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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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피지선교 통신● 마태복음 20;28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새번역) 1. 시드니 수정교회 단기선교팀 12명(10월8일 –15일) 단기선교팀은 에너지를 집중하여 선교지에 쏟아 붓는 지상전을 지원하는 공중전과 같습니다. 공 중전의 방향과 좌표를 위해 지상에서는 미리 그곳을 정탐하고 상황을 살피며 사전에 숙소와 차량, 각 교회 목사님과의 관계와 진행표를 맞추어 공중전의 융단폭격이 효과적이 되도록 준비합니다. 피지목장 가족과 수바목장 청년들, 그리고 두분의 목녀들이 여섯 교회를 돌며 인도와 피지, 중국인 교회에서 따뜻한 환대와 교류가 있었습니다. 어린이 사역과 청소년 사역, 주일 예배에서 간증과 찬양, 워십댄스와 간증설교를 통해 선교사역의 길을 넓혀주었습니다. CCC 교회에 이어 두번째로 가정교회로 전환한 HCC 교회에서 10명의 목자 목녀 임명식이 있었습니다. 2. 엘림 중국인 교회 중국인 통역으로 일하던 양양 청년이 호주에서 학업하던 중 피지를 4일간 방문하였는데 자기의 파트너 아니샤와 함께 왔습니다. 그녀는 22살의 힌두배경의 대학생이며, 양양을 만나 평생을 약속 하고 어머니 루시와 교회 앞에 인사했습니다.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인종과 종교가 다른 것을 양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힘으로 이겨 보겠노라 호기있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 염려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중국인 새신자가 새록 새록 2-3명씩 교회로 들어와서 반갑기도 하고 이들이 잘 정착하길 기도합니다. 새신자들을 포함한 중국인 성도들과 헌 옷가지와 과자박스를 가지고 HCC 교회 주일 오후예배에 동참하여 설교하고 나누었는데, 레오네 목사님은 오히려 자신이 농사 지은 콩줄기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3. 귀국즉시 문경 목회자 컨퍼런스에 참석하다 10주 일정으로 한국을 향해 피지를 출발한지 23시간, 밤 11시에 인천공항에 도착, 비행기가 연착하여 연결되는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게 되었는데 감사하게도 짐도 무사히 우리를 따라와 도착해 있었습니다. 픽업 나온 동생이 천안으로 데려다 주어서 밤 1시 천안아산제자교회 피지목자 목녀 집에 도착하여 지극한 환대를 받고 문경의 목회자 컨퍼런스에 참석하였습니다. 각지에서 온 500여명의 목사님 사모님들이 천석길 목사님 초원의 섬김으로 가정교회의 DNA를 나누며 서로에게 격려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용인으로 올라와 의료보험, 은행, 병원등의 행정처리들을 하고, 27일 주일 시냇가 교회에서 임선교사가 선교보고하고, 30일은 빛소망 교회에서 최선교사가 보고 드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공백에도 여전히 허물없이 대해주는 시냇가 지역목사님들과 만두전골을 먹었는데 고국의 가을은 아름답고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기도제목 1. 11월 7일-14일 엘림 중국인교회와 난디 중국인 교회 자매 4명이 한국 방문을 통해 가정교회 탐 방을 잘 할 수 있도록 2. 고국에 머무르는 8주가 선교보고와 아울러 쉼과 배움의 시간(평세, 탐방)이 되도록 3. 딸 동화가 새내기 직장인으로 서울 살이를 하고 있는데 부모로 부터 든든한 심적인 지원의 시간이 될 수있도록 2024. 10.31 임성윤 최경순 선교사 드림 -
국제전도폭발 지도자 임상훈련을 마치며9월 2일~9월 6일까지 4박 5일간의 국제전도폭발 지도자 임상훈련이 영은교회에서 진행되었다. 전도폭발(Evangelism Explosion) 훈련은 1967년 미국 플로리다주 Ft. Lauderale 에서 교회를 개척한 제임스 케네디 목사에 의해서 시작된 사역이다. 성경적 전도원리를 사용하여 케네디 목사의 코롤리지 장로교회는 처음 17명의 교인이 9천 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폭발’이란 폭탄에 의한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전도폭발훈련의 임상훈련은 교파를 떠나 성경적 원리를 효과적으로 전도하기 위한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으로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전도폭발훈련을 체계화하여 각 교회 및 지도자에게 전함으로써 주님의 복음전파 사역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온라인 교육을 통해 지도자 교육은 지속되었다. 영은교회도 2021년 제316회 국제전도폭발 지도자 임상훈련을 줌을 통해 주관하기도 하였다. 이번에 직접 영은교회에서 목회자와 평신도지도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 것은, 주님이 주신 축복과 은혜의 시간이 되었다. 이번 제336회 국제전도폭발 지도자 임상훈련은 41명의 교역자와 평신도지도자가 참여하였다. 교육에 참여한 분 중 평신도는 전도폭발훈련을 4~5단계까지 마치고 전도폭발 훈련을 바로 세우는 역할을 진행하게 되며, 목회자는 교육을 마친 후 전도폭발훈련을 담당하게 된다. 임상훈련은 매일 아침 경건회와 기도회를 시작으로 강의와 시범, 전도현장 실습, 공개 보고회, 수요예배 참석, 복음개요 1과 2, 쓰기시험, 복음전문 구두시험, 복음제시, 암송평가 등으로 강도 높게 진행된다. 