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리새인의 가르침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43)
‘더 나은 의’ 를 추구하기 위한 다섯 번째 과정은 ‘원수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레위기의 율법을 언급하십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 19:18)
본래 하나님의 율법은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수도 갚지 말고 사랑하라"는 명령은 매우 부담스러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도 레위기의 말씀에 내포된 부담감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그 의미를 완화시켰습니다. 그들은 ‘네 몸과 같이’ 를 빠뜨린 채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도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로 바꾸었습니다. 그리하여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하신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경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미워해도 된다는 허용으로 간주했습니다.
■ 예수님의 재해석
그러나 이와 같은 가르침에 대해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재해석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마 5:44)
구약의 율법은 이웃을 사랑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님은 그 사랑의 대상을 원수에게까지 확대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선한 이웃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적대시하고 괴롭히는 원수 이웃은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콕 집어서 나를 적대시하는 사람들까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원수사랑 명령을 표현한 동사는 헬라어 ‘아가파오' 입니다. 나를 적대하는 사람에게 ‘관대하고 자비로운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기도하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우리에게 손해를 입히고, 모욕과 수치를 주고, 배신감을 안기며, 이유 없이 깎아 내리고, 늘 하는 일에 반대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명령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명령이다. 기도하는 매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원수들에게 가고, 그의 편이 되며, 그를 위해 하나님께 탄원한다.’’
마음속에 원수에 대한 사랑이 조금이라도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를 위해 기도하려 한다면 원수 사랑을 절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도를 먼저 해야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을 기준으로 삼으면 결코 우리의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원수에게 사랑으로 되갚아 주는 단계까지 니아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짧은 문장이라도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을 위해 기도문을 적어 보십시오. 그러면 본 회퍼의 말처럼 그 사람에게 다가가고, 그의 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저히 품을 수 없을 것 같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증오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원리를 통해 ‘더 나은 의’를 실천하며 살아갈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2) 사랑의 지경을 넓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 5:46~47)
유대인들은 세리가 로마와 헤롯을 위해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담당했기에 창기와 마찬가지로 부정한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이방인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자신의 가족을 사랑할 줄 알고, 친구를 존중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선대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푼다고 하십니다. 이처럼 자기가 속한 집단의 구성원에게만 제한된 사랑은 세상이 기대하고 실천하는 수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나은 의’를 추구하기 위해 사랑의 지경을 넓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지경을 넓히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본능적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 중 대부분의 시간을 나 자신을 위해 보냅니다. 오늘날의 문화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자기 이익’이라는 렌즈를 통해 자기 중심적 삶을 살아가라고 부추깁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관계를 내 이익에 근거해 평가함으로써 나에게 별로 도움되지 않는 사람들과 사물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합니다. 이러한 관점이 강화되면 타인을 바라보는 마음이 점점 사라집니다. 내 마음에 드는 대상만을 골라서 사랑합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취향입니다. 사랑과 취향은 다릅니다. 우리가 사랑을 취향으로 이해한다면, 나의 취향에 맞는 존재가 사랑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내 안에 그를 향한 좋은 감정이 없다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내 삶의 경계를 넘어서 내게 찾아온 상대방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상대방에게 가치를 두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제대로 주목함으로써 사랑의 지경을 넓힐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온전함’은 목표에 도달함 또는 ‘성숙함’ 이라는 의미 입니다. 성도의 ‘온전함’은 ‘완전함’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흉내내는 가운데,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온전함’을 신앙생활의 목표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먼저 말씀하신 후에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온전하신 분이시지만, 우리는 스스로 온전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온전하라’로 번역된 단어는 ‘중간태’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이 명령은 능동태로써 온전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려는 사역에 열심히 참여하라는 의미입니다. 온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범을 따라 우리가 그 수준까지 성장하기를 예수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원수 사랑’을 이렇게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
나를 힘들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한 상대를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않고 도리어 적극적으로 복을 빌라고 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할 때 하나님은 그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 주십니다. 원수를 축복할 때 하나님은 그 원수를 축복하는 사람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배워 원수를 사랑하는 자리까지 나아갈 때 비로소 ‘더 나은 의’를 이룰 수 있습니다 .
■ 더 나은 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통해 원수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서기를 바라셨습니다. 나 중심에서 벗어나 사랑의 지경을 넓혀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닮아가며, 원수를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할 수 있는 온전함에 이르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더 나은 의를 추구하며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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