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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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로의 초대

  • 등록 2022.08.0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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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소식

중보기도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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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장미애 전도사

성경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딤전2:1,6:11-12,5:1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이것을 우리는 보통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중보기도라고 하면 안 된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이 관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만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므로 중보기도라는 용어는 예수님에게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이 과연 바른 관점일까요?

 

성경에서는 중보라는 용어가 예수님에게뿐만 아니라 모세에게도 사용되었습니다.

중보또는 중보자를 의미하는 단어가 성경속에서 6번 나오는데 예수님에게 사용된 경우는 4(딤전2:5, 8:6,9:15,13:24)이고, 모세에게 사용된 경우는 2(3:19,20)입니다.

물론 예수님과 모세에게 사용된 중보를 의미하는 단어가 조금씩 다르게 표현된 것은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진정한 중보자이시고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중보자에 버금가는 역할을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자로 구분하여 표현하면 예수님은 (가운데중)으로 中保(중보), 모세는 (버금중)으로 仲保(중보)를 써야 보다 더 성경적인 표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중보라는 용어를 인간에게는 사용하면 안되고 무조건 예수님에게만 써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단순한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기도를 중보기도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되고 예수님께만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 신학적 비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드리는 기도가 중보기도라고 구체적으로 명시된 기록은 성경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대제사장의 기도입니다(7:22-25). 단지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에 중보기도라고 신학적으로 추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인간을 중보하는 중보자는 아니지만 예수그리스도의 권세와 사명을 위임받은 자로써 작은 중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제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중보사역으로 인해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간구하며 기도로 중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는 기도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이기 때문에 중보기도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중보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쓰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중보기도라는 단어가 신약의 만인제사장으로서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로 사용할 때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중보기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mediation(중보)’이란 중보가 아니라 ‘intercession(도고)’이란 의미의 중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 모세, 다윗, 사무엘, 히스기야, 엘리야, 예레미야, 에스겔 및 다니엘의 경우를 보면 기도를 통한 중보의 역할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중보기도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중보기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기도와 간구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위대하고 고귀한 특권입니까!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 해야 합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중보기도는 가장 진실된 사회적 행동입니다.

-중보기도는 공동체를 살피는 기도입니다.

-중보기도는 가장 영향력 있는 사역입니다.

-중보기도는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킵니다.

-중보기도는 자녀와 가정과 교회와 세계를 변화시킵니다.

 

오늘날 교회적 중보기도는 정말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11:17)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의 목적을 만민이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몸된 교회의 목적은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것, 즉 중보기도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온 족속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입니다. 중보기도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는 교회의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입니다.

 

사도행전 12장에는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12:5)

예루살렘교회는 베드로의 석방을 위하여 베드로가 석방될 때까지 계속 기도했습니다.

베드로를 위해 기도한 자들은 단지 중보기도의 은사를 가진 자들만이 아니라 교회 전체가 기도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옥에서 살아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도 곧 교회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교회적 차원의 중보기도를 쓰셨다는 사실입니다.

토마스 왓슨(Tomas watson)베드로를 감옥에서 끌어낸 것은 천사의 활동이었지만 그러나 천사를 움직인 것은 교회의 간절하고도 지속적인 기도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는 교회적 중보기도는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중보기도를 자세히 배우고 훈련하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이 땅에서 고독한 싸움을 싸우지 않도록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의 지체가 되게 하시고 교회적 중보기도를 존중히 여겨 열납하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도제목을 교회에 알리기를 기뻐해야 하고 교회는 또한 마땅히 그들을 위해 기도의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 웨슬리 듀웰은 중보기도보다 더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역이나 지도력은 없다. 이것보다 더 귀한 지위나 명예나 권위도 없다. 당신은 기도를 통해 다스리도록 구원받았다. 당신이 성령 충만을 받은 것은 기도를 통해 다스릴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당신의 기도가 활성화될 때 비로소 다스릴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갈대처럼 연약한 존재이지만, 우리가 이웃을 품고 민족을 품고, 세계를 품을 때 가장 위대한 존재가 됩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계를 품는 가장 복된 일입니다. 이 복된 중보기도 사역에 우리 영은교회 모든 성도님들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