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인뉴스
주요뉴스
주요뉴스
-
알고도 당하는 시대, 피싱 사기 “우리의 일상은 안전한가요?”몇 달 전, 가까운 가족이 스미싱 피해를 입었다. 뉴스 속의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나의 이야기’로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다. 이후 강의 현장에서 이 경험을 나누며 “저도 당했지만, 창피해서 말하지 못했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많은 분이 자책하며 피해 사실을 숨기고 있었고, 한결같이 “진작 이런 교육을 받았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 글이 단 한 분에게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전 세대를 노리는 지능형 피싱 사기 피싱 사기(전기통신금융범죄)는 전화, 문자, 이메일 등 다양한 통신 수단을 이용해 개인정보와 금융정보를 탈취하는 범죄이다. 2025년 대한민국의 피싱 피해액은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하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최근 범죄는 개인의 상황과 심리를 정교하게 노린다. 지인의 청첩장·부고 문자, 카드 발급, 우편물 미수령, 관공서 사칭 등 알려진 수법뿐 아니라 채용 합격이나 정부 투자 기회, 이벤트 당첨금 등을 미끼로 절박함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인공지능(AI)과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을 활용해 사람의 목소리와 얼굴을 모방하는 등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원격제어 앱 설치를 유도하거나 ‘전화 가로채기’ 수법으로 외부 연락을 차단하는 심리적 압박도 함께 사용된다. ▪ 알면서도 당하지 않기 위한 3가지 기본 습관 ‘순간의 심리 붕괴’를 노리는 피싱 사기를 예방하기 위해 다음 방법을 체득한다. 1. 스마트폰을 철저히 관리: 모르는 링크(URL)와 전화는 의심하고, 악성 앱 탐지 앱(시티즌코난, V3 Mobile 등)을 설치해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스마트폰 설정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앱 설치’는 반드시 차단하고, 기관을 사칭하며 앱 설치나 계좌이체를 요구하는 경우는 100% 사기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 개인정보를 자산처럼 관리: 폰 갤러리에 저장된 나와 가족의 신분증·신용카드 사진 등 민감한 정보는 삭제하고, 필요시 보안 폴더를 활용한다. SNS 일상 공유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사기꾼은 누군가의 일상을 범죄 시나리오의 재료로 쓰기 때문이다. 3. 심리적 방어선을 세우기: ‘지금 당장’이라는 압박에 흔들리지 말고, 의심스러운 상황은 반드시 주변 사람과 상의해야 한다. 도움을 요청할 사람(가족, 친구, 교인 등)을 미리 생각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화는 일단 끊고 전화 발신자가 언급한 기관의 공식 연락처를 통해 직접 확인해야 하며, 안내받은 번호나 사이트로 다시 전화하거나 검색하는 것은 위험하다. ▪ 만약 피해를 입었다면, ‘즉시’ 대처해야 한다 ▶ 계좌동결, 신고:먼저 은행(24시간 콜센터)에 계좌 일괄지급정지를 요청하고. 경찰청(112), 정부공식상담(1394) 순으로 연락해 신고를 한다. 원격제어 앱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본인 휴대폰 대신 다른 전화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 증거확보:통화기록·문자, 입금 내역 등의 증거는 삭제하지 말고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 증거가 없으면 신고나 피해구제 신청에 제약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추가 대응:명의도용방지서비스(M-safer), 통합계좌관리(어카운트인포)로 내 명의의 휴대폰 개설이나 나의 금융거래 유출정보를 확인하고 차단할 수 있다. 유출된 신분증, 통장은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 피싱 사기는 더 이상 특정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어느 순간에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왜 당했을까’라는 자책이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행동이다. 범죄 수법은 계속 진화하지만, 관심은 가장 강력한 방어이다. 정기적으로 부모님과 자녀의 스마트폰 보안 설정을 점검하고, 변화하고 있는 최신 사기 사례를 대화로 나누는 것만으로도 피해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 가족들과의 몇 분의 대화와 관심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안전망이 될 것이다. -
함께 봉사, 함께 감사: 어울림 2부 컬러링북 봉사활동■ 어울림 공동체 소개 안녕하세요. 어울림 2부 임원 장민호입니다. 주일 3부와 4부 예배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모이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바로 ‘어울림’ 공동체입니다. 어울림은 1, 2부로 나뉩니다. 1부는 ‘영유아, 학령기 자녀를 둔 부부’ 모임으로 3부 예배 이후 모입니다. 제가 속한 어울림 2부는 ‘신혼부부와 영유아를 동반한 부부’가 모입니다. 어울림 공동체는 믿음 안에서 가정을 세워가는 ‘가족 공동체’로 예배 후 모여 함께 예배의 은혜를 나누고, 소그룹으로 교제하며, 때로는 가볍게 나들이도 하며 일상과 신앙을 자연스럽게 연결합니다. 공동체원들은 각 부부 관계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고민을 혼자 끌어안기보다, 믿음 안에서 함께 말씀을 배우고 고충을 나누며 한 걸음씩 내디디며 성장합니다. 완벽한 가정을 자랑하는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응원하며 ‘함께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가려는 따뜻한 공동체입니다. ■ 컬러링북 봉사활동 어울림 2부는 최근에 모임 시간을 조금 특별하게 보냈습니다. 사단법인 ‘세상아이’에서 진행하는 ‘컬러링북 만들기’ 봉사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컬러링북은 아이들이 영어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알파벳과 단어를 익히고 따라 쓸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이러한 컬러링북을 만들어 캄보디아 ‘킬링필드(Killing Fields)’ 사건의 트라우마로 학교와 교육을 받기 어려운 아동, 심각한 빈곤으로 교육을 꿈꿀 수조차 없는 캄보디아 아동에게 보냅니다. 