가 가장 많은 3층에 방을 얻어서 기독신우회에서 적극적으로 운영했다. 처음에는 몇 명 되지 않던 예배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이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헌금도 많아져 신우회의 재정 상황이 좋아졌다. 그래서 장로님은 신우회 회원들과 함께 여러 주민센터를 찾아가 극빈자 다섯 가정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몇 군데 다닌 결과 30가정을 소개 받을 수 있었다. 장로님은 그 가정을 전도하기 위해 매달 5만 원씩 후원했고, 장사하지 않을 때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이러한 장로님의 수고와 헌신이 성동구청에까지 알려지게 됐고, 장로님은 구청으로부터 표창장과 상품(시계)을 받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됐다. 그때 만든 신우회는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 올해로 35살이 된 신우회는 장로님의 뒤를 이어 신우회 출신의 장로와 집사들이 운영하고 있다. 장로님은 그를 ‘전도 노장(老將)’으로 만든 신우회를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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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혜 권사 찬양대 40년 근속■ 그동안 거쳐간 찬양대가 여럿 있다면 어디 어디인지, 현재는 어느 찬양대에서 봉사하고 계신지요? - 1984년 헵시바 성가대(당시 4부)를 시작으로 아가페 성가대(당시 1부), 갈리리 찬양대를 거쳐 현재는 샤론찬양대(수요)와 임마누엘 찬양대(1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 찬양대에서 봉사하겠다고 마음 먹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 영은교회 입교 교인인 저는 찬양대에 서시며 집에서도 늘 찬송하시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 자연스럽게 찬양대를 서게 된 것 같습니다. ■ 찬양대로 봉사하시면서 어떤 때 가장 큰 은혜 받으시는지요? - 매주 드리는 찬송의 가사로 먼저 은혜받고, 여러달 준비해 드리는 연합찬양을 통해 큰 감동을받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도 찬양으로 위로받고 힘을 얻었습니다. ■ 가장 좋아하는 찬송이나 찬양이 있으시다면요? -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입어’ 찬송을 제일 좋아합니다. ■ 끝으로 40년 소감과 기도 제목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 믿음이 좋은 부모님과 영은교회 안에서 나고 살아가게 하심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건강하여서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오래도록 올려드리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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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기2004년 북경 코스타(KOSTA)에서 어느 목사님이 설교 중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천국에서예수님을 만나면 가장 먼저 어떻게 인사를 건넬 것 같습니까? 대부분 예수님께 이렇게 인사를 할 것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듣기만 해서는 안되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의 깊은 관계가 지속되어야 하지요.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1.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1) 개인적인 관계 : 예수님을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시며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과 매순간 지속적인 대화를 나눕니다. 2) 삶의 변화 :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려는 구체적인 실천을 합니다. 3) 신앙의 확신 :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확신과 평안이 있습니다. 예배 가운데 주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2.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1) 성경 읽기 :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고 그의 성품을 배울 수 있습니다. 2) 기도 : 예수님과의 대화를 시작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예배와 찬양 : 예배와 찬양은 공동체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예배와 찬양 가운데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4) 공동체와의 교제 : 신앙인들과의 교제를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예수님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을 만난 간증들을 나눕니다. 5)영적 훈련 : 기도, 말씀, 큐티, 장년신앙교육등의 영적 훈련을 통해 예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예수님과 하나 되는 삶이 되시기를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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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ovate, 더 나은 의■ 더 나은 의 예수님은 ‘의’에 대해서도 바리새인들과 대립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의’란 율법주의가 낳은 ‘자기 의’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추구하는 문자적 의와 전혀 다른‘의’를 강조하시며, 이를 ‘더 나은 의’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예수님은 율법에 철저한 이 바리새인들보다 낫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대체 무슨말씀일까요?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바리새인의 의는 형식적이고 문자적인 의였습니다. 문자로 기록된 율법만 범하지 않으면, 그 속은 어떻든 관계없었습니다. 율법을 준수하되 정의, 긍휼, 믿음과 같은 율법의 기본 정신을 놓친 채 자기 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더 나은 의는 형식이나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과 본질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 율법에서 말하는 살인죄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문구로 대조를 만들며 더 나은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5:21) 율법에는 ‘살인’과 관련된 계명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민수기 35장 31절에서는 “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라고 명령합니다. 