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모님은 영은교회에서 결혼하셨고, 나와 내동생은 영은유치원을 졸업했다. 어릴땐 사찰집사님의 본당 청소기를 끌고 다니며 놀았고, 앞마당의 나무를 타며 자랐다.
내 신앙의 근원은 할머니였다. 그런데 할머니가 내신앙을 키워주기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 하면, 아니다. 날 위해 기도하셨나? 그렇다. 어릴 때 난 할머니와 같은 방에서 잤는데, 자기 전에 늘 같이 기도하곤 했다. 같이 찬송가를 불렀나? 그렇다. 할머니의 화장대 위에는 나달나달한 찬송가가 항상 놓여 있었다. 함께 교회에 출석했나? 그렇다. 할머니는 교회 여러 부서에서 봉사하셨는데, 맞벌이인 부모님을 대신하여 늘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교회학교 수련회의 식당 봉사를 위해 먼 지방에 갈 때에도 나는 할머니를 따라다니곤 했었다.
그런데 왜 내 신앙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하느냐 하면, 나에게 그것은 ‘교육’이라기보다는 그냥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 친구인 권사님, 집사님들 사이의 재롱둥이였다. 권사님들이 노래 한 곡 하라고 부추기면 선뜻 어린이 찬송을 불렀다. 교회 김장을 할 때에도, 성찬식 포도주를 담글 때에도 난 할머니와 함께 거기 있었다. 부흥회 때에도, 신년 예배 때에도, 장의자에 누워 자는 한이 있어도 거기 있었다. 나에게는 월화수목금토일 교회에 가는 게 일상이었다. 오죽하면 어느 평일에 ‘우리 교회 짱 좋다’고 동네 친구를 꼬셔 교회까지 왔다가, 문이 굳게 닫힌 유치부실에 대혼란을 느끼며 집에 돌아갔던 적도 있었다.
할머니는 내 삶이 교회에 머물게 하셨다. 덕분에 내인생 최악의 사건과 가장 힘겨운 일이 모두 교회에서 벌어졌으나, 그럼에도 나는 교회를 떠나지 못했다.
성경 속에도 조기 교육의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사무엘’이다.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는 그를 앉혀두고 회초리를 휘두르며 ‘자, 성경에서 이 부분은 시험에 나오니 꼭외우렴.’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젖 뗀어린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쳤다. 사무엘은 아주 어릴때부터 제사장 엘리 밑에서 자랐다. 그가 먹고 자고 놀던 곳은 성막이었다. 그의 부모가 그를 그저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키우신 것이다. 세상의 조기 교육은 매우 체계적이고 강압적이다. 가르친대로 하지 않으면 혼이 나고, 머리로 이해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한다고 다그친다. 어쩌면 우리는 신앙의 교육도 세상의 교육법을 따르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회는 분명 세상과 다른 교회만의 조기교육법이 있을 것이다.
믿음은, 신앙은, 어려운 것도 골치아픈 것도 아니다. 혼이 나며 배워야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즐거운 것이고, 의지가 되는 것이며, 특별하다 여기지 않을 만큼 일상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느날 장성한 자녀들이 문득 이렇게 생각하게될 거다. 아, 내 부모님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키워 주어서정말 다행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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