현재 국제전도폭발 지도자 임상훈련은 국내 17여 개의 기지교회가 하나님의 전도사역을 앞장서서 섬기고 있으며, 영은교회도 16년 만에 주님이 주신 전도 사명의 기지교회로 재부여받게 되었다. 이번 전도폭발 훈련을 진행하는데 정성훈 목사의 지도아래 팀장 김윤정 집사를 중심으로 4개월 전부터 합심하여 기도로 준비하였고, 준비하는 과정 중에서도 모두가 주님의 충성된 종으로 섬겨주었다. 전도폭발 훈련으로 2023년 11월에 <2024년 임상훈련> 일정이 결정되었는데 우리 교회 본당 리모델링과 겹쳐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교육 장소와 식당, 버스 등 모든 것이 이승구 담임목사님을 비롯한 당회와 장로님들, 권사님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순적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3개월 전부터 시작된 시범팀의 연습과 임상훈련의 훈련자로 섬겨주신 30여 명의 임상훈련자의 암기와 100여 명의 중보기도부의 중보기도, 식당봉사와 주차, 간식, 버스지원 등, 영은교회의 모든 분의 관심과 섬김을 통해 영은 믿음의 공동체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복음제시 대상자를 선정해 주신 교구 담당 목사님 등 모든 분이 주님을 섬기듯 섬겨주심에 감사드린다. 특히 9월 5일 훈련대상자들이 노방전도를 진행할 때 비가 왔는데, 우중에도 노방에 나가 전도 실습을 진행하는 중에도 주님이 예비해주신 복음을 들을만한 영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전도폭발임상훈련 사역에 기도와 물질로, 무더위 가운데서도 여러 가지 손길로 지원과 후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16년 만에 영은교회를 ‘전도폭발’의 기지교회로 세워주시고 섬길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
“더 잘 담겠습니다.““더 잘 담겠습니다.“ 억울할 때 있으시죠? 힘든적도 많으시죠? 외롭기도 할 겁니다. 억울하고 힘들고 외로운 마음을 다 담을 수만 있다면…… 마음 그릇이 큰 사람은 주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고후 6:11~13) -
내 인생의 첫 노방전도복음 전하는 일에 크게 생각 없이 살아온 제 인생에 예수님을 모르는 남편과 시댁을 만난 저는 신혼생활 내내 하나님께 속상함을 이야기했고 결국 ‘믿음의 명문가’라는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위해 남편과 시어머니가 예수님을 알고 만나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도폭발팀을 모집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저와는 관계없는 훈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마음에 부담이 몰려왔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앉았는데 갑자기 전도폭발이 떠올라 눈을 번쩍 떴습니다. 순간 기도하고 싶어지지가 않더라구요. 하지만 마음을 다시 잡고 하나님께 제가 전도폭발을 안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늘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드리고 이틀 뒤에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일을 통해 저를 완벽하게 설득해 내셨습니다. 전도폭발 강의가 시작되고 복음 제시 전문을 암송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이것만 잘 외워도 전도대상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잘 이야기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암송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글자 하나만 틀려도 버벅대기 일쑤였고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복음 제시 예수그리스도 부분을 날마다 암송하며 내 입으로 고백할 때마다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죗값을 대신 치르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그 한없는 사랑이 떠올라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제 인생 첫 노방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 대뜸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너무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럴수록 성령님께선 기도로 더 준비하게 하셨고, 훈련자 권사님을 통해 복음제시를 할 수 있게 문을 열어 주셔서 덕분에 복음 전하는 귀한 일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교회 새가족으로 등록하신 할머니께 복음을 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우리와의 약속 자체가 많이 귀찮아 보이셨지만 그분의 쓸쓸하고 외로운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 나누는 가운데 그분의 마음이 많이 열리셨고 복음을 들으시고는 이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이후에 기도하는 것과 성경읽는 것을 알려드리니 사모하는 마음을 비치셨고, 7일후에도 함께 만남을 가졌는데 그땐 너무 반갑게 웃으며 반겨주셨습니다, 그리고 몇번이고 함께 기도하고 같이 떠듬떠듬 성경을 읽는 가운데 제 마음도 함께 뜨거워졌고 진정 복음 안에 참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는 귀한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로 도와주신 동역자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복음으로 무장시켜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
