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이후 코로나 팬데믹으로 장년부 대상의 「루터 그랜드투어」는 잠시 미뤄졌고, 2022년 여름에 재개되어 장년 37명이 독일, 체코,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종교개혁도시를 탐방했다. 독일이 종교개혁의 종주국이라면, 유럽의 여러 나라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촉발했거나, 계승·발전시킨 교회개혁국가다. 특히 스위스는 독일 루터의 종교개혁을 완성하여 세계에 전파한 거점국이다.
세계개혁교회의 요람이 된 스위스는 츠빙글리, 불링거, 파렐, 칼뱅, 베자와 같은 많은 종교개혁의 거장들을 배출하였다. 어떻게 작은 나라 스위스가 종교개혁의 중심에 설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작업은 개혁교회의 후예인 우리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일이기도 하다. 2023년 한 해 동안 「동행」 지면을 빌어 스위스 종교개혁의 역사를 둘러보고, 츠빙글리 및 칼뱅과 같은 종교개혁의 거장들이 외쳤던 개혁교회의 신앙을 되새기고자 한다.
▷ 독일에서 촉발된 종교개혁, 스위스에서 완성되다
독일 루터 도시 비텐베르크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스코틀랜드로 확산되었고, 그 여파는 신대륙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독일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수사였던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채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붙이며 중세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고발하였다. 대학의 신학 교수들과 논쟁을 벌이려 내건 반박문의 효력은 독일 전역과 유럽에 빠르게 전파되면서 세계교회의 지형도를 바꿔놓았다. 독일에서 촉발된 종교개혁이 세계교회개혁의 원동력이 된 데에는 스위스 종교개혁자들의 역할이 컸다. 또한, 당시 스위스는 유럽의 경제요충지로서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 있어서 종교개혁의 거점이 되기에 유리했다. 독일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스위스에서 완성될 수 있었다. 미미했던 스위스는 종교개혁 시기를 거치면서 독일 다음가는 위치에 설 수 있었다.
한편, 종교개혁을 전후로 학문의 부흥과 함께 사상의 자유가 고무됐다. 당대 위대한 네덜란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의 바젤에서 활동(1514-1516과 1521-1529)은 루터를 비롯한 스위스 종교개혁자들의 성경 번역에 크게 공헌했다. 학문적 열풍 속에 사람들은 교회의 부패에 점차 눈을 뜨게 됐다. 바젤대학의 토마스 비텐바흐는 신학을 가르치면서(1505-1508) 면죄부, 미사, 성직자들의 독신 제도를 공격했다. 츠빙글리는 1505년에 그의 강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바젤에서는 독일 종교개혁가 루터의 책도 재인쇄되어 스위스 각처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바젤이 아닌, 취리히에서 츠빙글리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스위스 종교개혁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