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뉴스목록
-
주일 말씀이 잘 안들려요(칵테일 파티 효과)참 재밌는 현상이 있습니다. 주변 환경이 시끄러운 장소에서도 내가 원하는 소리는 쏙쏙 들립니다. 인지심리학자인 콜린 체리 박사는 1953년 영국공항의 관제탑에서 하나의 확성기를 통해 동시에 여러 명의 비행사들의 보고가 들어오게 되는데 항공 관제사들이 어떻게 보고 내용을 알아듣는지 유심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스피커에서 동시에 두 명의 목소리, 혹은 그 이상의 목소리가 들리더라도 관제사들의 대부분은 특정 소리 하나만 집중해서 듣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또한 사람마다 다른 목소리의 톤과 속도, 말하는 사람의 성별 등에 따라 상대방의 메시지를 잡아내는 것도 달라진다는 걸 발견합니다. 이런 현상은 특정 직업군에서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속에서도 자주 경험하는 현상입니다. 주변 환경이 시끄러운 곳에서 대화를 할 때,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혹은 희미하게 들리는 자기 이름에 우리는 곧잘 받응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뇌가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내가 관심 있는 것 외에는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겁니다. 반대로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더 잘들을 수 있는거죠. 이런 현상을 콜린 체리 박사는 “칵테일 파티 효과’’ 라 불렀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지하철에서 졸다가도 자기가 내릴 역의 안내 방송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 이게 바로 칵테일 파티 효과입니다. 이런 칵테일 파티 효과는 우리 신앙에서도 발견됩니다. 어떤 사람은 돈, 투자종목 이야기, 어떤 사람은 이성에 대한 이야기, 또 어떤 사람은 드라마, 다른 사람의 뒷 이야기에 기가 막히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들리는 주제, 그것이 내 마음이 내 생각이 집중하고 있는 주제라는 겁니다. 여러분 말씀이 잘 들리고 말씀 한 구절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으십니까? 말씀을 더욱 많이 사모하시고 더욱 말씀을 기대하시고, 여러분의 삶의 가장 큰 관심의 주제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세요. 내 마음의 주제를 세상의 가치에서 영원한 하늘의 가치로 바꾸시는 영은의 모든 가족들 되길 소망합니다.
-
녹색 제5계명 : 아나바다 운동에 참여한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아나바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운동이다. 절약하는 습관은 돈을 아끼는 효과도 있지만, 환경을 보호할 때에도 중요하다.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플러그를 뽑아 대기전력까지 아끼고, 에너지 효율이 좋은 제품으로 교체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좋은 선택이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거나, 내가 필요한 물건으로 물물교환해 볼 수 있다. 내가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아도 제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물건은 사실상 쓰레기라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쓰레기를 이고 지고 사는 삶이 아닌, 중고장터, 바자회, 플리마켓 등 여러 이름으로 운영되는 곳에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것도 자원을 아끼고 올바르게 순환하는 방법이다. 교회나 회사에서 재생지와 이면지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영은, 녹색 십계명’을 선포하며 <영은, 아나바다>를 만들었다. 교회가 아나바다 장터를 운영하고 물건을 아끼고 서로 나눈다면 참 좋겠다. 선물 받은 좋은 옷인데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면, 고민하고 옷장에 걸어만 두다가 결국 버리는 때도 있다. 그럴 때 떠오르는 그 성도에게 선물한다면 어떨까? 새것만 선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서로 나누는 것도 좋은 선물이 될수 있다. 두번째 <영은, 아나바다>는 월간계획이다. 생태적인 삶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과감히 포기하고 대체해야 할 물건들이 있다. 기존에 사용하던 플라스틱 원료 물티슈, 화학 성분 세제 등이 그러하다. 교회가 이러한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의 몇몇 교회들이 “제로웨이스트 숍”을 운영하여 성도들과 지역 사회 이웃들에게 친환경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하고 있다. 또 우리 집에 쌓여있는 텀블러/책/화장품/문구류 등을 나누고 이 계획에 따라 한 달에 한 번 내가 가진 물건을 돌이켜 정리해 보고, 내게 필요한 건 딱 하나라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교회 안과 밖에 나보다 이것이 더 필요한 이들과 나누고, 당장 그 하나도 없는 이웃에게 선물할 수 있는 영은의 성도들이 되어 주시길 부탁드린다.
