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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대, 부산국제어린이마라톤 자원봉사 참여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2026년 2월 21일부터 27일까지 이찬양 목사님과 박희자 권사님 그리고 18명의 청년이 ‘몽글’이라는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몽골 땅을 밟았습니다. 우리는 6박 7일 동안 몽골 현지인 목사님이자 몽골 목회자연합회의 회장이신 을지르 자갈 목사님과 함께 사역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세 가지 키워드로 몽글 팀이 만난 몽골에 대해 전하고자 합니다.
▪ 환대
영하 27도의 추위 속에서 우리는 가장 따뜻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심방을 갔던 알드릭에젱, 홈스테이했던 처이르, 짧게 머물렀던 닐라이흐까지 우리가 방문했던 모든 지역의 몽골 성도님들은 낯선 외국인인 우리에게 몽골 전통 치즈인 아롤과 몽골식 만두인 보쯔를 비롯해 햄, 염소고기, 양고기 등 끝없이 음식과 음료를 내어주시며 반겨주셨습니다. 식수와 음식 마련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쾌히 따뜻한 음식과 깨끗한 물을 주셨습니다. 침대를 내어주시고 너무 더워 땀띠가 날 정도로 불을 지펴주셨습니다.
몽골 선교를 위해 한국에서 많은 선물과 사역을 준비했지만, 준비한 것 이상의 대접과 환대를 받았습니다. 비록 음식에서 낯선 향이 나기도 하고 음식 설명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상황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안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몽골 사람들과 몽글팀 사이에 서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 교통하심
알드릭에젱에서 만난 76년 동안 하나님을 믿지 않은 할아버지를 심방하며 교회로 초대했습니다. 할아버지 댁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날 할아버지께서는 주일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헤어질 때는 앞으로 매주 교회에 오겠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어와 세대, 성별 그리고 살아온 세월도 뚫고 우리를 하나의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몽골에서 총 여섯 번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낯선 몽골어와 한국어로 같은 찬양을 부를 때, 국적도 환경도 생각도 모두 다른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로 한자리에 모였음을 느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높이며 수없이 외쳤습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이 이런 거구나!’
▪ 연합
몽골성서공회, 몽골목회자연합회, 몽골연합신학대학교를 방문하며 몽골의 그리스도인들은 ‘연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몽골의 그리스도인들은 연합함으로 오랜 기간 끝에 성경 번역을 완성할 수 있었고 신앙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심지어 속아주기까지 하면서 연합하고 있었습니다. 몽골 사람들의 연합을 보며, 몽글 팀의 마음에도 ‘연합’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선교 기간 몽골 사람, 지역, 국가를 사랑하게 되었고 몽골의 상황과 기도 제목을 알게 됐습니다. 몽골 땅을 향한 마음이 활짝 열린 후, 수없이 연습하고 준비한 “이 땅의 동과 서 남과 북”이란 찬송을 부를 때, 한국에서는 그저 가사로만 보이던 글자들이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인구가 1%밖에 되지 않는 몽골 땅이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는 나라가 되기를 함께 기도했습니다.
몽골 땅을 밟기 전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몽골에 전했고 몽골을 향한 평생의 기도 제목을 마음에 품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또다시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선교를 통해 마음판에 쓴 그리스도의 편지를 전하러 각자의 삶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안전하게 선교 일정을 이끄시고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응원으로, 기도로, 물질로 그리스도의 편지의 우표가 기꺼이 되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바야를사!
▪ 사진으로 보는 몽골 사역 및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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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대, 부산국제어린이마라톤 자원봉사 참여
샬롬! 영은교회 성도님들, 평안하신지요?
저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영은교회에서 사랑교구와 교육부를 섬겼던 안웅현 목사입니다. 20년 전, 뜨거웠던 사역의 기억을 간직한 채 영은교회를 떠난 지 어느덧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주님께서는 저를 남미 수리남 선교사(2007-2012)로, 또 중국(2013-2015) 현지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통로로 인도하셨습니다. 때로는 비자 거부라는 예기치 못한 장벽 앞에 눈물짓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니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세밀한 이끄심이었습니다.