전도 노장(老將), 송준근 은퇴장로 <1>토요일이면 코스트코 앞에서 “오직 예수”라는 전도띠를 두르고 전도하는 송준근 은퇴 장로를 볼 수 있다. 올해 나이 93살의 ‘전도 노장(老將)’ 송준근 장로의 전도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일평생 ‘전도의 사명’을 가지고 살아온 송준근 장로님! 지면을 통해 장로님의 전도 이야기를 들어 본다. ■ 3대째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송준근 장로 송준근 장로는 1931년 평남 강동군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장로님은 모태신앙으로 3대가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부친은 평남 삼합리교회의 영수(장로 밑의 직분)였고 모친은 집사였다. 조부모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6.25 전쟁이 터지자 장로님은 홀로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장남을 잃은 부친은 외아들 장로님을 교회전도사에게 부탁하며 안전하게 남한으로 데려가 줄 것을 부탁했다. 그때 장로님은 19살 청년이었다. 장로님이 피난 내려와 처음 정착한 곳은 영락교회 피난민 수용소였다. 그 수용소에서 평양에서 살다가 피난 온 누님과 매형을 만날 수 있었다. 남한에서 만난 유일한 가족이었다. 수용소에서 나와서 누님과 함께 인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이후 누님 가족과 서울로 이사와 생활했다. 그때 효창공원에 있는 창덕교회에 출석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매형의 형님이어서 6~7년간 창덕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 신앙의 위기와 회개 누님과 함께 살던 장로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누님집에서 나와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장로님은 신앙의 위기를 맞게 됐다. 누님 집을 떠나 살면서 장로님은 예수님을 잊고 말았다. 교회와는 멀어졌고, 세상의 온갖 죄에 빠져 방황했다. 그러다가 화곡동에 있는 강서성결교회를 다니게 됐다. 이 교회에서 장환 목사님을 만난 게 주님의 은혜였다. 장로님은 강서성결교회에서 다시 옛 신앙을 회복할 수 있었다. 목사님 앞에 선 장로님은 눈물로 회개했다. 인천에 살면서 알게 된 허정옥 권사와 결혼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장로님은 삶의 출발선에서 용기를 내어 화곡동에 탁구장을 차렸다. 감사한 마음으로 강서성결교회 장환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개업예배를 드렸다. 장로님은 저녁마다 탁구장 바닥을 닦으며 회개의 기도를 했다. 세상의 모든 죄 된 것을 끊기로 ‘맹세’했다. 다시 죄를 짓는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행5:1~6)처럼 현장에서 죽겠다고 맹세의 기도를했다. ■ 장안평기독신우회를 일으키다 그렇게 회개의 눈물로 시작한 탁구장은 얼마 되지않아 완전히 바닥을 보였다. 장로님에게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하지만 장로님은 하나님의 용서를 믿으며 다시 일어섰다. 장로님은 장안평 자동차매매 시장을 찾아갔다. 눈물겨운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로 그곳에서 중고자동차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밑천도 없이 시작한 장사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돈을 많이 벌게 되었고, 영은교회 옆에 있는 한양연립을 2천만 원에 매입해 내 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주님의 기적 같은 은혜였다. 중고차매매를 하면서 장로님은 전도의 사명을 갖게 되었다. 1989년, 장로님은 장한평 자동차 중고시장에 있던 ‘기독신우회’에 들어갔다. 미미했던 기독신우회에서 믿는 이들과 함께 합심하여 예배를 드렸다. A~D 네 개 동 중 입주자가 가장 많은 3층에 방을 얻어서 기독신우회에서 적극적으로 운영했다. 처음에는 몇 명 되지 않던 예배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이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헌금도 많아져 신우회의 재정 상황이 좋아졌다. 그래서 장로님은 신우회 회원들과 함께 여러 주민센터를 찾아가 극빈자 다섯 가정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몇 군데 다닌 결과 30가정을 소개 받을 수 있었다. 장로님은 그 가정을 전도하기 위해 매달 5만 원씩 후원했고, 장사하지 않을 때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이러한 장로님의 수고와 헌신이 성동구청에까지 알려지게 됐고, 장로님은 구청으로부터 표창장과 상품(시계)을 받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됐다. 그때 만든 신우회는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 올해로 35살이 된 신우회는 장로님의 뒤를 이어 신우회 출신의 장로와 집사들이 운영하고 있다. 장로님은 그를 ‘전도 노장(老將)’으로 만든 신우회를 잊지 못한다. -