저희는 그 책의 표지를 꾸미고 속지를 한 장 한 장 모아 책을 엮어 완성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30분이면 만든대!”라는 말을 듣고, ‘오 생각보다 간단하겠는데?’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표지를 어떻게 꾸밀지, 무슨 색으로 꾸며야 할지 고민이 되고, 종이를 정갈하게 맞추는 것도 은근히 높은 집중력이 필요했습니다. 책을 엮는 과정에서 종이가 어긋나기도 하고, 매듭이 풀리기도 하고, 손이 자꾸 꼬여서 ‘이거 왜 이렇게 어렵지?’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가정 대부분이 책 제작에 예상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쏟았습니다. 그래도 몇 번씩 다시 정리하고, 작업한 부분을 검토하며 천천히 완성해 나갔습니다. 그래도 신기하게, 그 시간이 힘들지만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지치지 않고 끝까지 마음을 모을 수 있었던 건, 모두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예쁜 컬러링북을 보며 즐거웠으면 좋겠다.” 이 마음이 있으니, 비록 손이 느리고 서투른 탓에 제작 과정에서 실수를 반복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색을 고르고, 누군가는 재료를 정리하고, 누군가는 엮는 방법을 공유하며 서로 자연스럽게 도왔습니다. “이렇게 하면 더 튼튼해!”, “여기 조금만 맞추면 깔끔해져!” 말 한마디, 손 하나 보태는 순간들이 모여서 책이 점점 예쁘게 완성되어 갔습니다. 컬러링북 봉사활동이 더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히 ‘무언가를 만들었다’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책을 만들며 서로 도와주는 사이에, 각 가정의 평소에는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흘러나왔습니다. 부부로서의 고민, 요즘 감사한 일, 그동안 있었던 삶의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이상하리만큼 따뜻했고, 대화는 더 가까워졌습니다. 일반적인 모임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이야기들이, ‘함께 봉사한다’라는 공통의 목적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 시간이 저희에게는 정말 보람차고 마음이 꽉 찬 시간으로 남았습니다. -
열정을 더하다, 뜻을 정하여다니엘은 성경 속에서 ‘열정’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다니엘의인생을 관통하는 열정의 세 단계를 살피며 우리 삶 속에서 지속적인열정을 어떻게 품을 수 있을지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 청년의 열정 - 거룩한 선 긋기 다니엘은 바벨론의 1차 침공(B.C. 605년경) 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스라엘의 유능한 청년들을 데려와 세 가지를 의도적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서 우상의 도시 ‘바벨론’으로 사는 곳을 바꾸었습니다. 둘째, 율법대신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배우게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이라는 뜻의 ‘다니엘’ 대신 ‘벨 신이여 그의 생명을 보호하소서’라는 뜻의 ‘벨드사살’로 이름을 바꿉니다. 심지어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여동화시키려 합니다. 다니엘은 사는 곳이 바뀌고 이름이 바뀌는 것, 바벨론 학문을 배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받아들였으나 음식만큼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식탁에 오르는 고기와 포도주는바벨론 신상에 바쳐진 제물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레위기등 율법에서 금지한 부정한 짐승의 고기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따라서 왕의 음식을 먹는 것은 “내가 누구의 통치를 받는가?”에 대한 질문이자 그에 대한 신앙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음식을 먹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청년 시절 다니엘의 열정은 한마디로 말하면 ‘거룩한 선 긋기’였습니다. 모든 것이 바벨론화하는환경속에서 그는 “이것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라는 최소한의 영적 보루를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작아 보이는 순종을 통해 다니엘을 제국의 총리로 세우는 큰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나만의 영적 점검 사항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의 흐름속에서 ‘여기부터는 내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기억하겠다’라는 지점을 만드는 것입니다. 먼저 내 삶에서 나를 가장 ‘세속화’시키거나 ‘정체성’을 흔드는 것이 무엇인지 그 ‘대상’을 점검하십시오.대상이 정해졌다면 작은 것이라도 규칙을 정하십시오. 다니엘이 ‘고기’를 거부하는 작은 것부터 시작했듯이 사소하더라도 지킬 수 있는 규칙을 세우십시오. 그리고 다니엘이 열흘의 시험 후에 자신의 건강함을 증명했듯이 그 선을 지켰을 때내 마음의 평안과 영적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결과를 증명하십시오. 2. 중년의 열정 - 민첩함 점검하기 중년의 다니엘이 보여준 열정은 지속되는 성실함과 두려움 없는 진실함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이 꾼 꿈의 내용과 해석을 알아내라고 박수와 술객들을 압박하며 죽이려 할 때였습니다. 다니엘은 위기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엎드려 열정적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다니엘은 왕의 꿈을 해석합니다. 왕이 교만하여 짐승처럼 될 것이라는 불길한 꿈을해석하며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권면합니다.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권력자 앞에서도 침묵하지 않는, 두려움 없는 열정이었습니다. 벨사살 왕의 시대에는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 글자를 쓰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온 제국의 박사와 술객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명철과 지혜가 비상한 사람’으로 불리는 다니엘을 부릅니다. 다니엘은 왕이 권하는 자주색 옷, 금 사슬, 나라의 셋째 통치자와 같은선물이나 자리에 현혹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당당히 선포합니다. 