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 성품의 지경을 넓히다 (갈 5:22~23)

화평 성품의 지경을 넓히다 (갈 5:22~23)

글| 이승구 담임목사

  • 등록 2021.12.04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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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은 내면의 감정이나 외부의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성품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최근 〈놀면 뭐하니?〉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오징어 게임〉의 ‘깐부 할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오영수(78 세) 씨가 출연했습니다. 연기 경력 58년에 출연작만 무려 200여 편에 달하지만 〈오징어게임〉 이전에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다고 합니다. 

진행자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자 오영수 씨는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우리 사회는1등이 아니면 안될 것처럼 흘러가는 때가 있습니다. 1등만이 출세하고 2등은 필요 없어요. 그런데 2등은 1등에게는 졌지만, 3등에게는 이긴 겁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다 승자죠.'’ 그리고는 자신이 생각하 는 아름다운 삶과 인생에 대해 말을 이어갔습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긴 여정 가운데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 과정에서 왜 나는 저 사람보다 못할까, 남들과 비교해 때론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누구에게도 상대적인 잣대로 평가받을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그 자체로 특별하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그 자체로 아름답게 여기는 사람,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묵묵히 하며, 어떤 경지에 도달하려고노력하는사 람, 그가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승자’입니다.'’ 

그의 말에서 우리는 화평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화평은 외부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것입니다. 1등에 집착하면 1등을 못 했을 때 밀려오는 패배감과 자책 때문에 내면이 흔들립니다. 남들과 비교하다가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을 온전히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진정한 삶의 승리자가 되어 외부의 상황에 휘 둘리지 않는 화평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한 노배우의 인생 이야기는 과거에 대한 후회, 현재 상황에 대한 불안,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에 화평을 잃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깨우침을 줍니다. 

화평으로 성품의 지경을 넓히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 은 배우기’ 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화평을 배워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도록’ 해야 합니다(골3;15). 이것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심판관이 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이라는 항로를 힝해하다 보면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좋을지 몰라 망설 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올바른 판단의 잣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마음의 평안이 바로 그것입니다.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에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주님께서 평안한 마 음으로 이끄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최선이라고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믿었던 것이 기도할수록 불안과 불편으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잘못된 선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하는 것, 즉" 마음의 심판관" 이 되어야함이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마음’은 의지, 감정, 생각의 원천인 인격의 중심을 가리킵니다.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도덕적 결단을 내리는 자리가 바로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마음을 주장한다는 것은 곧 사람의 존재 자체를 다스리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있는 사람은 과거의 후회스러운 사건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현재의 상황에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해 미리 염려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팎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을 배운 사람은 그 성품으로 누군가에게 크고 작은 감동을 안겨줍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할 때 성품의 지경을 넓힐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을 배운 사람은 자신에게 유익한 쪽 으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평을 위해 십자가에서 축으심으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이것은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익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 또한 그리스도의 평강을 배운 자로서 화평을 이루기 위해 대 가를 지불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특히 나보다 연약한 자를 위해 내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기꺼이 희생함 으로써 화평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함께 다시 가나안 땅에서 정착합니다. 그들은 육축과 재산이 늘어나는 축복의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가축을 먹일 수 있는 물과 목초지는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계속 동거할 경우 갈등과 다툼이 더 잦아질 것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합니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 13:9) 


아브라함은 더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기 전에 롯에게 서로 떨어지자고 제안했습니다. 롯은 몹시 기뻤습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곳을 먼저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양보 덕분에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은 좋은 땅을 먼저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창 13:10~11). 

세상의 가치관은 우리를 사정없이 부추깁니다. 다시 없을 좋은 기회야! 기회가 왔을 때 네가 먼저 차지해야 해’’ 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자기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 선택함으로써 덕을 세워가고 화평을 만들어 갑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 13:9) 아브라함은 더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기 전에 롯에게 서로 떨어지자고 제안했습니다. 롯은 몹시 기뻤습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곳을 먼저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양보 덕분에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은 좋은 땅을 먼저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창 13:10~11). 

세상의 가치관은 우리를 사정없이 부추깁니다. 다시 없을 좋은 기회야! 기회가 왔을 때 네가 먼저 차지해야 해’’ 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자기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 선택함으로써 덕을 세워가고 화평을 만들어 갑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내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말했습니다. 화평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선택하지 않고 기꺼이 희생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창13:14) 


봇을 떠나 보낸 바로 그때 하나님의 또 다른 역사가 시작 됩니다. 당장 눈앞에 달라진 것은 없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한 약속의 말씀으로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아는 자는 자신의 유익보다 평강을 우선하여 선택합니다. 이러한 선택 가운데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더 큰 평강을 누립니다.그리스도의 평강을 배운자 는 오늘의 나를 위한 삶보다 영원한 내일을 준비하는 자입니다. 오늘에 머물지 않고 내일을 위한 삶을 살아 가는 지경을 넓히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평강의 선물을 선사하실 때, 반드시 한 가지 고백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문제들보다 크신 분이며, 온 세상의 모든 것보다 크신 분이라는 믿음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펼쳐질 때 하나님은 우리를 염려와 불안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세상 그 어느 것도 흔들지 못하는 하늘의 평안을 우리에게 선사하십니다. 사도 바울의 비전은 로마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울의 궁극적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자꾸 차단됩니다. 여러 번 로마 방문을 꿈꾸었으나 로마서를 쓸 때까지 그 꿈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롬1:13). 

한참 후에야 바울은 로마를 방문하게 되는데, 그때는 선교사의 자격이 아니라 죄수 신분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바울은 로마에서 직접 재판을 받기 위해 황제에게 상고하였고, 죄수의 신 분으로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향합니다. 그런데 바울을 실은 배가 도중에 ‘유라굴로’ 라 불리는 엄청난 폭풍을 만납니다.  배에 탔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항해 경험이 많았던 선장과 선원들도 풍랑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인생의 위기 앞에서 이전의 어떤 경험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배와 화물을 소유했던 선주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못합니다. 바울을 호송하던 백부장과 군인들도 당시 주변 세력을 제패했던 기백은 온데간데 없이 오직 두려워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평안을 유지한 단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바로 죄수 신분으로 호송되고 있던 바울입니다. 그는항해 전문가도 아니었습니다. 배와 화물의 소유권을 갖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유인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것은 오직 한가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폭풍 보다 크신 분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27:25) 


그렇게 바울은 풍랑 가운데 평정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백에 기초하여 사람들을 위로하고 안심시켰습니다. 바울에게 평강의 성품이란 삶의 격랑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붙들고 고백하는 자리에서 나오는 능력이었습니다. 화평은 내면의 감정이나 외부의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성품입니다. 화평이라는 성품 또한 성령의 역사이며 성 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의 성품인 화평으로 온전히 일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알아야 하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화평을 배웁시다. 

-성령의 능력으로 나의 유익을 위한 선택에 머물지 말고, 지경을 넓혀 그리스도의 화평을 실천합시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여 진정한 화평을 누립시다.


그리하여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평화의 도구로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