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새 사람의 정체성 을 힘입은 사실에 근거하여 이제는 새 사람에게 합당한 옷을 입도목 권고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 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오래 참음을옷 입고’’ (골3:12) 여기서 1:lj¾은 당 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 의 덕목을 옷 입 도목 명령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중요한 단어가 있습 니다. ‘자처렘 이라는 말입니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 를 자답게’ 로 번역하였습니다. 즉 옷을 입을 때 어떤 자 인지 분명하고 명확한 자기 인식을 갖고 덕목의 옷을 입 으라는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하실 때는 어떤 자 격이나 조건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하 나님의 넘치는 사랑으로 자격 없는 자를 선택해 주신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골로새 이방인들을 택하실 때에도 그들의 어떤 조건이나 자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 획과 목적에 따라 혹암의 권세에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 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심 을받은자라는자기 인식이우선되어야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 라는 자기 인식이 있 어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의 거 룩하심을 전가받아 거룩하게 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전에는 모두 다 죄 아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먼 저 찾아오셔서 의롭다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 를 통해 거룩한 자로 여겨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 라는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근거해서 실현되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사랑으로 표현된 십자가 사건 위에 믿음의 축을 놓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듬뿐 받은 자라는 자기인식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삶을 해석해가야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다움이 언제 드러날까요? 그리스 도인다움은 혼자 있을 때에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사람 들과 관계를 맺을때 겉으로 드러납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 서하되" (골3:13)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용서할 때 그리스도인다움이 드러납니다. 용답 은 우리를 해코지 하는 사람을 참고 받아들이는 것이며, 용서’ 는 그들이 한 나쁜 일을 참고 잊는 것입니다. 즉, 누군가에게 불만 이 있을 때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그 사람이 행한 일을잊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성도와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용서하고 용서받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도한사람들을용 서하고 용서받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용서는 관 계를 새롭게 회복하고, 공동체를 살리는 아주 중요한 가 치로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꼭 있어야 할 자질과 특성입 니다. 잘못한 사람에게 기독교는 하나님이 용서하시면 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도 자기가 상처나 피해를 준 당사 자를 찾아가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과만 정당하면 되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아무 상관 없다 고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상대방이 와서 용서를 구하기 전에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피해를 준 사람이 와서 참회의 빛을 보이며 용서를 구할 때까지 용서하지 못하는 자리 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 전에 용서해 주는 것입니 다. 누군가에게 불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그 사람이 행한 일을 잊는 것,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 러면, 왜 민저 용서해야 합니까?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 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 하고’’ (골3:13)라는 말씀 때문입 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 래서 용서를 통해 그리스도인다움을 드러내야 합니다.
또한 사랑할 때 그리스도인다움이 드러납니다. ‘‘이 모 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3:14)는 말씀에서 바울은 '사랑' 의 정의를 ‘온전하게 매는띠’라고합니다. ‘디는 ‘어떤사물을하나로묶는 수만 을 의미합니다. 당시 옷을 입는 마지막에 옷을 몸 에 밀착시키기 위하여 둘러서 묶는 용도로 사용되었습 니다. 만일 옷을 입고 띠로 묶지 않으면 그 옷은 옷으로 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랑이 이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을 함께 묶어 서 하나의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사랑 없이도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긍휼과 자비와 같은 덕을 위선적 으로 베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 없이 행하는 이러 한 모든 선행이나 덕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쾡과리 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인격의 밑바 닥에는 언제나 그리스도로 인해 넘쳐나는 사랑이 있어 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은 인격을 소유하게 되며 온전히 신의 성품에 참예하 는 자가 됩니다. 사랑은 절대로 추상적 개넘이 아닙니 다. 사랑은구체적인삶의 현장과대상과 행위를반드시 포함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의 품사는 모두 동사입니다. 관념에 불과한 명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를 하는 동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붙여 주 신 사람들이 어떠하든지 적극적으로 아끼는 것이 성경 이가르치는사랑입니다.바울은이와같은 ‘사랑’을통해 그리스도인다움을 드러낼 것을 명령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용서’ 와 ‘사랑’ 을 통해 그리스 도인다움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 사 람이라도 더 복음을 전하고 지경을 넓혀나갈 수 있습니 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 서는다음과같은선물을주십니다.
첫 번째 선물은 ‘그리스도의 평강’ 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평강을 위하여 한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고3:15)에서 ‘주장하게 하라’ 는 말은 ‘심판관이 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인생이라 는 항로를 항해하다 보면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게 되는 경우를 종종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는 이러한상황에서 유용하게 쓸수 있는올바른판단의 잣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마음의 평안이 바로 그것 입니다.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결정은 올바른 결정입니 다. 반면에, 결정을 내릴 때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들면 다시 생각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에게 이와 같이 평안이 결정의 중요한 준거가 됩니다. 마음’ 은 의지, 감정, 생각의 원천인 인격의 중심을 가 리킵니다.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도덕적 결단을 내리는 자리가 바로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마음에서 다스린다는 것은 사람의 촌재 자체를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평강’ 이 지경을 넓히게 합니다. 그리스 도의 평강이 있는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가까운 믿음의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제합니다. 이를 통해 공동체가 건 강해질 것이며, 이 공동체를보면서 지역의 사람들이 무 엇이 저들을 평회롭게 하는가 궁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두 번째 선물은 ‘그리스도의 말씀’ 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 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 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앙늄l-고’’ (골 3:16)를보면, 지경을넓히기 위해 필요한것이 그리스도 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가 가르치시고 선포하신 말씀 은복음의 진리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인격을그리스 도의 인격으로 빚어 주며 이 말씀이 우리의 삶을 그리스 도의 삶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말씀이 마음 가운데 편 하게 자리 잡게 하라는 것은 곧 말씀과 하나가 되라는 뜻 입니다. 말씀이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 이 지적인 만족만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무늬가되어야 합니다. 이 증거가 무엇입니까? 피차 가르치고권면합니다. 곧 말씀을 통해 발견한 감격을 누군가에게나누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말씀이 삶이 되는가운데 찬양으로 고백하는것입니다.
세 번째 선물은 ‘주 예수의 이름’ 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릅으 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 3:17)는 말씀에서 ‘주 예수의 이릅’ 을 주셨다는 것은 ‘소중한자신을맡기셨다’는의미입니다. 이릅은곧그 사람의 인격이며 존재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이 름과 존재를 특권으로 받은 자는 그분의 의도에 맞는 삶 을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살라 고 권면합니다. 이는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이 주님 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예수님 입장’ 에 서 보라는 말 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자, 하나님의 거룩한자, 하나 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인다움’의 특징입니 다. 우리 또한 이러한 특징을 갖고 살아가는그리스도인 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최근 개신 교 8개 언론사가 리서치 회사를 통해 성인 1000명을 대 상으로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조사 주제는 ‘‘일반국민, 개신교를 어떻게 보고 있나?'였 습니다. 그 결과를 보니, “개신교, 코로나 19 대응 잘 못 하고 있다” 는 답변이 74%였습니다. 또, ‘‘코로나 19 이후 개신교인의 이미지에 대해 ‘거리를 두고 싶은’ , ‘이 중적인’ , ‘사기꾼 같은’ 이라는 표현이 가장 많이 나왔다 고 합니다. 이것은 참된 그리스도인다움과 전혀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누군가와의 관계’ 에서 좀더삶의 무게중심을옮겨야할것입니다. 당서와사 량 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그리스도의 말 씀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인다움을 지켜나가 지경을 넓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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