이후 귀국하여 전주에서 캠퍼스 사역과 가정교회 사역을 경험한 저를 하나님께서는 개척의 길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2025년 3월 1일, '세상과 교회의 본이 되자'라는 표어 아래 '전주 본교회'를 창립했습니다. 올해 3월 창립 1주년을 맞아 ‘선교지 탐방과 움직이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2월 21일(토)부터 22일(주)까지 교회 청년들과 함께 영은교회를 방문했습니다. 환하게 맞아주시는 이승구 목사님과 장로님들 그리고 많은 성도님을 뵈니, 마치 친정집에 온 듯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언제든 손 내밀면 기꺼이 잡아주실 것 같은 부모님의 품, 제게 영은교회는 그런 곳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2004년의 저로 돌아가 1박 2일을 산 것 같았습니다. 다만 예전보다 연로해지신 성도님들을 뵐 때는 가슴 한구석이 아리기도 했습니다. 그 사랑의 빚을 마음에 품고 다시 전주로 내려왔습니다.
영은교회라는 든든한 뿌리가 있기에 저희 전주 본교회도 무럭무럭 자라날 것입니다. 앞으로도 저희의 성장을 위해 기도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2026년 3월 2일, 전주 본교회 안웅현 목사와 성도 일동 올림
▪ 함께 기도해 주세요.
1. 강의를 듣는 전주대 40명, 예수대 120명 학생과 일대일로 매칭하여 기도해 주실 기도후원자가 필요합니다.
2. 본교회에 같은 마음을 품고 협력해 주실 협력자들, 동역자들, 섬기미들 50명이 2026년도에 충원되기를 기도합니다.
3. 재정은 주님께 맡기고 달려가렵니다. 주님 아시지요?
4. 저와 아내의 건강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5. 본교회에 발을 디딘 모든 분이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고 자라서 또 다른 제자를 양육하는 동역자가 될 수있도록 주님께서 지혜와 리더십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사진으로 만나는 전주 본교회
▸노방전도, 바자회, 문화반(기타, 캘리그라피, 미용) 운영, 여름 몽골 단기선교(현재 교회 출석 중인 젊은 부부의 아이 돌 잔치로 축하 겸 복음을 전하려고 직접 방문)
▸성만찬 예배와 선교사님 방문 섬김, 사순절 기간 십자가 만들기, 청년부 주최 모악산 등산 등 나름 즐겁고 아기자기하게 사역을 했습니다.
▸2025년 12월 25일에 몽골 유학생 2명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하는 세례식을 집례할 때가 가장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이런 감격과 기쁨을 주님께 계속 올려드리기 위해 2026년도에도 유학생 전도와 캠퍼스의 젊은 학생들을 전도하려고 합니다. 전주대학교와 예수대학교를 중심으로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부흥 전사로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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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대, 부산국제어린이마라톤 자원봉사 참여
2026년 2월 27일(금)부터 3월 1일(주)까지 영은교회 소년부실에서 “예수님의 편지”라는 주제로 겨울성경학교가 진행됐습니다. 성경학교 시작 전부터 제 마음이 설렜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특별한 시간과 2박 3일 동안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날을 저는 기대와 설렘으로 기다렸습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저는 하나님과 더욱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함께하기를 기대했던 친구들과 더욱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뮤지컬 “요한계시록”을 통해 ‘일곱교회’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이 참 좋았고 기억에 남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일곱 교회 중 서머나교회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뮤지컬을 통해서 제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오신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코너 학습 덕분에 성경학교가 더 신났습니다. 매일 저녁 집회 시간에는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즐겁게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둘째 날 저녁 시간에는 ‘성인 리코더반’에서 아름다운 찬양과 노래를 연주 해주셨습니다. 우리 교회 어른들이 하시는 멋진 연주를 들으며 제 마음도 따뜻해진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수련회 기간 친구와 싸우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잘 풀 수 있게 해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저는 수련회가 끝나도 우리 소년부 친구들이 항상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서머나교회’의 폴리캅처럼 항상 기도하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잊지 않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일상생활에서 닫혀 있던 마음이 기도를 통해 열렸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순서마다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일상에서 공부와 제가 좋아하는 것에만 빠져 있었던 저를 이번 기회에 바꿀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늦은 밤까지 친구들과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다음 여름성경학교도 이렇게 재미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소년부 친구들은 수련회를 통해 예수님의 편지가 되었고 예수님을 전하며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련회를 기도와 말씀으로 인도하신 한수민 전도사님과 시간 내주신 모든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항상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희생하시는 선생님들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봤습니다. 우리 소년부 수련회를 위해서 중보기도 해주신 모든 성도님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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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대, 부산국제어린이마라톤 자원봉사 참여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양손을 모아 만든 작은 하트부터 머리 위로 높게 그린 커다란 하트까지... 늘푸른학교만의 특별한 인사법이 비전홀에 가득 울려 퍼졌던 3월 5일 목요일 10시, 2026년 첫 학기가 활기차게 문을 열었다.
