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제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남부, 그로스 강 위 언덕에 자리 잡은 한적하고 조용한 작은 마을이다. 그곳에 떼제 공동체가 있다. 로제 수사가 이곳 떼제에 공동체를 설립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단순함과 소박함을 추구하는 떼제 공동체에 딱 어울리는 곳이다. 떼제 주변의 오래된 집들과 아름다운 풍경, 꾸미지 않은 자연의 멋스러움이 떼제를 찾는 이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예수님이 살았던 동네도 이렇듯 소박했을까?
▶ 떼제 생트마리마들렌 교회와 화해의 교회
친구와 나는 떼제 정오 공동기도(예배)를 마치고 점심 식사 후 떼제 주변을 산책했다. 돌로 지은 집들은 마치 동화 속 그림 같았다. 우리는 골목길을 걸으며 소박한 마을 풍경에 감탄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오래된 작은 교회가 보였다. 그 교회는 생트마리마들렌 교회(Ste-Marie-Madeleine, 성 마리아막달라교회)였다. 이 교회는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가톨릭교회로, 1913년에 프랑스 역사기념물로 지정됐다. 현재는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 모두에게 예배당을 개방하고 있다.
떼제 공동체는 자체 교회 건물을 짓기 전에 생트마리마들렌 성당을 예배 처소로 사용했다. 1949년에 로제 수사가 떼제 공동체를 설립했을 당시, 수사들은 모두 개신교회 출신이라서 마을 성당에서 기도하려면 가톨릭교회 당국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파리의 교황대사(훗날 교황 요한 23세가 됨)가 이를 승인해 주어 생트마리마들렌 성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떼제 방문자 수가 늘어나면서 성당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마당에 서서 예배를 드려야 했다. 더 큰 예배당이 필요했다. 그때 ‘사단법인 속죄를 위한 평화 봉사활동’(Aktion Sühnezeichen Friedensdienste e.V., ASF)이라는 독일 개신교회 단체가 떼제 공동체의 교회 짓는 일을 후원했다. 이 단체를 통해 독일의 많은 젊은이가 떼제로 와서 교회 건축을 도왔다. ASF는 나치즘의 유산에 맞서기 위해 설립된 독일의 평화단체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적국이었거나 독일이 점령했던 나라에 독일 젊은이들을 파견해 학교나 병원, 교회를 짓게 하면서 ‘속죄’를 실천하였다.
독일 젊은이들의 도움으로 1962년 8월에 떼제 공동체의 예배당이 완공되어 낙성식을 했다. 이 교회를 ‘화해의 교회’로 명명했다. 떼제 공동체는 생트마리마들렌 성당이 아닌, 새로 지은 화해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됐다. 개신교뿐 아니라 가톨릭과 정교회 신자들도 화해의 교회에서 함께 기도했다. 화해의 교회 입구에는 손글씨로 쓴 화해의 나무판이 걸려있다.
현재 생트마리마들렌 교회는 떼제 수사들의 개인 기도와 공동체 방문자들의 예배 처소로 사용되고 있다. 많은 떼제 방문객이 이곳에서 피정이나 묵상, 개인기도 시간을 갖는다. 교회 마당에 있는 묘지에는 떼제 공동체 설립자인 로제 수사와 다른 수사들이 묻혀 있다.
▶ 생트마리마들렌 교회에서 만난 스웨덴 루터교회 청년들
친구와 나는 생트마리마들렌 교회 앞에서 사진 한 컷을 찍고, 예배당을 둘러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2017년에 리모델링한 예배당 내부는 떼제 화해의 교회처럼 단순하고 소박했다. 잠시 우리 뒤로 젊은이들이 들어왔다. 어느새 작은 예배당은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예배가 시작됐다. 우리도 청년들 틈에 끼여 함께 예배했다. 뒤에 서서 예배를 드리는 이들도 있었다. 두 명의 여자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했다. 참석자들은 기타 반주에 맞춰 찬양을 참으로 흥겹게 진심으로 소리 높여 불렀다. 예배당을 가득 메운 찬송 소리가 내 마음을 울렸다. 그런데 이들의 언어를 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영어도, 독일어도, 프랑스어도 아닌,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언어였다. 예배 후 알게 된 사실은, 이날 예배는 스웨덴 청년들이 스웨덴어로 드렸던 특별예배였다. 떼제 공동체에 참여한 스웨덴 루터교회 청년들이 오후 시간을 이용해 생트마리마들렌 교회에서 자기들만의 예배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스웨덴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루터교를 스웨덴 국가교회로 받아들이면서 유럽에서 교세가 가장 큰 루터교 국가가 됐다. 그러나 2000년부터는 공식적으로 루터교가 국가에서 분리되면서 더 이상 스웨덴의 공식종교가 아니다. 오늘날 스웨덴은 전체 인구 천만 명 중 610만 명이 기독교 신자지만, 이들 중 많은 이가 명목상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나는 떼제 생트마리마들렌 교회에서 만난 스웨덴 루터교회 청년들이 무너져 가는 스웨덴 교회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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