이 시기의 다니엘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단6:3) ‘민첩하다’ 말은 일을 빨리 처리한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충만하여 영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성실하고 진실된 상태를 말합니다. 다니엘이 바벨론 시대부터 메대와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세 번의 정권 교체 속에서도 계속 중용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과 세상을 향한 ‘민첩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스스로 두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했는가?” 사람 앞에서는 괜찮아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하지 못했던 선택은 없었는지, 결과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먼저 고려했는지 진실하게 점검합시다. 그리고 “오늘 나는 최고의 결과물을 냈는가?”자문하십시오. 이것은 성공을 자랑하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성실하게최선을 다했는지 결과의 크기보다 태도의 깊이를 성실하게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3. 노년의 열정 - 전에 하던 대로 황혼기에 접어든 다니엘의 열정은 가장 견고한 모습으로드러납니다.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은 전국을 다스릴 총리 세 명을 두었는데 그중 다니엘이 가장 뛰어났습니다. 이를 질투한 다른 고관들이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으려 했지만 아무 근거도, 어떠한 허물도 찾지 못합니다(단6:4). 그러자 다니엘의 대적들은 그의 신앙을 역이용해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금령을 만들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
신사참배 거부 운동의 첫 순교자 강종근 목사철원제일감리교회(구, 철원제일교회)는 1905년 장로교 웰본(Welbon) 선교사가 개척했다. 1907년 선교구역 분할정책으로 철원이 감리교 선교지역이 되며 철원읍감리교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철원읍감리교회는 영서북부지역의 선교와 교육, 사회봉사의 중심이 되었다. 1919년 3월 10일 강원도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항일단체인 철원애국단이 조직되어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일제의 박해에도 교회가 성장하여 지금의 터로 이전했다. 당시 유명한 건축가 윌리엄 보리스(W. M. Voris)가 교회를 설계했다. 1937년 9월 30일, 198평의 2층 석조건물이 아름답게 완성되어 성도 모두가 예배당을 봉헌했다. 교회의 이름을 철원제일교회로 정했다. 당시에 교인 수는 어린이가 275명, 장년이 337명이었다. 교회는 유치원과 학교, 구세복음병원을 설립해 운영했다. 선교가 활발해지고 부흥하기 시작한 교회에 신사참배 거부 운동의 첫 순교자인 강종근 목사가 1939년에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강종근 목사, 철원제일교회 담임목회 시작 강종근(姜琮根) 목사는 1904년 9월 29일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면에서 부친 강영동과 모친 박형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만주 봉천성 유하현으로 이주해 학교에 다녔다. 1925년 배재학당을 졸업했고, 1928년 감리교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윤희성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부모가 있는 만주 철령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1936년 경기도 연천교회 담임전도사로 부임하여 2년간 목회하였다. 당시 강종근 전도사는 하나님의 복음과 함께 조선 민족이 하나님의 은총 속에 독립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교했다. 강 전도사는 1938년에는 강원도 철원군 김화 창도교회에서 사역했고, 1939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감리회 정회원이 된 후 철원제일교회를 담임했다. ▪ 강종근 목사, 신사참배 거부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민족 종교인 신도(神道)를 국교로 삼고 일왕을 천황으로 신격화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소수의 교회를 제외하고 신사참배를 ‘종교 행위가 아니라 국가 의식’이라고 규정하고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감리회도 이미 신사참배를 결의했으나 강종근 목사는 설교 시간에 민족의 독립을 주장하며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1941년 9월 강 목사가 철원제일교회에서 시무하던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자 조선총독부의 ‘사상범 예비 검속령’에 의해 검거됐다. 강 목사가 검거되는 상황을 당시 5살이었던 막내딸 서옥이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일본 순사가 아버지를 잡으러 주일에 교회에 왔습니다. 아버지의 주일 설교 본문 말씀이 대부분 출애굽기였고, 우리나라는 반드시 일본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설교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날만은 아버지께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설교를 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순사가 눈앞에 나타나자, 아버지는 당당하게 ‘우리나라는 반드시 일본으로부터 해방된다’라고 설교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나는 어렸기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지만, 이날의 일은 기억하고 있으며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 강종근 목사, 끝내 순교하다 강종근 목사는 철원경찰서에 구금되어 고문과 매를 맞으며 가혹행위를 당했고, 서울로 이송됐다. 이 소식을 들은 철원제일교회 성도들은 소리 없이 철원역으로 모였다. 그리고 찬송가 222장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를 불렀다. 일제는 강종근 목사가 설교와 청년부 간담회에서 민족주의를 고양해 조선독립을 꾀했다는 죄목을 씌워 1941년 10월 9일 치안유지법 위반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1941년 형공 제1587호). 