▸ 역대 최고의 출석률, 배움의 열기로 가득 찬 비전홀
늘푸른학교 개교 이래 최고의 출석률을 기록하며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새 학기를 시작했다. 180여 명의 학생으로 가득 찬 3층 비전홀은 다시 만난 학우들과의 대화 소리와 웃음소리로 봄꽃보다 환하게 피어났다.
1부. 개강 예배는이승구 담임목사님께서 창세기 9장 23절을 본문으로 “실수를 통해 배우는 한 가지”라는 주제의 말씀을 전하셨다. 예배 후에는 6개 반(성경읽기반, 찬양반, 노래반, 건강체조반, 두뇌놀이반, 아로마미술반)과 교사 17명을 소개했다.
2부. 건강체조 시간에는 서미영 선생님의 지도로겨우내 웅크렸던 몸을 시원하게 기지개 켜듯 풀어내며 활력을 되찾았다.
3부. 치매 예방 교육(영등포구 보건소 배진옥 강사)은 학생들의 건강한 노후를 위해 꼭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배우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7층 식당에서 정성껏 마련한 식사를 함께 나누었다. 개강 첫날의 모든 일정을 교제와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시간으로 풍성하게 마무리했다.
▶ 영은 늘푸른학교
① 수업기간: 2026. 3. 5.~6. 25.
② 수업일시: 매주 목요일 10:00
③ 대상: 만 70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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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대, 부산국제어린이마라톤 자원봉사 참여
3월 4일 수요일,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햇살에는 완연한 봄기운이 가득한 날! 영은교회 비전홀에서 권사회 봄 수련회가 진행됐다. 송선이 권사회 회장을 비롯해 5명의 임원이 환한 미소로 반갑게 참석자를 맞이해 주셨다. 예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은혜를 받을 마음이 활짝 열리는 듯했다.
오전 10시 10분부터 경배와 찬양으로 시작된 예배 가운데 성전을 가득 채운 주님의 임재와 은혜를 느낄 수 있었다. 박상신 권사와 장유경 선생의 깊은 울림 있는 색소폰 이중주(해같이 빛나리 외)는 참석한 모든 이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이승구 담임목사님이 시편 56편 12절과 57편 7절 말씀을 중심으로 “권사의 영적 온도, 책임감”이라는 제목으로 다윗의 두드러진 모습 두 가지에 대해 은혜로운 말씀을 주셨다.
첫째, 하나님과의 약속
다윗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렸다. 계속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렸다. 예배에 대한 열정을 보인 다윗은 참으로 멋지고 귀한 믿음의 본보기였다.
둘째, 사람과의 약속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끝까지 돌본 다윗의 모습에서 신실한 약속의 열매를 볼 수 있었다.
이승구 목사님은 “권사는 힘들어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기도를 멈추지 않고, 초심을 지키며, 감정이 아닌 믿음으로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예배 후 7층 식당에서 식사했다. 권사들은 창가에 내리쬐는 봄 햇살 같은 미소로 맛있는 식사를 하며 정겹게 대화를 나눴다. 주 안에서 하나 됨을 느끼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경험하는 소중한 수련회였다. 권사들과의 나눔 속에 사랑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식사 후에는 정영진 형제(영은교회 더누림)가 준비한 흥겨운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있었다. 모두 한 마음으로 퀴즈도 풀고, 재미있는 게임도 하면서 배가 아플 정도로 크게 많이 웃었다.
마지막 순서는 박대원 목사님이 디모데전서 2장 2절의 말씀을 읽은 후 뜨겁고 열정 가득한 기도회를 인도해 주셨다. 말씀을 붙들고 마음을 확정할 때 기도가 더욱 뜨거워지고 기도의 지경이 넓어진다고 말씀하셨다. 권사들은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도 그렇게 살겠다고 은혜로 결단했다.
