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는 대부분 가정교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도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두루 흩어져 있는 가정교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흩어져 있으나 '살아 있는 교회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세우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갔는지 서술합니다. 오늘 본문에 반복되어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서로'입니다. 이 말은 공동체가 '혼자'가 아닌 '서로' 세워가는 곳임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공동체는 지체들이 동일한 비전을 품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기 위해 '서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지체들의 모임입니다. 그렇다면, 이 '서로 공동체'는 어떤 특징을 갖는 곳일까요?
먼저 서로 공동체는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입니다.
"무엇보다도 드겁게 서로 사랑할지니"(벧전4:8) 먼저 '서로 사랑'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는(요15:12)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1서 4:10~11)
주께서 사랑하신 방법은 먼저 사람 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먼저 사랑하면 그 사랑에 응답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정도를 따져보는 조건부 사랑이 아닙니다. 아무 조건 없이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서로 공동체는 "뜨겁게" 사랑하는 공동체입니다. '뜨겁게'라는 말은 원어로 보면 '끝까지'라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열심을 내라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때에도 그 이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준으로 끝까지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붙드는 일에 결코 끝가지 실패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서로 공동체는 먼저 사랑하고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은 허다한 죄를 덮기(벧전4:8) 때문입니다. 죄를 덮는 것은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합리화하거나 악한 관행마저도 묵과해 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의 피가 죄를 덮듯이 속죄의 전 과정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가 우리를 덮으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공동체도 죄인과 함께 회개와 눈물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죄인 자신의 철저한 회개의 증거도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은 소극적 사랑이 아닌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16:14)는 말씀대로 모든 일을 사랑으로 먼저 다가가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허물까지 덮어줄 수 있을 정도로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사랑으로 가득찬 서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서로 공동체는 서로 대접하는 공동체입니다.
"서로 대접하기를"(벧전4:9)에서 '대접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사랑하다'와 '나그네'가 합성된 말입니다. 나그네를 긍흏히 여기고 사랑으로 대우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까? 베드로는 "원망 없이"(벧전4:9) 서로 대접하라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베드로의 서신을 받는 공동체는 박해 상황에서 나그네처럼 이리저리 쫓게다니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대접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든 가운데서도 원망 없이 형제를 대접하는 행위는 진정한 사랑의 행위이고 그 사랑의 행위는 궁극적으로 공동체를 세워가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서로 대접하는 사랑의 행동은 밀알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고난주간 새벽기도회를 시작하면서 누군가를 대접하는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자고 제안을 드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에 공감하시고 희망상자와 새 옷 기부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셨습니다. 코로나의 장기화로 모 두가 힘든 때를 지내고 있는데도 나보다 더 힘든 누군가 를 위한 대접의 마음이 풍성하게 모였습니다. 이 일을 통해 우리 영은교회가 서로 대접하는 공동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대접하는 자의 복이 더 크다’ (행20:35)고 말씀하십니다. 원망 없이 서 로 대접하면 내 것을 움켜쥐는 가짐의 가치만을 추구할 때는맛볼수 없는참된 기쁨을발견하게 됩니다.
셋째로, 서로 공동체는 서로 봉사하는 공동체입니다.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는 말씀에서 봉사는 청지기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동시에 누군가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섬기는 일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봉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봉사는 은사를 받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각각 은사를ㄹ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영적 선물이며, 공동체를 섬기는 데 유익한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큰 기쁨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봉사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벧전4:11) 여기서 '공급하다'는 현재 시제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봉사에 필요한 능력을 한번만 주시지 않고, 지속적으로 충분하게 공급하십니다. 그러므로 봉사할 때에 자신들의 특출한 능력 때문에 하는 것으로 착각하겨나 그로 인해 자신을 드러내는 교만한 태도를 버려야 합、`에 필요한 모든 힘을 공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 니다. 어느 교회에나 봉사를 오랜 기간 해 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대부분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힘든 봉사를 오랜 기간 하셨는지 여쭤보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 하나님께서 힘 주셔서 봉사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어느 한 사람도 봉사의 양이나 봉사의 기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주신 능력만 자랑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게서 계속햇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해야 꾸준히 봉사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봉사하거나, 인정에 이끌려 하거나, 일시적인 감정에 따라 봉사하는 사람은 상황이 달라지면 금세 봉사를 그만두려 합니다. 그러므로 봉사는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을 공동체를 섬기는 유익한 은사로써 서로의 유익을 위해 섬겨야 합니다.
서로 공동체란,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 서로 대접하는 공동체, 서로 봉사하는 공동체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서로'입니다. 사랑도, 대접도, 봉사도 혼자서는 빛이 나지 않습니다. 서로를 위해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대접하고, 서로를 위해 봉사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완성됩니다.
오늘은 교회 창립 61주년 기넘주일입니다. 이 땅에 선한 목적으로 세워진 영은교회가 지금까지 교회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서로 공동체'의 모습을 갖추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역사를 함께 해 온 모든 성도님들이 나 혼자만 바라보는 이기적인 신앙인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서로를 위해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대접하고, 서로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지역 사회에서 대표적인 교회로 성장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서로'에 방점을 찍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나가는 진정한 '서로 공동체'의 모습을 갖춘 영은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일에 우리 모두가 귀하게 쓰임 받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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