강 목사는 연천교회 담임 때부터 교회 청년들에게 희망을 품고 열심히 공부할 것을 격려했다. 특히 창도교회에서의 사역이 양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형기는 1년 6개월이었으나 90일간의 미결 구류(未決拘留)기간 중 받은 혹독한 고문으로 쇠약해진 강 목사는 서대문형무소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생명이 위독했다. 간수들은 강 목사를 방치했고, 죽기 직전에 형무소 땅바닥에 눕혀놓고 가져가라고 했다(윤희성 사모 비망록). 급히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옮겨서 치료하려고 했으나, 1942년 6월 3일 새벽에 끝내 순교했다. 강종근 목사는 마지막 면회에서 윤희성 사모에게 원수를 사랑할 것을 당부했다. “여보, 나는 주님 곁으로 갑니다. 절대로 나를 취조하고 감옥에 보낸 일본 경찰을 미워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세요. 우리 네 명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다 키워 주시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찬송가 488장 ‘이 몸에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를 불렀다. 1942년 6월 3일 38세인 강종근 목사는 신앙을 지키며 죽도록 충성하다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하나님 나라로 갔다. 숨지기 직전 “나는 마음이 기쁘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순교자 강 목사는 2003년 8월 15일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그의 유해는 2006년 11월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 적색의 순교와 백색의 순교 철원제일감리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와 순교자 강종근 목사의 신앙을 본받아 교회를 섬기며 신앙생활하고 있기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도 십자가의 신앙이 있으며, 만일 ‘예수 믿으면 죽는’ 일이 생길 때,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리라 확신한다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 피 흘림이 ‘적색의 순교’라면, 꼭 죽어야만 하는 순교가 아닌 살아서 순교자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주님을 위하여 섬기는 교회에서 이전보다 더 눈물 흘리며 헌신의 땀을 흘리는 것을 ‘백색의 순교’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 모두가 ‘백색의 순교자’로 끝까지 주님을 따르되, ‘내가 주님의 뒤를 따라가니 나는 마음이 기쁘다’라는 믿음으로 신앙생활 하기를 기원한다. -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시어머니의 반대에도 남편과 지켜낸 신앙 이은자 은퇴권사님은 1955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결혼 후 27세에 서울로 올라와서 북아현동에 있는 교회에 한 달 다니다가 남편(故 이천득 집사) 사업 때문에 양남동(現 양평동)으로 이사했다. 그 이듬해에 언니(이환예 은퇴권사)의 전도로 영은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시어머니의 반대를 피해 비닐봉지에 성경을 숨겨서 남편과 함께 교회에 몰래 다녔다. 그러던 중 남편에게 병이 나자, 어머니는 남편을 무당에게 데리고 갔다. 그리고 성경을 내다 버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허락했다. 이후 어머니도 파주에 있는 동네 교회에 다니다가 주님 곁으로 가셨다. 권사님도 어린 시절부터 무척 아팠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병이 나은 후 이전보다 더 밝고 건강해졌다. 권사님이 기도로 간구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셔서 남편과 함께 감사기도를 드리곤 했다.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믿지 않으셨던 친정어머니도 영은교회에 다니다가 돌아가셨다. ▪ 은혜와 섬김의 교회 생활 남편과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둘이 너무 붙어 있어서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라는 말도 종종 들었다. 아픈 남편이 천국에 갔을 땐 마치 남편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하나님이 내게 모든 것을 다 주시고 대신 내 남편을 데려가셨구나!’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사별 후 주님은 권사님에게 권사 직분을 맡겨주셨다. 2018년에 권사로 임직받아 2025년까지 8년 동안 교회를 섬겼다. 권사님은 식당과 반찬가게 운영 경력을 살려서 2016년 집사 시절부터 교회 주방에서 2년간 봉사했다. 2018년에 권사가 된 후에는 해외선교부에서 차장을 맡았고, 이어서 예배부에서 2년, 주방 봉사 1년, 새가족부에서 2년 봉사하다가 은퇴했다. 교육 3부 어울림 부서와도 함께했다. 모든 부서의 일이 다 은혜였지만 특히 새가족부에서 봉사한 기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권사님은 여기저기 지역 교회를 다니다가 영은교회에 탐방 온 사람들에게 조용히 다가가 먼저 말을 걸고 관심을 보였다. 등록을 주저하는 사람들에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끝까지 관심 있게 지켜봤다. 마침내 그들을 영은교회에 등록할 수 있도록 인도한 일이 가장 보람 있었다. 새로 등록한 성도들이 새가족부 담당자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교회에 건의해서 유니폼도 맞췄다. ▪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수요 예배 때는 어린 딸을 업고 다니기도 했다. 덕분에 딸은 초등학교 때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들(이재환)과 딸(이현정, 중등부 교사), 외손주들(문서준, 문서후)도 영은교회에 다니고 있다. 좋아하는 찬송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다. 사업장인 식당 주방에서는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찬양을 매일 듣는다. 함께 일하는 직원 모두가 권사님 덕분에 매일 이 찬양을 들으며 일을 한다. 하루는 평소에 직장생활에 불만이 있던 직원이 그 찬양곡을 듣고 나서 순한 양처럼 변하는 모습을 봤다. 순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느꼈다.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7장 8절이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은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영은교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직분자가 일반 성도를 더 배려해 주기를 바란다. 또한 앞으로도 영은교회에 젊은 세대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은퇴 후 권사님은 교회에서 진행하는 노방전도에 동참하기로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권사님은 현재의 행복한 삶에 늘 감사드리며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지금처럼 이웃을 보살피며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인터뷰&글: 윤정림 기자
