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담은 사전적으로 '남의 흠을 들추어 헐뜸음. 또는 그런 말'을 뜻합니다. 즉 그 자리에 없는 어떤 사람의 흠을 들추어 헐뜯는 것을 말합니다. 신문사 칼럼 중 독보적인 기록을 보유한 '이규태 코너'가 있습니다. 이규태 씨는 23년 동안 6,702회분을 기고하며 대한민국 언론사상 최장기 칼럼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는 『한국인, 이래서 못산다』는 책에서 '험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인에게 보편성을 지닌 인간 갈등의 자체 해소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나름의 그 해소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갈등을 있게 한 상대방이 없을 때 그 사람을 헐뜯어 말할 수 있는 험담이 아닌가 싶다. 험담을 실컷 하고 나면 화도 다소 풀리고 긴장도 느긋해지며 기분도 좋아진다. 이러한 험담은 한국인의 한국인다운 특징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험담을 합니다. 험담하는 동안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맞장구 쳐 주는 사람 덕분에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며, 또 험담의 대상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험담의 대상이 된 사람은 상처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둘만 아는 비밀로 시작했던 험담은 또 다른 험담을 그리고 또 다른 험담을 재생산하며 공공연한 비밀이 됩니다. 처음 험담을 시작한 사람은 일시적으로는 스트레스를 해소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언젠가 누군가도 내 험담을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점점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깊은 내면에는 자신에 대해서 인정해 달라는 욕심이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내가 그보다 더 뛰어나고 소중한데,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더 노력하고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기보다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험담으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상대방의 약점을 홍보하고, 상대방의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자신을 높이는 반사 이익을 얻으려 합니다. 이러한 험담 때문에 친밀했던 관계가 단번에 틀어지기도 하고 믿음의 공동체를 떠나는 일도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에도 험담 때문에 공동체에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매우 사랑하는 자인 가이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요삼1:1)" 요한은 가이오가 형제 곧 나그네 된 사람들에게 행한 것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요삼1:5)" 여기서 '나그네 된 사람들'은 요한과 같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다른 교회를 방문하거나 선교 여행을 하는 복음전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가이오는 이러한 복음 전도자들을 정성껏 대접하였고, 성실히 섬기면서 선교를 도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이오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에 그와는 전혀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요삼1:9)
성경은 디오드레베에 대해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공동체 안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킨 듯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도들이 순교한 이후 교회의 사역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장로와 감독이 사도의 자리를 대신해 각 지역 교회의 대표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이면서 장로인 요한은 지역교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디오드레베가 이러한 영향력 있는 자리에 야심을 품었습니다.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그는 자신이 그 지역의 지도자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사도 요한의 간섭에서 벗어나려 하고 자신이 맡은 직임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합니다. 디오드레베로 인해 교회 안에 정치적인 다툼이 일어납니다. 교회가 가이오의 편과 디오드레베의 편으로 나뉘면서 교회다움을 잃어갑니다.
이러한 문제를 일으킨 디오드레베는 이제 어떻게 합니까?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요1:10)
디오드레베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험담을 합니다. 가이오 편과 디오드레베 편으로 나뉘어 이런 저런 문제로 어수선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으뜸이 되기 위해 자신을 높이고 상대방을 낮추는 강한 조치를 시도합니다. 그는 그동안 교회 공동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요한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험담을 선택합니다. 디오드레베가 어떠한 내용으로 험담을 했는지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그는 '악한 말'을 일삼습니다. 그러나 험담으로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았다고 합니다.
디오드레베의 악한 행동은 세 가지였습니다. 먼저'복음 전도단을 맞이하지 않는 것' 입니다. 이는 요한의 부탁을 거절함으로써 요한의 권위를 부정하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둘째는 '금하는 것' 입니다. 그는 가이오의 편에 서서 요한의 부탁을 수용하는 사람들, 즉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방해하고 협박했습니다. '금하여' 라는 단어는 문법적으로 반복되는 동작을 나타냅니다. 한두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방해 공작을 펼친 것입니다. 셋째는 '내쫓는 것' 입니다. 디오드레베는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자들을 교회에서 쫓아냅니다. 이렇게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는 악한 말로 혐담하여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회가 교회다움을 갖지 못하게 했습니다. 한 사람의 험담으로 인해 교회는 큰 혼란에 빠지고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 험담 탈출기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한 사람의 험담으로 시작된 교회의 혼란에 대한 처방을 내립니다. 그의 처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① 본받지 말라!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요삼1:11)
여기서 '악한 것'은 디오드레베의 악한 행위들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험담을 일삼았던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악에 악을 더해 핍박했던 것을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군가 나에게 험담을 늘어 놓으면, 자기도 그 사람에 대해 험담하고 싶고, 흠집을 내고 싶은 충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만일 가이오의 편에서 있는 사람들이 디오드레베가 했던 것처럼 상대방을 흠집내고, 험담을 늘어놓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자신들이 핍박받은 만큼 상대방에게 되갚는다고 생각해봅시다. 그것이 과연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모습일까요?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악한 것을 본받지 말라고 명령한 것은 사람의 본성대로 되갚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② 본받으라!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요1:11)
사도 요한은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다(요삼1:11)고 기록합니다. 바꿔 말하면, 선한 것은 하나님께 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 4:7)에서 보듯이 '사랑'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요한의 별명이 '사랑의 사도' 라고 불리울 정도로 그는 서신서에서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하나님께 속한 특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하는 '선한 것'은 '사랑'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험담으로 인해 시작된 교회의 혼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선한 것, 즉 사랑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들의 악행을 흉내내지 않고,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을 따르는 것이 궁극적인 승리라고 강조합니다.
■ 적용
누군가가 여러분을 험담하여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의 악한 것을 따라 그가 했던 방법대로 그를 험담하여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누군가 공동체 안에서 험담하여 내가 맺고 있는 관계
를 어렵게 만든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의 악한 것을 따라 그가 했던 방법대로 그를 험담하여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게 만들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험담 때문에 우리는 마음이 상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험담 때문에 사람이 미워지고, 심지어 믿음의 공동체가 깨어지기도 합니다. 험담 때문에 아무리 마음이 상하고 힘들지라도 상대방의 악한 것을 본받지 말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속한 선한 것, 사랑을 본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입을 선한 것을 위해 만드셨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4:29)
하나님께서 덕을 세우는 데 필요한 선한 말을 하고, 은혜를 끼치는 일에 사용하도록 우리의 입을 만드셨습니다. 이와 같은 일에 귀하게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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