“소리”“소리” 세상 소리 요란하면 하나님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낮은 곳에 머무르는 나직한 속삭임. 세상 소리 귀 막으면 그때서야 들립니다. 하나님의 낮은 말들. 하나님은 계속해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사랑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시편 2:7~8) -
'시인 장로님’의 신앙유산우리 교회에는 ‘시인 장로님’이 계신다. 김경섭 은퇴장로님이 그 주인공이다. 내 오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로님은 교육자이자 시인이셨다. 장로님의 시는 특별한 때마다『동행』에 게재되곤 했다. 학교 국어교사이자 교회 중등부 교사였던 김경섭 장로님은 평생 교육에 몸담았던 ‘시인 교사’였다. 올해로 93살이된 장로님은 “예수 믿으면 복 받아서 장수하고 건강해요!”라며 활짝 웃는다. ■ 불교집안에서 태어나 믿음의 가정을 꾸리다 김경섭 장로님은 1931년 8월 3일 황해도 수안군 대성면 내덕리(생금촌)에서 5남매 중 3남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부모님은 불교 신자였다. 가족 모두가 불자로 살았다. 이후 장로님이 ‘믿음의 씨’가 되어, 온 가족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장로님이 예수를 믿기 시작한 건 군대에서다. 장로님은 1954년 7월, 마산 군인교회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됐다. 23년 만에 장로님 가정에 최초의 기독교 신자가 탄생한 것이다. 장로님은 “6.25가 큰 복”이라고 회고한다. 황해도가 고향인 장로님이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남쪽으로 피난 오게 됐고, 휴전 이듬해에 군대에 입대했다. 그 군대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으니 ‘큰 복’을 받은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후 장로님은 부모님과 형제들을 전도해 모두 신앙인이 되었다. 장로님은 제대 후 영서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이어갔다. 이웃 교회이자 우리 교회와 교단이 같은 영서교회는 김청달 목사님이 1956년에 영등포구 양평동 2가 409번지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창립된 교회다. 김경섭장로님은 영서교회 창립 교인이었다. 7년이 지난 1963년에 영은교회의 창립 교인이었던 김광수 장로의 모친 김재석 권사의 권유로 영은교회에 등록하게 됐다. 영서교회 김청달 목사님은 장로님에게 “믿음 좋은집의 자제와 결혼하라”고 조언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유치원 교사의 주선으로 김명화 권사를 만나게 됐다. 권사님은 아버지가 장로였고 어머니가 권사였던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분이었다. 장로님이 김명화 권사님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김청달 목사님의 말씀대로 ‘믿음 좋은 집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 것이다. 1962년 4월 3일에 장로님은 김명화 권사님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듬해에 두 분은 영은교회에 등록 교인이 됐다. 김청달 목사님도 이후 영은교회로 오셔서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생을 마치셨다. ■ 시인 & 교사가 되다 김경섭 장로님은 제대 후 중학교 국어교사가 됐다. 놀라운 건 중학교 밖에 안 다닌 장로님이 국어교사가 된 것이다. 여기에는 장로님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숨어 있었다. 6.25 전쟁으로 중학교 교육만 받은 장로님이 남한에 내려와 혼자 공부를 해서 경기공립보통사범학교(현, 서울교육대학교 전신)에 입학했다. 졸업후 서울사립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그러나 김명화 권사님의 병환으로 교편을 접어야 했고, 권사님이 운영하던 학원(피아노학원, 미술학원 등)을 돌보기 시작했다. 장로님이 ‘시인’이 된 것은 초등학교 때 글짓기를 통해 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다. 어른이 된 장로님은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시인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 영은교회는 가장 건전한 교회입니다 김경섭 장로님은 1963년 영은교회에 등록한 후 줄곧 중등부에서 교사로 봉사했다. 장로님은 교회창립 30주년 기념식이 있던 1990년 4월 22일에 장로 임직식을 가졌으며, 2001년 12월 30일에 은퇴하시기까지 11년 동안 장로로서 헌신하셨다. 