-
말씀파워! 예수님!2월 22일 주일, 영은교회 영아부에서는 아이들 27명과 함께 겨울성경학교를 진행했습니다. 주제는 「말씀파워 예수님」이었습니다. 전도사님께서 전해주신 사도행전 9장 20~21절 말씀처럼, 예수님을 담대히 전하는 믿음이 영아부 아이들의 삶 가운데 자라나기를 소망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찬양 율동’을 맡고 있습니다. 찬양으로 성경학교 예배를 열었는데, 특히 ‘반짝 아이’ 찬양이 시작되자 평소보다 많은 아이가 무대 앞으로 나와 몸을 흔들고 손을 들며 반응했습니다. 아직은 말로 신앙을 표현하기 어려운 나이지만 찬양의 기쁨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모습은 그 어떤 고백보다 진실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이미 아이들의 마음에 스며들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번 성경학교에는 아빠들이 직접 참여하는 주제찬양 율동 코너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코너를 맡아 율동 연습을 담당하며 처음에는 율동을 어색해하던 아빠들의 모습을 봤습니다. 그러나 곧 엔딩포즈 아이디어를 먼저 내실만큼 적극적인 모습으로 임하신 점과 아이들 앞에서 최선을 다해 율동하시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이 귀한 시간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가정 안에서 믿음이 이어지는 통로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영아부의 자랑, 포토존 역시 아이들과 부모님들께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토끼 인형탈을 쓴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하자 아이들은 환한 얼굴로 다가왔고,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사진을 남겼습니다. 교회가 즐겁고 따뜻한 공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공간에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올해로 2년 차 교사입니다. 작년 초에 많은 아이가 유아부로 진급하며 영아부 인원이 적어져 아쉬웠지만, 올해 그 수가 늘어나 27명의 천사와 함께하여 더욱 감사했습니다.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섬기려는 교사들의 모습은 이번 성경학교를 더욱 든든하게 했습니다. 성경학교 전날에도 교사들이 모여 기도하고 부모님과 아이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교실을 꾸미며 흘린 땀방울 또한 예배의 일부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1월부터 교사들이 돌아가며 드린 기도는 성경학교 준비 과정과 당일 예배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직 어려 직접 느끼는 부분이 적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과 우리 교사들은 함께 믿음으로 씨앗을 심었습니다. 언젠가 그 씨앗이 자라 담대히 예수님을 전하는 삶으로 열매 맺을 것을 기대하며, 그 시작의 자리에 함께한 것만으로도 제 마음은 충분히 감사로 채워졌습니다. (사진: 김명기 교사) -
47년 믿음 생활세속의 여정 이상의 은퇴장로님은 1944년 7월, 충청남도 보령군 대천면 요암리에서 부친 이호우와 모친 박순이 사이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장로님은 서울에 와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돈이 모이자 이를 기반으로 건축업을 시작하고 자금을 마련하게 되었다. 30대 중반, 꿈과 패기가 넘쳤던 장로님은 더 큰 포부를 품고 몇몇 투자자와 함께 주택 면허를 내어 지방에 건설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다른 경영진의 이중 삼중 분양 사기 때문에, 모든 자금을 회사에 투입했음에도 결국 부도가 났다. 이 일로 장로님은 거의 전 재산을 잃었다. 그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에게 삶의 고난과 시련을 준 것을 늘 마음 아팠했다. 겨우 전셋집을 구해 살던 어느 날, 집주인이던 故 현성협 권사님의 전도를 받아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당시 이상의 장로님은 깊은 실의에 빠져 두문불출하며 자포자기한 상태였으며, 건강마저 매우 좋지 않았다. 본래 무신론자였던 장로님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님을 믿기로 결심했다. 1979년 10월, 영은교회에 등록한 후 1980년 이용남 담임목사님에게 세례를 받아 정식 교인이 됐다. 믿음의 여정 장로님은 ‘예수를 믿을 바에는 제대로 믿어보자’라는 각오로 모든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교회 성경공부(성서대학) 전 과정을 수료했다. 생활이 궁핍한 와중에도 십일조 생활만큼은 철저히 준수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부도 당시 갖고 있던 차용증서마저 모두 용서하는 마음으로 없애버렸다. 이후 하나님의 복이 시작됐다. 30여 년간 부동산 중개업을 하며 다시 재산을 모았고, 이를 기반으로 건축 사업을 재개하여 재정적으로 회복했다. 이상의 장로님은 1998년 4월 9일에 집사 안수를, 2007년 4월 22일에 장로 장립을 받았다. 이후 8년간 여러 부서를 거치며 오직 겸손과 순종으로 장로 직분을 충실히 감당했다. 허남기 목사님이 추진하던 청지기 사역에서는 고아원 돕기 팀장으로 7년, 33개 청지기 사역팀 협의회장으로 3년 동안 헌신했다. 팀원들과 함께 오류애육원, 노량진보육원, 강화보육원 등을 찾아다니며 원아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직접 나누고 실천했다. 아가페 찬양대 대장으로 봉사할 때 아내와 아들과 딸 모두 함께 찬양대를 10년 넘게 섬겼다. 각종 칸타타와 영성합창제에도 참여했다. 