은혜로운 수련회를 위해 오랜 시간 기도로 준비하시고 정성으로 권사들을 섬기신 권사회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경배와 찬양
▪ 예배
▪ 점심식사
▪ 레크리에이션: 사회 정영진
▪ 기도회: 인도 박대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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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대, 부산국제어린이마라톤 자원봉사 참여
몇 달 전, 가까운 가족이 스미싱 피해를 입었다. 뉴스 속의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나의 이야기’로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다. 이후 강의 현장에서 이 경험을 나누며 “저도 당했지만, 창피해서 말하지 못했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많은 분이 자책하며 피해 사실을 숨기고 있었고, 한결같이 “진작 이런 교육을 받았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 글이 단 한 분에게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전 세대를 노리는 지능형 피싱 사기
피싱 사기(전기통신금융범죄)는 전화, 문자, 이메일 등 다양한 통신 수단을 이용해 개인정보와 금융정보를 탈취하는 범죄이다. 2025년 대한민국의 피싱 피해액은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하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최근 범죄는 개인의 상황과 심리를 정교하게 노린다. 지인의 청첩장·부고 문자, 카드 발급, 우편물 미수령, 관공서 사칭 등 알려진 수법뿐 아니라 채용 합격이나 정부 투자 기회, 이벤트 당첨금 등을 미끼로 절박함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인공지능(AI)과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을 활용해 사람의 목소리와 얼굴을 모방하는 등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원격제어 앱 설치를 유도하거나 ‘전화 가로채기’ 수법으로 외부 연락을 차단하는 심리적 압박도 함께 사용된다.
▪ 알면서도 당하지 않기 위한 3가지 기본 습관
‘순간의 심리 붕괴’를 노리는 피싱 사기를 예방하기 위해 다음 방법을 체득한다.
1. 스마트폰을 철저히 관리: 모르는 링크(URL)와 전화는 의심하고, 악성 앱 탐지 앱(시티즌코난, V3 Mobile 등)을 설치해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스마트폰 설정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앱 설치’는 반드시 차단하고, 기관을 사칭하며 앱 설치나 계좌이체를 요구하는 경우는 100% 사기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 개인정보를 자산처럼 관리: 폰 갤러리에 저장된 나와 가족의 신분증·신용카드 사진 등 민감한 정보는 삭제하고, 필요시 보안 폴더를 활용한다. SNS 일상 공유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사기꾼은 누군가의 일상을 범죄 시나리오의 재료로 쓰기 때문이다.
3. 심리적 방어선을 세우기: ‘지금 당장’이라는 압박에 흔들리지 말고, 의심스러운 상황은 반드시 주변 사람과 상의해야 한다. 도움을 요청할 사람(가족, 친구, 교인 등)을 미리 생각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화는 일단 끊고 전화 발신자가 언급한 기관의 공식 연락처를 통해 직접 확인해야 하며, 안내받은 번호나 사이트로 다시 전화하거나 검색하는 것은 위험하다.
▪ 만약 피해를 입었다면, ‘즉시’ 대처해야 한다
▶ 계좌동결, 신고:먼저 은행(24시간 콜센터)에 계좌 일괄지급정지를 요청하고. 경찰청(112), 정부공식상담(1394) 순으로 연락해 신고를 한다. 원격제어 앱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본인 휴대폰 대신 다른 전화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 증거확보:통화기록·문자, 입금 내역 등의 증거는 삭제하지 말고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 증거가 없으면 신고나 피해구제 신청에 제약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추가 대응:명의도용방지서비스(M-safer), 통합계좌관리(어카운트인포)로 내 명의의 휴대폰 개설이나 나의 금융거래 유출정보를 확인하고 차단할 수 있다. 유출된 신분증, 통장은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
피싱 사기는 더 이상 특정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어느 순간에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왜 당했을까’라는 자책이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행동이다. 범죄 수법은 계속 진화하지만, 관심은 가장 강력한 방어이다. 정기적으로 부모님과 자녀의 스마트폰 보안 설정을 점검하고, 변화하고 있는 최신 사기 사례를 대화로 나누는 것만으로도 피해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 가족들과의 몇 분의 대화와 관심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안전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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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대, 부산국제어린이마라톤 자원봉사 참여
■ 어울림 공동체 소개
안녕하세요. 어울림 2부 임원 장민호입니다. 주일 3부와 4부 예배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모이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바로 ‘어울림’ 공동체입니다. 어울림은 1, 2부로 나뉩니다. 1부는 ‘영유아, 학령기 자녀를 둔 부부’ 모임으로 3부 예배 이후 모입니다. 제가 속한 어울림 2부는 ‘신혼부부와 영유아를 동반한 부부’가 모입니다. 어울림 공동체는 믿음 안에서 가정을 세워가는 ‘가족 공동체’로 예배 후 모여 함께 예배의 은혜를 나누고, 소그룹으로 교제하며, 때로는 가볍게 나들이도 하며 일상과 신앙을 자연스럽게 연결합니다.
