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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60 : 나에게 영은교회는.... 내 영혼의 인큐베이터, 영은교회

민영애 목사 (대전신홍교회 중등부) | 기사입력 2020.10.0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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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행 / 교회창립 60주년 기념 

     

    동행 60 : 나에게 영은교회는....

    내 영혼의 인큐베이터, 영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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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민영애 목사 (대전신홍교회 중등부) 

     

    세상에 나올 준비가 안 된 아기를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키우는 곳이 인큐베이터라면, 

    영은교회는 칠삭등이 같은 나를 사역자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사역지로 보내기까지 

    영적, 내적 힘을 키우도록 눈물의 습도와 은혜의 온도를 맞춰 주신 인큐베이터였다. 


    눈물의 습도 

    '마지막 보루인데 이마저 무너지면 죽고 말거야' 라고 중얼거리며 人대학교 발표를 보러 갔다. 

    설마 했던 일이 ‘역시나'가 되었다. 

    죽고 싶은 마음으로 대학교 언덕을 내려왔다. 

    그런데 나는 어느새 139번 버스를 타고 있었고 내린 곳은 영은교회 앞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교회 본당에서는 청년부 수련회가 진행 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본당 벽 쪽에 앉아 있었다. 

    그날 말씀을들으며 하나님, 당신이 살아 계신다면나를 도와주세요. 

    내 인생의 계획은 물거품이에요. 내 뜻대로 안 돼요.’ 

    실패의 짐을 예수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내려놓는 날이었다(1988년 24살 때). 

    약 10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 후로 일년은 어루만지시는 하나님 때문에 예배드릴 때마다 울었다. 

    난 4살 때부터 매일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왜 갔는지 엄마도 모르지만 올 때는 양손에 사탕을 들고오곤 했단다. 

    아장아장 걸음으로 매일 영은교회 마당을 밟게 했고 교회학교 예배의 자리에 빠지지 않고

    나가도록 나의 등을 밀었던 강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나중에 신대원에서 기도훈련을 받으면서 이 의문이 풀렸다.) 

    그러나 엄마의 병환이 깊어지면서 굿을 해야겠으니 교회에 나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임명이 내려진 초등학교 5학년 겨울, 영은교회를 떠나야만 했다. 

    집에서 중학교에 가는 길은 교회를 지나야만 했는데 나는 둥굣길 버스 안에서 속으로 늘 기도했다. 

    하나님, 나중에 꼭 다시 올게요’ 어쩌면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 의 응답이었을지 모른다. 

    마지막 보루가 무너진 절망감에 죽으러 가려는 길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된 것은. 

    그날 내 인생을 하나님의 발아래 내려놓자 

    하나님께서는 내적치유부터 시작하셨다.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처럼 ‘아버지’ 라고 부르지 못하는 나의 모습 속에 

    아버지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음을 알아차리게 하셨고 육신의 아버지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셨다. 

    그 시간은 눈물의 긴 터널이었다. 

    게다가 하나님을 아바아빠라 부르며 즐거워하게 되기까지 

    또 오랜 시간 창자가 뒤틀리게 울었다. 

    새벽 본당 한 귀퉁이와 개인기도실은 하나님이 내 영혼이 회복되게 하시기 위해 준비 하신 인큐베이터, 

    눈물의 습도 조전실이었다.  

    은혜의 온도 

    영은교회를 떠났던 약 10년간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20대 초반의 시간이었다. 

    그 공백의 시간을 조금씩 하나님의 은혜로 메꾸면서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자주 웃곤 했다. 

    그 공백기를 겪은 것이 아쉬웠다. 

    물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그 시간도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 었음을 알지만 

    길을 돌아온 느낌이기에 그래서 고등부교사를 하기로 했다. 

    내게 주신 은혜를 나누어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일이 없게, 

    그리고 허송세월로 방황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교육전도사로 영은교회를 떠나기 (2000년 10월) 전까지 교사를 하면서 영혼을 사랑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영혼에 대한 사랑이 가장 뜨겁던 시간이었다. 

    영은 설악기도원으로 수련회를 갔을때는 난간에 팔을 얹고 앞산을 바라보며 밤새 이야기를 하곤 했다. 

    주일이면 새벽기도에 이어 고등부 학생들과 새벽기도와 큐티 나눔을 가졌다. 

    그렇게 주일이면 아이들과 함께 했다. 

    그 당시 고등부 교사였던 이규승 목사님과 민경화 권사님과 팀을 이루어 아차산에 올라가 

    산기도를 하러 다니기도 했다. 작은차라도 주시면 기도하러 다니겠노라고 

    특별기도를 하여 받은 프라이드를 타고. 교육전도사님을 중심으로 

    모든 교사들도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10년의 공백기가 있는 나로서는 당시 성격으로 보아 청년부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교회를 떠나기 전 초등학교 때 친했던 동기 박길혜 권사를 붙여주셨다. 

    또 여러 동기와의 어울림은 나의 부끄러움에 위로가 되었고, 

    캐나다에 있는 김홍근 오빠와 김영만 목사님 등 선배들이 주시는주 안에서의 관심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청년부에서의 교제는 신앙훈련을 하는데 든든한 지지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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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나도 영혼의 인큐베이터 

    교구 사역을 하는 내내 나의 관심은 문빗장을 걸어 잠그고 

    외로움과 상처에 움츠려 있는 영혼들이 깊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까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특화된 심방 사역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내 영혼의 인큐베이터였던 영은교회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찾아오신 것처럼 부지런히 문을 두드렸다. 

    지금은 중등부를 담당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 이 상황은 아이들로 하여금 

    골방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절호의 기회다. 

    하여 골방기도훈련을 조심스럽게 시도하고 있다. 

    이제는 내가 영혼의 인큐베이터가 되어 아이들을 섬긴다. 

    영혼의 인큐베이터, 영은교회가 없었다면 나는 건강하게 세상과 사역지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새 60년의 영은교회가 나 같은 칠삭둥이었던 성도들이 든든하게 세워지는 

    영혼의 인큐베이터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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