해외 선교 사역에도 관심이 많아서 중국과 필리핀 선교 사역지 헌당 예배에 참여했고, 종현덕 선교사님이 있던 말레이시아에 제1기 선교 방문팀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선교분과장으로 사역할 때는 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 일원과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을 순회했다. 특히 러시아 날치크(Nalchik) 교회에서 노회장 3명과 장로 2명을 세우는 뜻깊은 자리에 안수위원으로 참여했다. 영은 노인학교(현 늘푸른학교) 제5대 교감으로서 어르신들과 야외 학습을 다니며 봉사했던 기억 역시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은퇴 후 여정 장로님의 47년 믿음 생활은 단지 교회 안에만 머무는 신앙이 아니었다. 이웃과 주변을 돌아보며 사랑을 나누고, 멀리 해외에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복이 넘치는 신앙생활이었다. 2014년 12월 28일 장로님이 은퇴한 후에도 이러한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은퇴 후 2019년 1월 투병 중이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같은 해 5월 고일호 목사님마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서 마음의 고통이 컸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장로님은 매일 1시간 30분 이상 규칙적인 운동과 A4 10장 분량의 성경 암송, 1시간가량 기도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노트에 설교 말씀이나 성경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믿음의 일상을 보내며 내면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일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꾸준한 노력으로 성경 필사 1회와 성경 통독 40여 차례를 달성했다. 잘 관리된 체력과 믿음의 열정을 바탕으로, 2023년에는 10박 11일간 성도들과 함께 이스라엘과 튀르키예 성지 순례에 참여하여 복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잊을 수 없는 선교 여행을 다녀왔다. 여전히 영등포노회 은퇴장로 모임, 장로회 산악회, 토요 노방전도팀, 갈렙 찬양대, 중보기도 사역팀, 늘푸른학교 등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장로님은 봉사와 협조를 아끼지 않는, 늘 현역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장로님은 영은교회를 위해 매일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첫째, 세움 받은 이승구 담임목사님이 영육 간에 강건하시기를 둘째, 당회와 제직 그리고 성도들이 담임목사님의 목양 사역에 큰 힘이 되기를 셋째, 다음 세대들이 말씀과 기도로 양육되어 비전 있는 세대로 성장하기를 넷째, 소외되고 궁핍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돌아보는 향기로운 교회가 되기를 장로님은 故 한은순 권사님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2녀(미정, 덕형, 현정)를 두었고 3대가 함께 영은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 시편 119편 105절과 133절을 좋아하는 장로님은 현재 노년의 삶을 애창하는 찬송가 438장 가사처럼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와 같다고 말씀한다. 글/인터뷰 김창원 기자 -
청년부 필로스팀, 설 떡국 나눔 사역주님의 사랑을 눈으로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번 필로스 사역이 바로 그 질문에 대한 살아있는 대답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2월 20일 금요일 밤 영등포역 앞에서 노숙인을 위한 ‘필로스 설 떡국 나눔’ 사역이 있었습니다. 이 사역은 젊은 청년들의 순수한 열정과 믿음으로 시작됐습니다. 청년들은 영등포 땅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목적 아래 모였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사정 속에서도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사역에 헌신했습니다. 사역은 매끄럽지만은 않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문제들과 어려운 돌발 상황들이 우리를 흔들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장비 문제, 시공간적인 제약, 이웃들의 돌발 행동들은 사역 진행을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은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 손이 부족할 때 다른 누군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당황했을 때 누군가의 지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과정 안에서 우리의 능력을 넘어 주님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모든 것을 이끌어가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내려주심과 같이, 우리의 모든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저는 모든 순간 '이 사역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닌 주님이 우리를 통해 행하시는 일'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등포의 소외된 우리 이웃들은 그저 배고픔만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외로움과 절망 그리고 삶의 무게로 지쳐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전하는 동시에, 따뜻한 말 한마디와 관심으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모습을 통해 이 세상에 아직 자신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전하려 노력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의 미소를 통해 주님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에 닿았음을 확신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지친 삶 가운데 위로가 되어주고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됐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감사를 전하며 웃는 모습은 아직도 제 눈앞에 선합니다. 