공동체원들은 각 부부 관계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고민을 혼자 끌어안기보다, 믿음 안에서 함께 말씀을 배우고 고충을 나누며 한 걸음씩 내디디며 성장합니다. 완벽한 가정을 자랑하는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응원하며 ‘함께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가려는 따뜻한 공동체입니다.
■ 컬러링북 봉사활동
어울림 2부는 최근에 모임 시간을 조금 특별하게 보냈습니다. 사단법인 ‘세상아이’에서 진행하는 ‘컬러링북 만들기’ 봉사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컬러링북은 아이들이 영어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알파벳과 단어를 익히고 따라 쓸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이러한 컬러링북을 만들어 캄보디아 ‘킬링필드(Killing Fields)’ 사건의 트라우마로 학교와 교육을 받기 어려운 아동, 심각한 빈곤으로 교육을 꿈꿀 수조차 없는 캄보디아 아동에게 보냅니다. 저희는 그 책의 표지를 꾸미고 속지를 한 장 한 장 모아 책을 엮어 완성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30분이면 만든대!”라는 말을 듣고, ‘오 생각보다 간단하겠는데?’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표지를 어떻게 꾸밀지, 무슨 색으로 꾸며야 할지 고민이 되고, 종이를 정갈하게 맞추는 것도 은근히 높은 집중력이 필요했습니다. 책을 엮는 과정에서 종이가 어긋나기도 하고, 매듭이 풀리기도 하고, 손이 자꾸 꼬여서 ‘이거 왜 이렇게 어렵지?’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가정 대부분이 책 제작에 예상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쏟았습니다. 그래도 몇 번씩 다시 정리하고, 작업한 부분을 검토하며 천천히 완성해 나갔습니다. 그래도 신기하게, 그 시간이 힘들지만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지치지 않고 끝까지 마음을 모을 수 있었던 건, 모두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예쁜 컬러링북을 보며 즐거웠으면 좋겠다.”
이 마음이 있으니, 비록 손이 느리고 서투른 탓에 제작 과정에서 실수를 반복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색을 고르고, 누군가는 재료를 정리하고, 누군가는 엮는 방법을 공유하며 서로 자연스럽게 도왔습니다. “이렇게 하면 더 튼튼해!”, “여기 조금만 맞추면 깔끔해져!” 말 한마디, 손 하나 보태는 순간들이 모여서 책이 점점 예쁘게 완성되어 갔습니다.
컬러링북 봉사활동이 더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히 ‘무언가를 만들었다’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책을 만들며 서로 도와주는 사이에, 각 가정의 평소에는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흘러나왔습니다. 부부로서의 고민, 요즘 감사한 일, 그동안 있었던 삶의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이상하리만큼 따뜻했고, 대화는 더 가까워졌습니다. 일반적인 모임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이야기들이, ‘함께 봉사한다’라는 공통의 목적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 시간이 저희에게는 정말 보람차고 마음이 꽉 찬 시간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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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대, 부산국제어린이마라톤 자원봉사 참여
다니엘은 성경 속에서 ‘열정’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다니엘의인생을 관통하는 열정의 세 단계를 살피며 우리 삶 속에서 지속적인열정을 어떻게 품을 수 있을지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 청년의 열정 - 거룩한 선 긋기
다니엘은 바벨론의 1차 침공(B.C. 605년경) 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스라엘의 유능한 청년들을 데려와 세 가지를 의도적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서 우상의 도시 ‘바벨론’으로 사는 곳을 바꾸었습니다. 둘째, 율법대신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배우게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이라는 뜻의 ‘다니엘’ 대신 ‘벨 신이여 그의 생명을 보호하소서’라는 뜻의 ‘벨드사살’로 이름을 바꿉니다. 심지어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여동화시키려 합니다.
