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유다의 16대 왕 요시야는 8세에 왕이 되어 31넌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요시야의 행적에 대해서 열왕기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목하고 있습니다.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였다(왕하 22:2)’'
‘여호와 보시기에 정책 했으며 다윗의 모든 길로 행 하였던’ 왕은남유다에서 히스기야와 요시야 단 둘뿐입니다. 그러나 요시야가 처음부터 이런 왕이었던 것은 아 닙니다.
요시야 왕은 왕위에 오른 지 18년째 되던 어느 날, 서기관 사반을 보내 여호와의 성전에 부서진 것을 수리하라고 명합니다. 성전을 청소하던 중 대제사장 힐 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고 사반에게 주었습니다. 사반이 왕에게 보고하고 왕의 앞에서 율법 책을 읽을 때, 요시야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자 곧 자신의 옷을 찢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왕하 22:13)
요시야는율법책이 낭독되는동안중요한사실을발견 합니다. 현재 유다의 종교 윤리적 상황과 종교 전통이 여호와의 진노를 불러일으킬 만큼 악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통해 깨닫게 된 요시야는 종교개혁을 이끌어 갑니다.
종교개혁, 말씀으로 시작되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말씀 앞에 서는 행위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요시야는 모든 백성이 모인 자리에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큰 소리로 읽어 무리에게 들리게 합니다 (왕하 23:1~2), 제사장 힐기야가 아닌 왕이 직접 낭독한 데서 개혁을 향한 왕의 강한 의지와 열정을 엿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든 백성은 한마음으로 나아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율법을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왕하 23:3), 모든 백성의 언약 갱신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요시야의 종교개혁 은 먼저 말씀’ 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나와 백성이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깨닫고, 말씀 앞에서 새롭게 다짐하여 말씀으로 개혁을 시작하였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젊은 수도사 시절에 구원의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였습니다. ‘‘내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루터의 마음과 생각을 짓누르던 물음이었습니다. 당시 중세 신학은 인간이 구원에 필 요한 공로를 쌓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며, 교회가 규정한 특정한 일들을 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루터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구원받지 못 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서를 연구하고 강의하던 루터는 가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가 성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음을 확신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1517년 10월 31일, 95개조 반박 문을 내걸어 가톨릭 교회가 오직 성경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521년 신성로마제국의 새로운 황제 가 소집한 보름스 제국의회에서 루터는 황제와 교황의
철회 요구에도 불구하고, 나의 앙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로잡힌 바 되었습니다. 나는 철회할 수도 없거니와 철회하지도 않습니다.’’라고 용기있게 답변합니다. 이후 루터는 아이제나흐의 바르트부르크 성에 은거하면서 10개월 동안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이 후 종교개혁 확산에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요시야와 루터의 종교개혁은 모두 말씀 앞에 서는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깨달은 진리가 곧 그 시대에 필요한 종교개혁을 이끈 것입니다.
종교개혁, 순종으로 완성하다
말씀 앞에 서서 종교개혁을 시작한 요시야는 순종으로 개혁을 완성합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남 유다를 거처 북 이스라엘까지 점층적으로 확장되어 갑니다. 요시야의 순종은 예루살렘 성전의 본질을 완전히 회복하는 행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 안에 있던 이방신상과 이방신상을 섬기기 위하여 만든 집기를 제거하고, 아세라 상을 내다가 불사르고, 성적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합니다(왕하 23:4~7). 그리고 유다의 북쪽 끝 게바에서부터 남쪽 끝 브엘세바까지 나라 안에 가득했던 산당을 제거하고,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성문의 산당들’ 까지 무너뜨렸으며, 자녀들을 불로 지나가게 하는 가증한 풍속이었던 몰록 신을 섬기는 제사 행위도 금지하는 등 오랜 시간 유다 전역 에서 이방신을 섬겨 온 문화를 철저히 제거합니다 (왕하 23:8~14). 온 유다의 우상을 재거한 요시야는 남 유다를 넘어 북 이스라엘까지 종교개혁을 이끌어 갑니다.
요시야는 북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의 심장부를 개혁합니다(왕하 23:15~16). 멜엘은 북 이스라엘의 종교적 타락의 온상 이며 북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끈 죄악의 근원지입니다. 남과 북이 나뉘고 여로보암이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금송아지를 만들어 뱉엘과 단에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유다에서 벨엘로 와서 이 제단을 향하여 예언하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왕상 13:2) 하였습니다.
300여 넌 전에 선포 되었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요시야는 벧엘의 무덤들에 있는 해골을 취하여 단 위에서 화장함으로써 그 단을 더럽게 한것이 ‘우상의 무능력임을 깨닫게 합니다. 열왕기에는 ‘‘여호와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이방신을 위한 산당은 ‘여호와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왕들조차 제거하지 못했던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이를 철저하게 무너뜨렸습니다. ‘산당 때문에 자신은 물론 백성들이 죄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던 요시야왕은 백성들의 심한반발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산당을 제거함으로써 진정한 종교개혁을 이끌었습니다.
우리의 종교개혁은?
우리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요? 종교개혁은 말씀 앞에서 겸손히 우리의 삶을 둘아볼 때에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우상과 죄가 있는지 드러내는 과정이며, 이것들을 제거하는 작업이어야 합니다. 즉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드러냄' 이라는 깨달음과' 제거' 라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깨달음을 위해 필요한 것이 말씀의 거울입니다. 거울은 자신의 얼굴과 몸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말씀의 거울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의 참 모습을 겸손하게 직면할수 있습니다. 요시야가 말씀 앞에 나아갔을 때 자신과 백성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의 거울 앞에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의 거울 그 자체는완전하지만 우리의 죄와 잡된 생각과 사상들이 거울을 흐리게 할 수 있습니다. 거울을 가려 우리를 속이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깨끗하게 닦아내야 합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적나라하게 자신을 비추어야만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깨달음을 순종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두려움이 앞서서 순종하기 어렵다고 일찌감치 포기하거나, 순종하면 사라질 이익과 혜택을 아쉬 워하고, 순종에 따른 비난을 피하고 싶어 머뭇거린다면, 진정한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거울에 비춰서 깨달은 바를 실천할 때 어떠한 상황도 이겨내겠다는 용기를 품어야 합니다. 우리의 종교개혁은 말씀의 거울 앞에서 시작됩니다. 겸손히 말씀의 거울 앞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깨달음을 따라 용기를 다해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요시야 왕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리고 루터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용기 있는 순종이 종교개 혁을완성할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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