그 모습은 영원히 잊히지 않는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필로스 사역은 영등포의 어려운 이웃뿐만 아니라, 사역을 위해 헌신한 청년들 자신에게도 깊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동시에, 그 사랑을 내 안에 채우는 역설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사랑은 줄수록 더 커지고, 나눌수록 더 풍성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청년들의 헌신적인 모습은 먼저 낮은 자를 찾아가셨던 예수님을 닮아 보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서 주님의 사랑과 그 사랑을 닮은 아름다운 청년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제 마음속에 깊은 감동과 함께, ‘주님과 함께 닮아가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심어주었습니다. 이 사역을 통해 저는 주님의 사랑을 눈으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제가 그 사랑의 통로가 되고 그 사랑을 닮아가는 과정에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닮아가는 영은 청년 공동체를 보았습니다. 이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립니다. 우리는 단지 주님의 도구였으며,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당신의 크신 사랑을 이 땅에 나타내셨습니다. 필로스 사역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님의 사랑을 전할 것입니다. ▪ 영등포 역 앞, 노숙인을 위한 설 떡국 나눔 – 청년부 필로스 사역팀 -
공동체 안에서 피어난 열정2월 13일부터 14일까지 을왕리로 청년부 새내기 비전플러스 1차를 다녀왔습니다. 이제 막 학생 티를 벗고 성인이 되어 청년부에 들어오면서, 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그리고 신앙의 홀로서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과 걱정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부모님의 신앙과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믿음이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부담도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07 새내기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청년부 임원 언니, 오빠들이 세심하게 챙겨주신 덕분에 금세 마음을 열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분위기도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 속에서 점점 편안해졌고, 공동체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습니다. 새내기 비전플러스를 통해 단순히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넘어,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을 나누는 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재밌는 여러 프로그램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웃던 순간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또래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함께 걸어갈 믿음의 공동체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번 새내기 비전플러스를 통해 깨닫게 된 것은, 신앙의 홀로서기는 결코 혼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스스로 믿음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홀로서기임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 또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한 사람이라는 책임감도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임원 언니, 오빠들의 섬김을 보며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준비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섬김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시간이 지나 또 다른 새내기들을 맞이하게 될 때, 지금 받은 사랑을 그대로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1박 2일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청년부 생활의 시작을 하나님께 맡기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비전플러스 일정에도 성실히 참여하며 청년부 또래로서 잘 적응하고, 나의 신앙을 더욱 단단히 세워가고 싶습니다. -
25년간 지켜온 병원 신우회 사역한상욱 은퇴권사는 1950년 충남 논산군 부적면에서 태어났다. 한 권사님은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교회 안에서 자랐다.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이 당연해 이후 자녀들과 가정예배를 드리며 아이들을 양육했다. 권사님은 영은교회에 1969년에 등록하고 찬양대와 교사로 봉사하며 2000년도 유치부 부장으로 임명을 받았다. 교사 직분을 잘 감당하고자 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영등포노회에서 권사님을 김안과병원(구 건양병원)에 파송했다. 유치부 부장직을 감당하기도 힘들어 눈물이 났는데 병원 사역까지 맡게 된 것이다. 허남기 목사님은 순종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며 남편(구한회 은퇴안수집사)에게도 권면하셨다. 작정 기도로 준비하는 중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는 내 것이다.”라는 큰 음성을 듣고 병원 사역에 순종했다. 당시 사역과 봉사가 생각보다 힘에 겨워 많이 울며 사역했다. 권사님은 “기쁨으로 감당하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때 권사님의 힘든 마음을 기쁨으로 변화시키시는 성령님을 느꼈다. 봉사직이지만 하나님께서 권사님을 파송했음을 잊지 않고 직원과 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사역했다. 성심껏 환우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위로하며 기도했고 도움을 줬다. 사역하는 동안 예수 믿겠다는 사람도 많았고 기적과 같은 회복도 있어서 감사했다. 권사님은 2000년 4월 1일부터 2025년 12월까지 이어온 25년의 김안과병원 사역이“내가 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일하셨다”라고 고백한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환우들을 돌봤다. 주일에는 2부 예배 후 출근하여 환우들과 예배드리고 입원환자를 심방하고, 저녁 시간에 집에 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영은교회에서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심야기도회를 드렸지만, 교인들은 권사님을 생경하게 바라보며 “새신자 등록은 하셨어요?”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교회 안에서의 교제는 늘 목이 말랐다. 그럴 때일수록 김안과병원을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 준 구역’이라 생각하고 구역장처럼 열심히 섬겼다. 김안과 직원들의 입원, 수술, 치료 등의 소식을 들으면 찾아가서 기도하고 위로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험했다. 전도 열매도 많았고 문제해결도 많았다.
