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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60 : 나에게 영은교회는 ... 내 영혼의 인큐베이터
이규승 목사(성남시, 행전교회 담임) | 기사입력 2020.02.01 13:37| 동행 / 교회창립60주년 기념
![[크기변환]202002-08a.jpg](http://accompany.youngeun.or.kr/data/editor/2207/20220728174904_0c9e75a41e1be06731eea68046fa9a44_p5vw.jpg)
동행 60 : 나에게 영은교회는 ...
내 영혼의 인큐베이터
글| 이규승 목사(성남시, 행전교회 담임)
기억 속의 영은교회
나에게 먼저 생각이 드는 교회 모습은 당연히 지금의 웅장한 모습이 아니라,
사뭇 아담하고 예쁜 이전 모습이다. 빨간 벽돌로 된 2층짜리 길쭉한 건물인데,
2층 대예배실 현관을 밖에서 볼 때 두 개의 커다란 아치형 창이 흰색 테두리 때문에
붉은 색 벽돌을배경으로 선명했다. 내가 보기엔 참 이색적이었다.
당시에 주변 건물 중 단연 뛰어난 자태를 뽐냈다.
건물 길이도 긴 편이어서 입구에서 강대상 앞까지 길이가 꽤 멀었다.
그래서 결혼식 때 신랑 신부는 꽤나 긴 거리를 행진 해야했다.
건물 밖 마당은 내가 6넌을 뛰놀던 당중초등학교와 바로 담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비교할수 없는 아늑함이 있었다. 교육관앞에는 등나무덩굴이 있었는데
그 옆에 라일락이 향기를 내뿜으면 등나무 아래 머물러 있기가 그만이었다.
그 라일락 나무의 재미있던 옛날 일이 기억난다.
라일락꽃 향기는 정말 그윽하다. 하지만 잎 파리는 정반대인데, 그 잎을 씹으면 정말 쓰다. 써도 정말 쓰다.
그리고 오랫동안 쓴 맛이 남아 진저리가 쳐진다.
어느 날 친구와 같이 등나무 아래 있었는데, 친구는 라일락 꽃 향기를 칭찬하면서,
내게 라일락 잎 파리도 향기만큼 달콤하다며 마치 에덴동산의 뱀처럼 한 번 맛보라고 권했다.
나는 정말이냐며 신기해하며 건네 준 잎을 어금니로 잘근 잘근 씹었다.
그 날 나는 거의 죽다 살아났다.
라일락의 이런 속사정 을 알고는 라일락 잎을' 첫 사랑의 맛' 이라고 누군가 일갈하였다고 한다.
우리교회 그 옛날 마당 한 쪽에 자리한 등나무 아래에서 첫 사랑의 마음으로 앉아 있던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그 후 영은교회의 여러 커플들이 그 곳에서 탄생했다.
아버지 하나님을 만남
대학을 휴학하고 있던 어느 가을 밤 나는 영은교회 1층 소예배실 마루에 무릎을 꿇고 비통하게 외쳤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제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오!"
사실 난 철없는 신앙생활을 해오던 영적 미숙아였다.
아버지의 사업도 어려워지고 학업도 지지부진하고 목표도 목적도 불분명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날 밤엔 너무 마음이 슬폈다. 발길이 교회로 움직여졌다.
다행히 1층 문이 열려있었다.
쓰러지듯이 십자가를 향하여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나를 도우실 분은 하나님뿐이라고 고백했다.
갑자기 무거운 짐이 쑥 빠져 나갔다. 이유 모를 평안이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방황은 계속 되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그 후론 뭔가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군대를다녀 온 후 어느 주일 예배 때 늘 지겹게만 느껴지던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새벽예배 때 은혜 의 시간은 회개의 시간이 되었다.
이후 결혼을 하였다. 직장과 친구들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또 어리석은 시간이 지나갔다.
2001넌 5월 주일예배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님이 내 마음 속에서 말씀하셨다.
“이제 다시 시작하자!” 몇 주 동안 주님은 또 다시 은혜를 부어주셨다.
그 때 주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을 만났다.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서로 돕고 협력하는 사람들이었다.
사랑을 받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그 사랑을 이루려 서로 도왔다.
주님이 이것을 나에게 보여 주신 다고 말씀하셨다.
멈췄던 신학교로 다시 가자는 말씀에 그냥 따라 나섰다.
주님은 이렇게 장기계획으로 나를 인큐베이팅 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모르게자랐던 믿음
미숙아가 자라는 과정엔 여러 가지 좌충우돌하는 사건이 많이 생긴다.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일들이 많지만 좋은 경험과 배우는 시간도 많이 있었다.
대학부 시절엔 선배들에게서 내가 몰랐던 것들을 눈동냥 귀 동냥으로 배울 수 있었다.
서울대에서 국악을 전공했던 김강 목사님이 찬송가 205장 〈주 예수 크신 사랑〉을 국악으로 편곡해서
우리와 함께 불렀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도 가끔 불러 보면 영적 배짱이 생긴다.
매 주 토요일 세미나 형식으로 발표하고 토의하는 성경공부도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해마다 열리는 수련회는 그 중 최고의 배움터였다.
이때가 영은교회 홍보부와 청년부 비전트립의 씨앗이 뿌려지는 시간이 아니었을까한다.
특히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할 때, “어떻게 하면 말 씀을 진지 하게 대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아이들을 만나던 일, 교회 공부방 담당 교사일 때,
지금은 장년이 되었을 고3들과 재미있게 지낸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
모든것이 나도 모르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중요한 생장점이었다.
그래서 영은교회는 내 영혼의 인큐베이터인 셈이다.
그 안에서 자라는 본인은 정작 어떻게 자라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조금씩 자라서 결국은 하나님 백성의 모습으로 성장한다.
그 모습은 성인군자의 모습도 아니요, 지장용장의 모습도 아니다.
하늘 소망을 갖고 믿음의 인내를 꾸역꾸역 해내면서 조금은 흔들려도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져 가는주님의 자녀의 모습인 것이다.
이제 지금은 그 옛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여전히 성숙한 히늘나라 백성으로
양육하는 영적 사명을 품고 웅장하게 성장한 영은교회를 바라본다.
이 새로운 인큐베이터에서 좌충우돌 자라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또 어떤 추억으로 감사하며 미소 짓게 될지 마음에 그려본다.
그 옛날 풀 냄새나는 추억, 등나무 옆 라일락 풍경을 떠 올리면서 …
![[크기변환]202002-08b.jpg](http://accompany.youngeun.or.kr/data/editor/2207/20220728174921_0c9e75a41e1be06731eea68046fa9a44_wqh8.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