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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60 : 나에게 영은교회는.... 영은교회는 마음의 고향이자 영적 생명의 못자리

이규곤목사 (남현교회 원로목사) | 기사입력 2020.06.0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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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행 / 교회창립60주년 기념 

     

    동행 60 : 나에게 영은교회는....

     

    영은교회는 마음의 고향이자 영적 생명의 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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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이규곤목사 (남현교회 원로목사) 

     

    1968년 2월 중순, 이른 봄기운이 감돌았지만,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는 지인의 소개로 (주)동아견직에 입사 면접을 보기 위해 

    서산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영등포역에 내린 나는 물어물어 도보로 양남동 로터리 부근에 있는 동아견직을 찾아갔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회사 건물에 들어서니 직물을 짜는 기계 소리가 공장 뜰 안 가득했다. 

    면접은 간단했다. 총무부 부장이신 고(故) 김섭인 장로님과 경리부 부장이신 김동호 장로님께서 

    업무에 관해 몇 마디 물으시고는, 앞으로 교회는 어디를 다닐 것인지, 

    신앙생활은 어떻게 할 것인지 질문하셨다.

     ‘‘이 회사는 기독교인이 세운 회사인데 여기 근무 자들은 대부분 크리스천이다.

     李군도 신앙생활 잘할 줄 믿는다.’’고 하시면서 회사 가까운곳에 ‘영은교회'가 있는데

    우리와 함께 믿음 생활하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다. 첫 직장에서 믿음의 신실한 분들과 일하게 된 것은 물론, 

    좋은교회까지 소개받았으니 서울로 오기 전 기도한 대로 응답받았기 때문이다.

    영은교회 교인으로서 20년 

    주일예배에 나가 등록하고 영은교회 교인으로 20 여년간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 후 영은교회는 언제나 내 마음의 고향으로 깊이 각인된 채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특별히 청년의 때 정인영, 장일균 목사님의 주옥같은 선교로 믿음의 뿌리가 깊어졌고, 

    30대 초반의 때는 이용남 목사님의 복음적이며 영성과 열정이 넘치는 설교를 통해 

    복음의 사명자로 인생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목회자들 사이에 영은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 

    장로님들을 비롯한 모든 중직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성도들까지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열정과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청년기에 주변에 소재 한 

    동아견직, 대한모방, 서울통상등의 회사에서 영은교회에 나오는 청년들과 

    대학부 청년들까지 합하면 회원 수가 400여 명이나 되었다. 

    당시 회사별 청년 구역을 정하여 주일 오후마다 김덕재 목사님과 

    청년 임원들이 함께 심방을 하며 교제할 때마다, 

    고향 떠나 객지 산업현장에서 일하던 청년들이 한 말은 ‘‘영은교회는 사랑이 많아 좋다’는 것이었다. 

    당시 온유하신 김덕재 목사님의 품성은 나는 물론이요 많은 청넌에게 큰 감화를 주었다. 

    추수감사절이나 교회 특별행사 때마다 청년들이 강단 앞에 나와 찬양과 무용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청년기에 영은교회에 나가서 신앙 생활하는 동안, 

    나는 교사와 찬양대원으로 섭기면서 늘 심령이 메마르지 않기 위해 새벽기도회에 출석했으며, 

    직장이 끝나 퇴근시에는 교회에 들러 성전에서 한 시간씩 기도하는 것을 습관화하였다. 

    제1남선교회 회원이 된후에는 기회가 되는대로 회원들과 함께 가까운 기도원에 가서 철야를 하고, 

    다음 날 아침에 회사로 출근하곤 했다. 

    놀라운 것은 회원들 모두가 기쁨이 충만하여 기도의 사람들로 변화된 삶을 살았으며, 

    당시 함께 기도하던 사람 가운데 목회자가 세 명이나 나왔다.

    나의 영적 못자리가 된 영은교회 

    1981년 4월 26일 교회창립 21주넌 기념 주일에 31살의 젊은 나이에 안수집사로 임직받고 난 후, 

    내 마음속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기도할 때마다 한없이 부족하지만 나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해야겠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두 주간 금식 기도 후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어렵게 결단하고

    드디어 1984년 3월, 34살의 늦은 나이에 신학대학교에 입학했다. 

    신학대 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내가 받은 영은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사랑은 

    지금도 갚지 못한 사랑의 빚으로 남아 있다

    청년기에 함께 활동했던 분들과 교회학교 교사로 사제의 정을 나누었던 

    당시 학생들이 지금은 어엿이 교회의 신실한 중직자들이 되어 교회를 섬긴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없는 감사가 넘친다. 영은교회는 나에게 있어 ‘어머니 품속 같은 고향' 일 뿐만 아니라 

    ‘영적 못자리’라 할 수 있다. 농부들이 모판에 씨를 뿌리고 싹을 퇴워 키운 뒤 

    어느 정도 자라면 논이나 밭으로 이식하여 성장시켜 열매를 맺게 하듯이, 

    하나님께서는 20여 넌 동안 영은교회 기름진 못자리에서 연약하고 부족한 나를 키우셨고, 

    어느정도 자란 다음 목회 사명자로 목회현장에 파송(이식)하셨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당시 일반 평신도로 각 부서와 기관에서 받은 훈련과 경험들이 교회를 이해하고 

    성도들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줌으로써 30여 년의 목회현장에서 큰 힘이 되었다.  

    하나님의 한량 없는 은혜와 사랑가운데, 목회 사역을 마치고 

    지금은 서울 상도동 남현교회 원로목사와 동작경찰서 경목실장으로 섬기며

    목장드림뉴스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내 마음의 고향이며 영적 못자리와 같은 영은교회가 이제 교회창립 60주넌을 맞이하였다. 

    바라기는 성령의 권능으로 더욱 부흥하고 영적으로 성숙해 짐으로써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크게 쓰임 받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 

    또한, 모든 성도에게도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복하며 

    전심으로 축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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