다니엘은 사는 곳이 바뀌고 이름이 바뀌는 것, 바벨론 학문을 배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받아들였으나 음식만큼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식탁에 오르는 고기와 포도주는바벨론 신상에 바쳐진 제물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레위기등 율법에서 금지한 부정한 짐승의 고기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따라서 왕의 음식을 먹는 것은 “내가 누구의 통치를 받는가?”에 대한 질문이자 그에 대한 신앙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음식을 먹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청년 시절 다니엘의 열정은 한마디로 말하면 ‘거룩한 선 긋기’였습니다. 모든 것이 바벨론화하는환경속에서 그는 “이것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라는 최소한의 영적 보루를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작아 보이는 순종을 통해 다니엘을 제국의 총리로 세우는 큰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나만의 영적 점검 사항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의 흐름속에서 ‘여기부터는 내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기억하겠다’라는 지점을 만드는 것입니다. 먼저 내 삶에서 나를 가장 ‘세속화’시키거나 ‘정체성’을 흔드는 것이 무엇인지 그 ‘대상’을 점검하십시오.대상이 정해졌다면 작은 것이라도 규칙을 정하십시오. 다니엘이 ‘고기’를 거부하는 작은 것부터 시작했듯이 사소하더라도 지킬 수 있는 규칙을 세우십시오. 그리고 다니엘이 열흘의 시험 후에 자신의 건강함을 증명했듯이 그 선을 지켰을 때내 마음의 평안과 영적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결과를 증명하십시오.
2. 중년의 열정 - 민첩함 점검하기
중년의 다니엘이 보여준 열정은 지속되는 성실함과 두려움 없는 진실함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이 꾼 꿈의 내용과 해석을 알아내라고 박수와 술객들을 압박하며 죽이려 할 때였습니다. 다니엘은 위기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엎드려 열정적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다니엘은 왕의 꿈을 해석합니다. 왕이 교만하여 짐승처럼 될 것이라는 불길한 꿈을해석하며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권면합니다.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권력자 앞에서도 침묵하지 않는, 두려움 없는 열정이었습니다.
벨사살 왕의 시대에는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 글자를 쓰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온 제국의 박사와 술객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명철과 지혜가 비상한 사람’으로 불리는 다니엘을 부릅니다. 다니엘은 왕이 권하는 자주색 옷, 금 사슬, 나라의 셋째 통치자와 같은선물이나 자리에 현혹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당당히 선포합니다. 이 시기의 다니엘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단6:3)
‘민첩하다’ 말은 일을 빨리 처리한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충만하여 영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성실하고 진실된 상태를 말합니다. 다니엘이 바벨론 시대부터 메대와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세 번의 정권 교체 속에서도 계속 중용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과 세상을 향한 ‘민첩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스스로 두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했는가?” 사람 앞에서는 괜찮아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하지 못했던 선택은 없었는지, 결과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먼저 고려했는지 진실하게 점검합시다. 그리고 “오늘 나는 최고의 결과물을 냈는가?”자문하십시오. 이것은 성공을 자랑하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성실하게최선을 다했는지 결과의 크기보다 태도의 깊이를 성실하게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3. 노년의 열정 - 전에 하던 대로
황혼기에 접어든 다니엘의 열정은 가장 견고한 모습으로드러납니다.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은 전국을 다스릴 총리 세 명을 두었는데 그중 다니엘이 가장 뛰어났습니다. 이를 질투한 다른 고관들이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으려 했지만 아무 근거도, 어떠한 허물도 찾지 못합니다(단6:4). 그러자 다니엘의 대적들은 그의 신앙을 역이용해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금령을 만들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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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대, 부산국제어린이마라톤 자원봉사 참여
철원제일감리교회(구, 철원제일교회)는 1905년 장로교 웰본(Welbon) 선교사가 개척했다. 1907년 선교구역 분할정책으로 철원이 감리교 선교지역이 되며 철원읍감리교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철원읍감리교회는 영서북부지역의 선교와 교육, 사회봉사의 중심이 되었다. 1919년 3월 10일 강원도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항일단체인 철원애국단이 조직되어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일제의 박해에도 교회가 성장하여 지금의 터로 이전했다. 당시 유명한 건축가 윌리엄 보리스(W. M. Voris)가 교회를 설계했다. 1937년 9월 30일, 198평의 2층 석조건물이 아름답게 완성되어 성도 모두가 예배당을 봉헌했다. 교회의 이름을 철원제일교회로 정했다.