왜냐하면 ‘피는 땅을 더럽히(민35:33)’기 때문입니다. 피를 흘림으로 누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앗아갔다면, 그 피는 땅을 더럽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피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살인자는 반드시 죽이라’는 앞의 규정을 재확인하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민34:35).”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택한 백성에게 선물로 주신 땅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땅을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피로 더럽히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생명’과 관련된 율법에는 사실 금지 명령보다 ‘생명을 존중하라’는 적극적 행동 명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배우고 가르친 것은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였습니다. 살인하면 재판을 받게 된다고 가르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인간의 재판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방 재판소였고, 하나님의 심판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새롭게 해석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라가’는 유대인들의 욕설로 직역하면 ‘헛된 놈’, ‘바보같은 놈’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갖는 모든 편견과 시기, 중상모략, 투기,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는 모든 무책임한 말, 음모, 헛소문 퍼뜨리는 것, 수군거리는 것 등 모든 것이 ‘라가’에 포함됩니다. 또 ‘미련한 놈’은 ‘하나님 앞에서 가치 없는 놈’, ‘하나님 앞에서 천벌 받을 놈’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왜 저런 인간을 다 만드셨는가?”라고 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분노하는 것’, ‘라가라고 욕하는 것’,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을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죄의 출발은 자기 마음입니다. 상대를 모욕하는 말을 했다면, 이미 내 속에서 상대를 죽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살인이 우리 마음에서 먼저 일어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살인을 금하는 세상의 법과는 다른 깊은 뜻이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이 살인 행위 자체를 정죄했다면, 예수님의 성취적 가르침은 살인 행위의 심연으로 들어가서 살인 행위를 일어나게 하는 마음의 분노와 그로 말미암은 욕설까지 문제삼습니다. 살인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마음 속에 살의를 품은 것과 그런 마음으로 내뱉는 말들도 살인죄와 동일하다고 하십니다. 요즘은 직접적인 말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간접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일어납니다. 인터넷 댓글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모함하고 인격을 모독합니다. 이런 악의적 댓글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정신적, 정서적 살인이 횡행하는데도 ‘나는 살인한 일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는 시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과 관련하여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쉽게 분노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에게 바보라고 함부로 말했다면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새 언약 아래에서 ‘더 나은 의’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살인을 유발하는 그릇된 마음을 다스리는 것까지를 요구합니다. 과연 더 나은 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 더 나은 의를 위한 화평 예배는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마5:25) 예수님은 예배 드리기 전에 먼저 인간관계에서의 갈등과 미움을 해결하라고 하십니다.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잘못한 일이 있다면 재판정에 가기 전에 해결하라고 하십니다. ‘사화(私和)’는 법으로 처리할 송사(訟事)를 개인끼리 서로 좋게 풀거나 원수였던 사이가 원한을 풀고 서로 화평하게 지낸다는 의미입니다. ‘함께 길에 있을 때’는 ‘재판정으로 가기 전에 그 사람과 화해할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용서할 일이 있으면 용서하고, 용서받을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용서를 구하여 갈등을 해소해야 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 화평한 삶으로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드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골3:15) 갈등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을 구하십시오. 우리 마음에 평안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심판관이 되시면 내 욕심을 내려놓고 화평하게 하는 삶을 살 수있습니다. ■ 더 나은 의를 위한 말 야고보서 3장에 보면 우리의 혀가 범하는 범죄에 대하여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약3:6)”고 말씀하십니다. ‘불’은 혀에서 비롯된 엄청난 파괴력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모두 우리의 혀를 통해 나옵니다. 그래서 혀는 불의의 세계입니다. 또한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8)”고 경고합니다. 날아다니는 새나 바다의 동물이나 심지어 벌레나 곤충도 길들일 수 있지만, 절대 길들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말이 쉬지 아니하는 악이 되지 않도록, 누군가를 죽이는 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나 법의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더나은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로서 노력하는 삶, 말로 살인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Innovat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