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아끼지 아니하랴

어찌 아끼지 아니하랴

담임목사l 고일호

  • 등록 2018.02.0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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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아끼지 아니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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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l 고일호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릇밤에 났다가 하릇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서 4:10~11)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이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합당한 이유를 찾고, 미워하는 사람에겐 부당한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사랑은 마음의 눈에 좋은 것을 크게 보려는 안경을 쓴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좋은 것, 합당한 것을 찾으려 합니다. 

미움은 어떨까요? 나쁘고 반대하는 것을 보는 안경을 쓴 셈이 됩니다. 

요나서는 이 두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요나서의 주인공은 하나님과 요나입니다. 

요나서의 내용은· 니느웨라는 악한 도성을 놓고 하나님과 요나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에 대한 긍홀의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을 살리기 위한 이유를 부지런히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음에 사랑의 안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행동에 대해 요나는 부당함을 느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를 미워했습니다.

요나의 미음의 눈에는 니느웨는 망해야 한다는 미움의 안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한 도성을 두고 두 주인공이 각각 다른 안경을 쓰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나서에는 하나님과 요나 사이에 입씨름도 벌어지고, 

이슬아슬한 신경전도 나타납니다. 하지만 사랑과 미움이 싸우면 결국 누가 이길까요? 사랑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나서는 니느웨 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끝을 맺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마음과 요나의 마음이 같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니느웨는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성에 있는 모든 생명은 구원받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 하나님의 마음은 요나의 마음과 달랐습니다. 요나가 보는 것을 하나님은 다르게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니느웨는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를 향해 둘을 던지려 할 때 하나님은 그 둘을 막아 주셨습니다.

요나는 그 성을 심판의 수렁으로 밀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 팔로 그 성을 품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사랑이며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크건 작건 간에 니느웨 성과 같지 않습니까? 

자기의 의로, 자기의 선행으로, 자기의 자격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누군가 돌을 들어 나에게 던지려 하면 그돌에 맞아야 할 이유는 많을것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대신 그 돌을 막아 주셨기에 우리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피 홀리신 것이 결코 그 분의 죄 때문이 아니란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 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입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이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멸망 받아야 할 니느웨를 기어이 살려내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더럽고 찢어진 옷과 같습니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주부는 더러워졌다고, 찢어졌다고, 애장하는 것들을 다 갖다 버리지 않습니다. 

더러워진 것을 깨끗하게 빨고, 찢어진 것은 잘 꿰매어 입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4세기에 압바 미오스라는 수도사가 사막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군인이 찾아와 질문을 던졌습니다. 

“ 하나님은 정말 죄인을 용서하실까요? ” 늙은 수도사는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그 군인에게 되물었습니다. 

” 자네가 입고 있는 외투가 찢어졌을 때, 자네는 금방 버리는가? " 

”이 소중한것을 그럴 수 없습니다. 깁거나 꿰매워 다시 입지요.” 

수도사가 대답을 합니다. ‘자네가 찢어진 옷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여긴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가 비록 죄인일지라도 아끼지 않겠는가?. 죄인일지라도 아끼지 않겠는가? 

이 말이 요나서의 메시지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지속적으로 붙잡을 수 있는 희망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권력 입니까? 아니면 인기나 젊음이나 야망입니까? 

이런 것들은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희망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 인생의 영원한 희망의 근거가 됩니다.

새해와 더불어 품었던 기대와 희망이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올 한해 ‘‘어찌 아끼지 아니하랴"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안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