당시에 교인 수는 어린이가 275명, 장년이 337명이었다. 교회는 유치원과 학교, 구세복음병원을 설립해 운영했다. 선교가 활발해지고 부흥하기 시작한 교회에 신사참배 거부 운동의 첫 순교자인 강종근 목사가 1939년에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강종근 목사, 철원제일교회 담임목회 시작
강종근(姜琮根) 목사는 1904년 9월 29일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면에서 부친 강영동과 모친 박형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만주 봉천성 유하현으로 이주해 학교에 다녔다. 1925년 배재학당을 졸업했고, 1928년 감리교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윤희성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부모가 있는 만주 철령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1936년 경기도 연천교회 담임전도사로 부임하여 2년간 목회하였다. 당시 강종근 전도사는 하나님의 복음과 함께 조선 민족이 하나님의 은총 속에 독립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교했다. 강 전도사는 1938년에는 강원도 철원군 김화 창도교회에서 사역했고, 1939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감리회 정회원이 된 후 철원제일교회를 담임했다.
▪ 강종근 목사, 신사참배 거부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민족 종교인 신도(神道)를 국교로 삼고 일왕을 천황으로 신격화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소수의 교회를 제외하고 신사참배를 ‘종교 행위가 아니라 국가 의식’이라고 규정하고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감리회도 이미 신사참배를 결의했으나 강종근 목사는 설교 시간에 민족의 독립을 주장하며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1941년 9월 강 목사가 철원제일교회에서 시무하던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자 조선총독부의 ‘사상범 예비 검속령’에 의해 검거됐다.
강 목사가 검거되는 상황을 당시 5살이었던 막내딸 서옥이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일본 순사가 아버지를 잡으러 주일에 교회에 왔습니다. 아버지의 주일 설교 본문 말씀이 대부분 출애굽기였고, 우리나라는 반드시 일본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설교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날만은 아버지께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설교를 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순사가 눈앞에 나타나자, 아버지는 당당하게 ‘우리나라는 반드시 일본으로부터 해방된다’라고 설교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나는 어렸기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지만, 이날의 일은 기억하고 있으며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 강종근 목사, 끝내 순교하다
강종근 목사는 철원경찰서에 구금되어 고문과 매를 맞으며 가혹행위를 당했고, 서울로 이송됐다. 이 소식을 들은 철원제일교회 성도들은 소리 없이 철원역으로 모였다. 그리고 찬송가 222장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를 불렀다. 일제는 강종근 목사가 설교와 청년부 간담회에서 민족주의를 고양해 조선독립을 꾀했다는 죄목을 씌워 1941년 10월 9일 치안유지법 위반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1941년 형공 제1587호). 강 목사는 연천교회 담임 때부터 교회 청년들에게 희망을 품고 열심히 공부할 것을 격려했다. 특히 창도교회에서의 사역이 양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형기는 1년 6개월이었으나 90일간의 미결 구류(未決拘留)기간 중 받은 혹독한 고문으로 쇠약해진 강 목사는 서대문형무소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생명이 위독했다. 간수들은 강 목사를 방치했고,죽기 직전에 형무소 땅바닥에 눕혀놓고 가져가라고 했다(윤희성 사모 비망록). 급히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옮겨서 치료하려고 했으나, 1942년 6월 3일 새벽에 끝내 순교했다.
