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불청객, 무력감 <요나 3:10-4:5>

내 마음속 불청객, 무력감 <요나 3:10-4:5>

  • 등록 2022.09.0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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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불청객, 무력감 <요나 3:10-4:5>

 

글| 이승구 담임목사

 

마음의 불청객, 무력감

 

사람은 스스로 상황을 변화시킬 힘이 없을 때 허탈감을 느낍니다. 점점 의욕이 없어지고 맥이 빠지며 우울하다가 급기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친 상태에 이릅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참 소중한 나라는 책에서 무력감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대표적인 영역 세 가지를 언급합니다. 먼저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늘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며 무력해집니다. 두 번째로 다른 사람이 주는 상처나 모욕 앞에서도 쉽게 무력해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응할 힘이 없음을 발견했을 때 무력감을 느낍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문제로, 때로는 타인과의 문제로, 때로는 세상의 문제로 무력감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우리도 무력감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무력감 때문에 뜻하지 않은 사건을 경험하기도 하고, 무력감 때문에 삶의 방향이 부정적으로 변화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무력감을 경험한 요나의 이야기입니다. 요나의 무력감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데서 시작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충분히 대가를 치른 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께서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러자 니느웨 사람들은 예고된 재앙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니느웨의 대각성 운동에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았습니다(3:10). 그런데, 이러한 대각성 운동의 단초를 제공한 요나는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4:1)

 

여기서 성내다라는 말은 분노가 극심해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요나는 자신의 감정을 폭발하게 만든 원망의 대상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 대상은 자신이 뛰어넘을 수 없는 절대자, 여호와였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 요나는 원망의 대상인 절대자에게 항변하기 위해 기도자의 자리에 나아갑니다(4:1). 그런데, 기도의 내용이 범상치 않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4:2)

 

요나의 기도는 원망의 기도이면서 동시에 비꼬는 기도입니다. 요나는 이미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고 합니다. 이 원망을 바꾸어 말하면 이런 일이 생긴 것은 다 당신 때문입니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강한 원망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속성을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내가 크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는분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비웃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렇게 절대자에게 때로는 원망의 마음으로, 때로는 비꼬는 마음으로 마음 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았지만, 그는 평정을 되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자신이 행한 일이었지만, 그 일의 결과가 자기가 기대한 대로 되지 않자, 불편한 마음은 심한 분노로 치달았고, 그 분노는 다시 허탈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제 요나는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로 강하게 항변합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용서받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하겠다고 초강수를 둡니다. 자기의 기대나 염원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을 보느니, 내 생명을 잃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것입니다. 요나의 항변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4:4)

 

여호와께서는 요나가 보여준 행동은 옳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마음이 불편한 것, 네가 분노하는 것, 네가 나를 원망하면서 비꼬는 것, 네가 목숨을 가지고 나에게 항변하는 것, 그 어떤 것도 정당하지 않다고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최후의 항변마저 무색해진 요나는 이제 무력감의 절정에 도달합니다.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4:5)

 

자신의 마지막 항변이 아무 소용없음을 깨달은 요나는 지금까지 논쟁의 장소였던 성읍에서 퇴장합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이제 더 이상 논쟁할 의욕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다음으로 그는 주저앉습니다. 본문 5절에는 요나가 앉았다는 말이 두 번 반복됩니다. ‘그가 앉아 있다는 것은 이러한 관찰자의 자리에 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요나서의 각 장에서 요나가 행한 중요한 일을 한 단어로 요약해 보면, 5장에서 앉다의 의미를 다르게 볼 여지가 있습니다. 1장에 나타난 요나의 가장 중요한 행동은 도망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싫었던 요나는 도망을 선택했습니다. 2장에서 요나의 가장 중요한 행동은 기도입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3장에서 요나의 중요한 행동은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두 번째 명령에 순종한 요나는 니느웨 성을 향하여 갑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선포합니다. 그러나 4장에 나타난 요나의 행동은 앉아입니다. 도망가고, 기도하고, 다시 니느웨로 가는 모습과 달리 4장에서 요나는 주저앉습니다. 지금까지 요나는 하나님의 사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 사역의 주인공이었던 그가 갑자기 성 밖으로 나가서 앉아 구경이나 하겠다고 합니다.

이겨낼 수 없는 허탈감에서 찾아온 무력감은 그를 주저앉게 만들었습니다. 무력감 때문에 주저앉은 요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요나의 마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가 보기에라는 생각입니다. 요나는 내가 보기에니느웨 성은 심판을 받아야 하고, “내가 보기에니느웨 성은 절대로 회복되어서는 안 되고, “내가 보기에니느웨 사람들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의 생각을 지배하는 주된 사상은 내가 보기에...” 였습니다.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보단 내가 보기에...’ 때문에 그는 늘 뾰루퉁했습니다. ‘내가 보기에...’와 다른 세상 때문에 그는 마음이 불편했고, 분노했고, 원망했고, 강하게 항변했고, 나가서 주저앉아 버리는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요나가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요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보기에...’를 버리는 일입니다.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보기에...’라는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위해서 한 사건을 준비하시고, 이 사건에 필요한 모든 소품까지 직접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6)”,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7)”,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8)”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이 소품들을 통해 요나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네가)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4:10)

 

하나님은 여기서 네가를 세 번이나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은 요나야, 네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왜 내가 보기에....’라는 마음을 갖고 있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이어서 이 모든 것의 주관자는 네가요나가아니라, ‘내가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4:11)

 

하나님은 요나에게 네가 싫어하는 그들도 나 하나님이, 나 여호와가, 나 창조자가, 나 구속자가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요나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내가 보기에...’라는 집착된 사고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보기에...’라는 사고에서 벗어날 때 지금 직면한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력감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생각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힘들 때가 있습니다. 이 무력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무력감은 내가 보기에...’라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무력감을 이겨내려면 내가 보기에라는 고착된 시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을 가져야 합니다. 무력감을 극복하려면 내가 보기에라는 고집스런 마음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능성을 담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 마음속에 찾아온 불청객무력감을 물리치기 위해 내가 보기에라고 계산하는 것대신에 주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