-
고등부 겨울수련회: 사칙연산안녕하세요. 1월 25일부터 27일까지 오륜비전빌리지에서 열린 고등부 겨울수련회에 참여한 고등부 회장, 2학년 김선규입니다. 사실 저는 중등부 때 교회를 성실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의 신앙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닌, 단지 출석을 인정받기 위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중등부에서 진급한 뒤, 짜여 있던 고등부의 체계와 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어려움과 시련을 덜어내 주셔서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1학년 때 고등부 선생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2, 3학년 선배들의 친절한 보살핌이 저에게는 큰 은혜였고, 사랑의 의미를 깨달았던 순간이었습니다. 2026년 겨울수련회를 준비하며 함께 모여 기도로 준비할 수 있음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당연하지 않지만, 고등부를 사랑해 주시고 항상 기도해 주시는 선생님들과 함께 사역하는 학생임원들이 있어 은혜롭고 풍성한 수련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수련회는 제게 또 한 번의 큰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수련회 중, 저는 ‘잘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보다 ‘인도해 주시는 주님의 뜻을 따르자’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수련회 주제였던 “사칙연산”을 통해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김영락 전도사님이 주신 말씀으로 제 안에 있던 교만과 두려움, 부담감은 ‘덜어내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제 안에서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곱하고’ 또 ‘나누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학년이 된 지금, 저는 단순히 나이만 많은 선배가 아니라 후배들에게 뿌리가 되어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또한 1학년 때 조건 없이 받았던 사랑을 이제는 베풀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고백합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저는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제 삶에서 덜어내야 할 것은 ‘덜어내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하며’ 그 사랑을 서로에게 ‘곱하고’ ‘나누는’ 우리 영은 고등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맡겨주신 자리에서 맡겨진 사역을 충실히 감당해 나가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중등부 리셋 프로젝트: 내 인생의 가장 특별한 ‘다시 시작’1월 26일부터 28일까지 양주 예닮원에서 중등부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이번 중등부 수련회는 제게 정말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중등부에 온 후 처음 간 수련회이기도 하고, 친구들과 서로 더욱더 친해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건 이번 중등부 수련회를 통해 하나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았습니다. 저와 항상 함께하고 계신다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처음으로 하나님께 저와 만나 달라고 고백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수련회였습니다. 수련회 전에는 그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이 많겠지’하는 기대감뿐이었지만, 수련회를 마치고 나니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탁구채로 배드민턴 치기, 높이 쌓기, 공 집어넣기, 줄다리기 등 여러 레크리에이션 활동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선생님들과 언니, 오빠들이 잘 챙겨줘서 너무 좋았고 급식과 야식도 너무 맛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예배와 집회가 은혜로웠습니다. 예배 때 들었던 말씀으로 제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나님보다 제 생각을 앞세웠던 것을 반성했습니다. 특히 찬양 시간에 함께 손을 들고 기도하던 순간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 시간만큼은 걱정도, 고민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와 기도 제목도 큰 힘이 됐습니다.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기도하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습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저는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수련회에서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그 마음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이번 수련회를 준비하신 전도사님과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다음 수련회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실시간뉴스
실시간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