강종근 목사는 마지막 면회에서 윤희성 사모에게 원수를 사랑할 것을 당부했다. “여보, 나는 주님 곁으로 갑니다. 절대로 나를 취조하고 감옥에 보낸 일본 경찰을 미워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세요. 우리 네 명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다 키워 주시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찬송가 488장 ‘이 몸에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를 불렀다. 1942년 6월 3일 38세인 강종근 목사는 신앙을 지키며 죽도록 충성하다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하나님 나라로 갔다. 숨지기 직전 “나는 마음이 기쁘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순교자 강 목사는 2003년 8월 15일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그의 유해는 2006년 11월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 적색의 순교와 백색의 순교
철원제일감리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와 순교자 강종근 목사의 신앙을 본받아 교회를 섬기며 신앙생활하고 있기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도 십자가의 신앙이 있으며, 만일 ‘예수 믿으면 죽는’ 일이 생길 때,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리라 확신한다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 피 흘림이 ‘적색의 순교’라면, 꼭 죽어야만 하는 순교가 아닌 살아서 순교자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주님을 위하여 섬기는 교회에서 이전보다 더 눈물 흘리며 헌신의 땀을 흘리는 것을 ‘백색의 순교’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 모두가 ‘백색의 순교자’로 끝까지 주님을 따르되, ‘내가 주님의 뒤를 따라가니 나는 마음이 기쁘다’라는 믿음으로 신앙생활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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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대, 부산국제어린이마라톤 자원봉사 참여
▪ 시어머니의 반대에도 남편과 지켜낸 신앙
이은자 은퇴권사님은 1955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결혼 후 27세에 서울로 올라와서 북아현동에 있는 교회에 한 달 다니다가 남편(故 이천득 집사) 사업 때문에 양남동(現 양평동)으로 이사했다. 그 이듬해에 언니(이환예 은퇴권사)의 전도로 영은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시어머니의 반대를 피해 비닐봉지에 성경을 숨겨서 남편과 함께 교회에 몰래 다녔다. 그러던 중 남편에게 병이 나자, 어머니는 남편을 무당에게 데리고 갔다. 그리고 성경을 내다 버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허락했다. 이후 어머니도 파주에 있는 동네 교회에 다니다가 주님 곁으로 가셨다.
권사님도 어린 시절부터 무척 아팠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병이 나은 후 이전보다 더 밝고 건강해졌다. 권사님이 기도로 간구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셔서 남편과 함께 감사기도를 드리곤 했다.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믿지 않으셨던 친정어머니도 영은교회에 다니다가 돌아가셨다.
▪ 은혜와 섬김의 교회 생활
남편과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둘이 너무 붙어 있어서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라는 말도 종종 들었다. 아픈 남편이 천국에 갔을 땐 마치 남편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하나님이 내게 모든 것을 다 주시고 대신 내 남편을 데려가셨구나!’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사별 후 주님은 권사님에게 권사 직분을 맡겨주셨다. 2018년에 권사로 임직받아 2025년까지 8년 동안 교회를 섬겼다.
권사님은 식당과 반찬가게 운영 경력을 살려서 2016년 집사 시절부터 교회 주방에서 2년간 봉사했다. 2018년에 권사가 된 후에는 해외선교부에서 차장을 맡았고, 이어서 예배부에서 2년, 주방 봉사 1년, 새가족부에서 2년 봉사하다가 은퇴했다. 교육 3부 어울림 부서와도 함께했다.
모든 부서의 일이 다 은혜였지만 특히 새가족부에서 봉사한 기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권사님은 여기저기 지역 교회를 다니다가 영은교회에 탐방 온 사람들에게 조용히 다가가 먼저 말을 걸고 관심을 보였다. 등록을 주저하는 사람들에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끝까지 관심 있게 지켜봤다. 마침내 그들을 영은교회에 등록할 수 있도록 인도한 일이 가장 보람 있었다. 새로 등록한 성도들이 새가족부 담당자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교회에 건의해서 유니폼도 맞췄다.
▪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수요 예배 때는 어린 딸을 업고 다니기도 했다. 덕분에 딸은 초등학교 때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들(이재환)과 딸(이현정, 중등부 교사), 외손주들(문서준, 문서후)도 영은교회에 다니고 있다.
좋아하는 찬송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다. 사업장인 식당 주방에서는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찬양을 매일 듣는다. 함께 일하는 직원 모두가 권사님 덕분에 매일 이 찬양을 들으며 일을 한다. 하루는 평소에 직장생활에 불만이 있던 직원이 그 찬양곡을 듣고 나서 순한 양처럼 변하는 모습을 봤다. 순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느꼈다.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7장 8절이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은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영은교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직분자가 일반 성도를 더 배려해 주기를 바란다. 또한 앞으로도 영은교회에 젊은 세대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은퇴 후 권사님은 교회에서 진행하는 노방전도에 동참하기로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권사님은 현재의 행복한 삶에 늘 감사드리며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지금처럼 이웃을 보살피며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인터뷰&글: 윤정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