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예배의 정신
(요한복음 4:19-24)
담임목사| 고일호
향수 가게에 다녀온 온 사람에게는 향수 냄새가 납니다. 생선가게에 다녀온 사람은 생선 냄새가 납니다. 커피집에 다녀온 사람에는 커피향이 납니다.
이처럼 어딘가 머물다 오면 그 향기가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예배하러 다녀 온 사람에게는 어떤 향기가 남아 있어야 할까요?
예배의 향기가 그 사람 속에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배의 향기란 무엇일까요?
거룩하고 겸손하며, 때 묻은 세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구별된 삶의 향기 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향하여 ‘당신의 삶에서, 당신의 언어에서, 당신의 행동에서 예배의 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라고 말을 한다면 어떨까요?
그 사람은 진정한 예배자입니다. 예배당에서의 예배의 향기가 삶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의 예배가 삶의 예배로 이어지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예배자가 바로 그 사람 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 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이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성도의 생활에 있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 영적 예배의 우선성을 사도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구조를 생각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가 왜 중요한지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의 내용은 교리편과 생활편으로 냐뉘어져 있습니다.
1장에서 11장까지가 교리편입니다. 그리고 12장부터 생활편입니다.
생활편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생활편 가장 먼저에 예배에 대한 권면이 나옵니다.
로마서 12장에 보면 겸손한 생활, 봉사하고 섬기는 생활, 이웃을 사랑하는 생활, 선하게 살아가는 생활, 환란과 시험중에도 낙심하지 말고
늘 기도하는 생활 등 정말 성도들의 삶을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권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서 예배가 먼저입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성도가 성도다운 생활을 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실천할 것은 ‘예배’ 입니다.
성도의 삶에서 예배의 향기가 드러나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성도다운 삶을 이어가야 합니다.
사람이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고 나오면, 깨끗해져서 옵니다. 나오는 순간 다시 더러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예배당에 가서 예배를드리고 나올 때, 영적인 목욕을 한 것 같이 깨끗한 모습으로 나와서 보기 좋은 모습으로 살 아갈 때,
세상이 반짝반짝 빛날 것이고, 불신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것 입니다.
예배의 중심에는 언제나 구속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흔히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 드리는 것일까요? ‘잘' 이라는 기준이 하나님 앞에 어 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예배를 잘 드려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일까요?
예배를 잘 드린 다는 말 속에는 정성을 다한 예배라는 의미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성을 다 해서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된다면, 그것은 예배 공로 사상으로 빠지고 마는 것 입니다.
예배는 잘 드리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예배는 속죄의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냐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 를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근거가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그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나의 예배를 받아주시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내 기도가 뜨겁기 때문에, 내 기도가 간절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중보자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죄인의 기도도 하나님이 받아주시는것입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러운 죄의 옷을 입은 채로 아무리 정성껏 최선을 다해 예배를 드린다 해도 더러운 옷에서 나는 냄새가 가려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거룩한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문은 비로소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감싸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나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근거한 예배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합니다. 예배 공로주의자들은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 드리는 것은 그 다음 과제입니다. 예배자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을 가진 자만이 예배의 감격을 알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죄 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놀랍고 감사합니다’’. 예배의 감격은 이 고백을 가진 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경직되고 의식화된 예배에 구원의 은혜를 되살린 사건이기도 합니다.
‘sola gratia(오직 은총)’ 은 예배자의 정신에도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깨달은 자만이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하시고 예배의 감격이 넘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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