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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60 : 나에게 영은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인 영은교회
김성천 목사 (대전 인동교회 담임) | 기사입력 2020.11.01 15:38| 동행 / 교회창립 60주년 기념
동행 60 : 나에게 영은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인 영은교회
![[크기변환]202011-08a.jpg](http://accompany.youngeun.or.kr/data/editor/2207/20220728200159_0c9e75a41e1be06731eea68046fa9a44_unbm.jpg)
글| 김성천 목사 (대전 인동교회 담임)
안녕하세요? 저는 김성천 목사입니다.
대전 인동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영은교회 창립 교인 이면서, 지금은 은퇴 장로인 김찬규 장로님과 역시 은퇴 권사인 이팔순 권사님입니다.
저는 소위 모태신앙으로 영은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영은교회 초대 목사님이었던 박조준 목사님에게 유아세례를 받았고, 영은유치원 3기로 졸업했습니다.
대학.청년부까지 교회학교에서 쭉 자랐습니다. 이후 신학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군에 다녀온 후 고등부에서 교사로 1년간 섬기다가 교육전도사로 부임하게 되어 영은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1986년 1월입니다. 따져보니 교회를 떠난 지 34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은교회는 여전히 저의 마음의 교회입니다.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는 내가 영은교회 교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목회자로 파송을 받았지만 언젠가 임무를 마치는 날,
다시 돌아갈 교회는 영은교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의 고향, 영은교회
저에게 있어 영은교회는 한마디로 고향입니다.
문래동에서 양남로터리를 지나 교회로 걸어가던 길과 구예배당,
교회 마당에 놓여있던 그네와 미끄럼틀, 모든 게 저에게는고향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는 동네 친구가 교회 친구였던 것 같습니다.
늘 뵙던 교회 장로님과 권사님들, 모두가 부모님 같았습니다.
교회 마당에서 놀다가 교육관에서 기도하시던 권사님들에게 기도를 받기도 했습니다.
늘 사랑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던 어머니들이십니다.
지금도 부모님은 인천에 살고 계시지만, 집이 교회에서 멀어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교통이 좋지 않아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집에 갈 수 있었습니다.
저녁 예배가 끝나고 가족이 함께 모여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어떤 주일은저녁 예배가 끝나고, 갑작스럽게 당회가 있었습니다.
장로였던 아버지는 당회에 참석하시고, 가족들은 당회가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당회가 생각보다 늦게 끝날 때가 있었습니다.
길게는 2~3시간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마냥 기다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혼자 집에 갈수도 없는 상황이 되면 화가 났습니다.
당회를 마치고 나오신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 셨을텐데,
저는 돌아오는 길에 볼덴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교회가 여기 뿐이냐고. 집 가까이에 있는교회를 나가면 좋지 않겠냐고.
하지만 부모님은 제 말에 대해서는 한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으셨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눈이 오 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버스 타고, 전철 타고, 택시 타고,
몇 번을 갈아타도 교회는 오직 영은교회 밖에 없는 듯 부모님은 그렇게 교회를 섬겼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부모님이 고맙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에게는 영은교회가 모교회로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를 ‘영은교회 출신 목회자' 라고 기억하며 기도해 주시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여전히 영은교회에 출석하고 계십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걸을 수 있는 한, 그것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부모님은 저희 5남매가 모두 영은교회에서 유아 세례를 받았고, 결혼식을 치른 것을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하십니다.
![[크기변환]202011-08b.jpg](http://accompany.youngeun.or.kr/data/editor/2207/20220728200214_0c9e75a41e1be06731eea68046fa9a44_lpgh.jpg)
부모님의 신앙이 영은교회 신앙
영은교회에서의 신앙교육은 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부모님의 신앙이 곧 영은교회의 신앙이요, 영은교회의 영성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저희에게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밥상머리에서 부모님은 가족 모두,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셨습니다.
부모님의 기도가 끝나면 국이 다 식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기도를 길게 해서 국이 다 식어 버렸어.'’ 라며 불평한 적이 많지만,
지금 돌아보면 부모님의 기도가 나의 인생길에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유난히 사춘기의 진통을 많이 겪었던 저 였는데,
가정에서 ‘‘예배드리자!”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면,
때로는 싫을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권위 앞에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될 때는 골이 나서 마지 못해 참석했지만,
예배가 끝날 때 쯤엔 나도 모르게 주님이 주신 평안함과 은혜 가운데 마음이 따듯해지곤 했습니다.
가정에서 드리던 예배가 나의 마음의 악한 쓴 뿌리들을 뽑아내고
잘못된 가지들을 잘라내는 하나님의 도구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에 잠에서 갤 때가 있었습니다.
절제하셨지만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아버지의 흐느껴 우시며 기도하는 소리였습니다.
시계를 보면 영락없이 새벽 3시.
그 기도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하나님에 대한 느낌과 믿음을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신학교를 다닐 때,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던 권사님들, 집사님들이 정성스럽게 모으신 장학금을 주셨던 일들,
감사 드릴 기회도 한번 없었는데, 지면을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교회학교에서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은 김옥순 권사님과 이동국 장로님입니다.
준비해오신 대학노트를 들고 열정으로 말씀을 전해 주시던 그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은혜’ 라는 찬양곡의 가사처럼
영은교회는 저에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크기변환]202011-08c.jpg](http://accompany.youngeun.or.kr/data/editor/2207/20220728200247_0c9e75a41e1be06731eea68046fa9a44_raw3.jpg)
![[크기변환]202011-08d.jpg](http://accompany.youngeun.or.kr/data/editor/2207/20220728200247_0c9e75a41e1be06731eea68046fa9a44_hq6f.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