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랑과 기쁨을 넘어 감사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에게 자랑과 기쁨이 넘치는 교회(살후1:4)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랑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자랑은 감사로 이어집니다(살후1:3). 바울이 자랑과 기쁨을 넘어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데살로니가 교회에 ‘믿음의 성장’ (살후1:3)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를 믿은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첫 편지를 보낸 지 일 년 정도 지난 후 데살로니가 후서를 썼습니다. 그 사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1년 전과 1년 후가 달라야 합니다. 성도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변화와 성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믿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대상을 제대로 알아야 바른 믿음이 생기고, 또 믿음이 자라게 되는 법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이 원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그리고 가르침의 의미를 더 깊이 알아갈수록 그들의 믿음도 더욱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크기(size)’ 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의 말씀을 봅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겨자씨의 특징은 매우 작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초점은 ‘크기’ 가 아니라 ‘생명력’ 에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믿음으로 보일지라도 그 안에 생명력이 있으면 엄청난 능력이 발휘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에는 생명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지역에 본이 되었고, 먼 데까지 소문이 퍼졌습니다(살전1:7~8)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어떻게 믿음이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데살로니가 교회는 말씀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당시 사람들이 아고라에 모여서 변론하던 것과 달리, 선포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말씀을 받을 때,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된 자세로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자기 편견이나 고집, 선입견을 배제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아멘’ 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받을 때마다 간절한 믿음이 담긴 고백을 드렸습니다. 말씀에 대한 열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더 깊이 알아가게 했고, 믿음을 성장시켰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먹어야(벧전2:2) 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아멘으로 말씀을 받아, 날마다 말씀을 상고해야 합니다. 말씀을 잘 알아가도록 노력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결속이 믿음이 성장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크고 작은 핍박 속에 살고 있었지만, 오히려 서로 격려하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고, 더욱 바르게 살고 믿음으로 살고자 애썼습니다(살후1:4). 어려운 상황 가운데 더욱 결속하여 서로에게 믿음의 격려를 나누었습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서로 격려하는 ‘결속’, 믿음의 고백이 흔들리지 않도록 서로 보살펴 주는 ‘결속’,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결속’ 이 있었기에 그들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교회와 가정도 믿음으로 결속할 때 더욱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서로 교제하여 결속하는 것은 믿음의 성장에 유익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모임에 더욱 열심히 참여해야 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 던 예루살렘 교회와 같이 성도들의 모임에 성실하게 참여하면 믿음이 잘 성장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한 첫 번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말씀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알고 믿어 믿음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예배와 모임을 통해 서로 결속했습니다. 그리하여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바울이 자랑과 기쁨을 넘어 감사하는 두 번 째 이유는 무엇일까요?
풍성한 사랑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성도들을 향한 서로 사랑을 강조 했습니다. 일 년 후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형제 사랑을 잘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살전 4:9~10)
사랑에는 많은 수고가 따릅니다. 기대만큼 결과가 따라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수고를 성가시게 여기지 않고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 사랑은 데살로니가 안에만 머물지 않고 마게도냐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어떻게 이토록 사랑이 풍성해질 수 있었을까요?
형제 사랑은 조용히 행하는 것(살전4:11)입니다. 내적인 변화 없이는 진실한 변화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처럼 시끄럽게 하지 않고, 조용히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신뢰합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열매를 맺게 됩니다. 형제 사랑은 절대로 사람의 주목을 끄는 방식이어서는 안됩니다. 성령이 역사해서 조용한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 사랑이 풍성해진 비결입니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내 손으로(살전4;11)’ 행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 해야 할 첫걸음은 자기 손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일에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형제를 돕기 위해 필요한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내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는 것이 형제 사랑입니다. 누군가의 슬픔에 함께 공감하고 동참하는 것이 형제 사랑입니다. 삶의 작은 여유를 나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내 손으로 형제를 위해 사용하는 것 또한 형제 사랑입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따뜻한 사랑이 느껴져야 합니다. 몇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풍성하게 베푸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까? 요란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시선과 방법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방식으로 생명을 살리는 사랑이 조용히 만들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내 일과 내 할 도리를 ‘내 손으로’ 성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자신에게만 시선을 두지 않고 주변에 손을 내밀고 공감해야 합니다.
■ 자랑과 기쁨이 되는 영은교회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자랑을 넘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믿음이 자라고 사랑이 풍성해졌기 때문입니다. 즉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영적 혁신이 바울의 자랑과 기쁨이며 하나님께 감사 하는 이유였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웃과 하나님께 이와 같은 자랑과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대한 열정과 상호 결속으로 믿음이 성장하는 교회, 조용히 내 손으로 행하여 형제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는 교회,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Innovat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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