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간절한 기도

월간동행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

(누가복음 22:39~46)

글|이승구 담임목사

  • 등록 2024.04.14 09:47
  • 조회수 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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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을 준비하라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후 십자가의 길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눅 22:36) 

 

예수님께서 검을 준비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목숨을 바쳐서라도 믿음을 지키라는 의미였습니다. 즉 영적 능력의 칼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능력의 칼이 무엇인지 직접 가르쳐 주십니다. 

 

■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

예수님은 습관에 따라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십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영적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십니다.

 

 

1) 기도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방어하는 과정입니다.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눅 22:40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냥 기도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력이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여기서 ‘빠지다’ 로 번역된 단어는 영향권 아래에 들어갔다는 의미입니다. 즉 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것에 종속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곧 제자들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라는 유혹에 빠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들의 죄성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믿었던 모든 것이 단번에 무너질 수 있는 수많은 유혹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 하십니다. 즉 기도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방어하는 방법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기도는 유혹을 당할지라도 그것에 떨어지지 않고 이겨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유혹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는 생각입니다. 내가 가진 물질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육신의 정욕’ 을 채우기에 급급한 삶을 살아가도록 유혹합니다. 나를 만족시킬 모든 쾌락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목의 정욕’ 으로 눈이 멀게 하는 유혹입니다. 나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이기적 생각은 ‘이생의 자랑’ 에만 관심을 갖게 하는 유혹입니다. 이와 같은 유혹은 우리를 ‘하나님 중심’ 에서 ‘인간 중심’ 으로 이끌어 갑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성을 좌로나 우로 치우치게 만들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을 분별하지 못하게 합니다. 

 

나약한 인간인 우리는 언제든 유혹에 빠지고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유혹과 시련이 우리를 거칠게 흔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혹과 죄에 굴복당했을지라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힘은 바로 기도에서 나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할 때, 유혹에 빠지지 않고 영적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이와 같은 영적 능력의 칼을 갖추라고 하십니다.

 

2)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눅 22:42)

 

‘아버지의 뜻’ 은 이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이 잔은 ‘진노의 잔’ 입니다. 예수님은 ‘진노의 잔’ 을 마셔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역이 임박한 순간에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연약한 인성(人性)의 모습이 보이는 표현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감당하신 구속 사역이 얼마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지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순조롭고 편안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르신 것이 아닙니다. ‘땀이 핏방울 같이’ 될 때까지 힘쓰시고 애쓰시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고 인내하심으로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아버지 앞에 홀로 무릎 꿇고 기도하시며 아버지 뜻대로 순종할 것을 고백하시는 예수님의 기도에는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존경과 신뢰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과정’ 입니다. 기도는 그저 우리의 소원을 관철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날 밤 기도의 절정에서 가장 위대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세 번이나 반복된 기도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꺾어 아버지께 드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였듯이 가장 위대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고, 가장 위대한 삶은 기도로 발견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의 뜻, 하늘의 뜻보다 내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라는 기도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면서도 속으로는 ‘주의 뜻이 내 뜻과 맞아야 되는데’ 라고 염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이미 주신 주님의 응답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기도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뜻과 달라도 응답은 응답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응답이 나중에 보면 우리의 뜻보다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뜻이 가장 좋은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이와 같은 영적 능력의 칼을 갖추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3) 기도는 위로를 위한 과정입니다.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눅 22:45)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육신의 피곤함에 굴복하지 않고 더욱 힘쓰고 애쓰며 기도하셨습니다. 기도 후 제자들에게 가신 예수님은 그들이 잠든 것을 보셨습니다. 누가복음은 제자들이 잠든 이유를 '슬픔’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 한편 마태복음은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 26:41) 

 

제자들은 지금 고통과 근심으로 가득합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슬픔으로 인하여 육신이 약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습을 사실 그대로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의 형편을 마음 깊이 헤아리며 바라보고 계십니다. 지금 깨어 기도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책망하기 보다 인간의 연약한 본성을 드러낸 제자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계십니다. 마음은 원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긍휼의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책망보다 위로를 통해 제자들에게 필요한 영적 능력의 칼을 소유하도록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위로를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처럼 ‘위로의 기도’ 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의 칼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 영적 능력의 칼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영적 능력의 칼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방어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내가 할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으로 사는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대충대충 기도하는 무기력한 삶이 아니라,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영적 능력의 칼이 있습니다. 

 

또한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응답도 응답입니다. 그리고 그 응답이 가장 좋은 응답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영적 능력의 칼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위로를 위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은 원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누군가를 긍휼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영적 능력의 칼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