장로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목회자를 꼽는다면, 제1대 박조준 담임목사다. 장로님을 영은교회로 이끌어 준 분이기 때문이다. 장로님은 영은교회의 가장 큰 자랑은 ‘교회의 건전성’이라고 한다. “우리 교회는 건전한 장로교회입니다. 가장 건전한 교회가 장로교 통합 교단 교회인데, 그중에 영은교회가 가장 건전합니다. 영락교회, 새문안교회와 나란히 영은교회도 최고의 교회라고 할 수있습니다.” 영은교회에 대한 장로님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서인지, 장로님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동안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씀한다. 교회가 항상 재미있어서 힘든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93살의 장로님은 10년 전 김명화 권사님(2014.12.11. 별세)을 먼저 주님 곁으로 보내고 현재 아들 김태화 집사와 함께 산다. 김명화 권사님은 숭의여전 유아교육학과를 나와서 평생 어린이 교육에 삶을 바치셨다. 살아 생전에 시부모님을 잘 모셔서 “영등포 효부상”을 받기도 했다. 김경섭 장로님과 결혼하기 전 권사님은 “시부모님은 생전에 제가 모시겠습니다.”라고 언약했는데, 그 약속을 평생 지킨 것이다. 김명화 권사님은 1991년에 권사에 취임해 2007년에 은퇴했다. 장로님은 슬하에 2남 1녀(태선,은주, 태화)를 두었다. ‘시인 장로님’의 바람이 있다면 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건강 주셔서 장수합니다.” 장로님이 주는 최고의 신앙유산이다. -
인도하心 -
조용히 주님께로 가까이저는 모태신앙으로 지금까지 친정 어머니께서 제 신앙의 본보기가 되어 주셔서 항상 감사를 드립니다. 영은교회는 2018년 결혼(남편 하성원 집사)과 함께 교회 근처로 이사를 오면서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기에 교회에서의 생활에는 익숙했습니다. 그러나 큰 교회는 처음이라 조금 부담이 되었습니다. 많은 성도들과 어떻게 어울릴까 염려 하였으나 그것은 저의 기우 였다는 것을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속해있는 곳에 함께 하시는 권사님, 집사님들께서 제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시는지 모릅니다. 그 사랑에 그저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샤론, 갈릴리 찬양대에서, 그리고 남편은 4부 찬양대에서 전자기타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자신이 하는 봉사에 마음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예배를 드리는 것만 겨우 챙기던 남편이 지금은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이 감사할 뿐입니다. 찬양을 통해 믿음의 가정이 세워져 가고 있다는 것이 더욱 더 감사 합니다. 그리고 이 또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변화된 모습에 시부모님들께서도 크게 기뻐하십니다. 저희는 가을에 쌍둥이 부모가 됩니다. 태어날 아기들에게 저희 부모님들께서 저희에게 하신 것처럼 믿음의 본이 되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기들을 위하여 기도 할 때 저희의 뜻과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서 자라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저희들의 신앙의 거울이 되어주신 부모님의 모습을 되짚어 보며 아기들을 키우려 합니다.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세상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합니다. 문득 차에 달아놓은 작은 십자가를 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은 주님을 향해 나아가며, 주님을 닮아가는 훈련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작은 교회에서 평생토록 신앙생활을 하시는 친정 어머니께서는 항상 교회에 일손이 필요한 곳에 계셨습니다. 어려운 일도 마다하시지 않고 열심히 봉사하셨습니다. 이렇게 저에게 신앙의 본이 되어 주신 친정 어머니처럼 저도 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곳에서 저에게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며 낮은 곳에서 조용히 봉사하고 싶습니다. 항상 조용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지켜 보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
슬픈 사람슬픈 사람 세상사 살다보면 울고 싶은 일이 참 많습니다. 소리 내어 울 수 있으면 그나마 괜찮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속울음을 삼킬 때도 있습니다. 우리 몸을 빨래 짜듯 꼭 짜면 눈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그거 아세요? 우리가 울고 있을 때, 우리 하나님은 더 아파하고 계시다는 것.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 3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