-
전도 노장(老將), 송준근 은퇴장로 <1>토요일이면 코스트코 앞에서 “오직 예수”라는 전도띠를 두르고 전도하는 송준근 은퇴 장로를 볼 수 있다. 올해 나이 93살의 ‘전도 노장(老將)’ 송준근 장로의 전도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일평생 ‘전도의 사명’을 가지고 살아온 송준근 장로님! 지면을 통해 장로님의 전도 이야기를 들어 본다. ■ 3대째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송준근 장로 송준근 장로는 1931년 평남 강동군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장로님은 모태신앙으로 3대가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부친은 평남 삼합리교회의 영수(장로 밑의 직분)였고 모친은 집사였다. 조부모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6.25 전쟁이 터지자 장로님은 홀로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장남을 잃은 부친은 외아들 장로님을 교회전도사에게 부탁하며 안전하게 남한으로 데려가 줄 것을 부탁했다. 그때 장로님은 19살 청년이었다. 장로님이 피난 내려와 처음 정착한 곳은 영락교회 피난민 수용소였다. 그 수용소에서 평양에서 살다가 피난 온 누님과 매형을 만날 수 있었다. 남한에서 만난 유일한 가족이었다. 수용소에서 나와서 누님과 함께 인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이후 누님 가족과 서울로 이사와 생활했다. 그때 효창공원에 있는 창덕교회에 출석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매형의 형님이어서 6~7년간 창덕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 신앙의 위기와 회개 누님과 함께 살던 장로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누님집에서 나와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장로님은 신앙의 위기를 맞게 됐다. 누님 집을 떠나 살면서 장로님은 예수님을 잊고 말았다. 교회와는 멀어졌고, 세상의 온갖 죄에 빠져 방황했다. 그러다가 화곡동에 있는 강서성결교회를 다니게 됐다. 이 교회에서 장환 목사님을 만난 게 주님의 은혜였다. 장로님은 강서성결교회에서 다시 옛 신앙을 회복할 수 있었다. 목사님 앞에 선 장로님은 눈물로 회개했다. 인천에 살면서 알게 된 허정옥 권사와 결혼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장로님은 삶의 출발선에서 용기를 내어 화곡동에 탁구장을 차렸다. 감사한 마음으로 강서성결교회 장환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개업예배를 드렸다. 장로님은 저녁마다 탁구장 바닥을 닦으며 회개의 기도를 했다. 세상의 모든 죄 된 것을 끊기로 ‘맹세’했다. 다시 죄를 짓는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행5:1~6)처럼 현장에서 죽겠다고 맹세의 기도를했다. ■ 장안평기독신우회를 일으키다 그렇게 회개의 눈물로 시작한 탁구장은 얼마 되지않아 완전히 바닥을 보였다. 장로님에게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하지만 장로님은 하나님의 용서를 믿으며 다시 일어섰다. 장로님은 장안평 자동차매매 시장을 찾아갔다. 눈물겨운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로 그곳에서 중고자동차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밑천도 없이 시작한 장사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돈을 많이 벌게 되었고, 영은교회 옆에 있는 한양연립을 2천만 원에 매입해 내 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주님의 기적 같은 은혜였다. 중고차매매를 하면서 장로님은 전도의 사명을 갖게 되었다. 1989년, 장로님은 장한평 자동차 중고시장에 있던 ‘기독신우회’에 들어갔다. 미미했던 기독신우회에서 믿는 이들과 함께 합심하여 예배를 드렸다. A~D 네 개 동 중 입주자가 가장 많은 3층에 방을 얻어서 기독신우회에서 적극적으로 운영했다. 처음에는 몇 명 되지 않던 예배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이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헌금도 많아져 신우회의 재정 상황이 좋아졌다. 그래서 장로님은 신우회 회원들과 함께 여러 주민센터를 찾아가 극빈자 다섯 가정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몇 군데 다닌 결과 30가정을 소개 받을 수 있었다. 장로님은 그 가정을 전도하기 위해 매달 5만 원씩 후원했고, 장사하지 않을 때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이러한 장로님의 수고와 헌신이 성동구청에까지 알려지게 됐고, 장로님은 구청으로부터 표창장과 상품(시계)을 받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됐다. 그때 만든 신우회는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 올해로 35살이 된 신우회는 장로님의 뒤를 이어 신우회 출신의 장로와 집사들이 운영하고 있다. 장로님은 그를 ‘전도 노장(老將)’으로 만든 신우회를 잊지 못한다.
-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기2004년 북경 코스타(KOSTA)에서 어느 목사님이 설교 중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천국에서예수님을 만나면 가장 먼저 어떻게 인사를 건넬 것 같습니까? 대부분 예수님께 이렇게 인사를 할 것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듣기만 해서는 안되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의 깊은 관계가 지속되어야 하지요.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1.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1) 개인적인 관계 : 예수님을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시며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과 매순간 지속적인 대화를 나눕니다. 2) 삶의 변화 :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려는 구체적인 실천을 합니다. 3) 신앙의 확신 :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확신과 평안이 있습니다. 예배 가운데 주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2.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1) 성경 읽기 :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고 그의 성품을 배울 수 있습니다. 2) 기도 : 예수님과의 대화를 시작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예배와 찬양 : 예배와 찬양은 공동체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예배와 찬양 가운데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4) 공동체와의 교제 : 신앙인들과의 교제를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예수님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을 만난 간증들을 나눕니다. 5)영적 훈련 : 기도, 말씀, 큐티, 장년신앙교육등의 영적 훈련을 통해 예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예수님과 하나 되는 삶이 되시기를바랍니다.
-
'시인 장로님’의 신앙유산우리 교회에는 ‘시인 장로님’이 계신다. 김경섭 은퇴장로님이 그 주인공이다. 내 오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로님은 교육자이자 시인이셨다. 장로님의 시는 특별한 때마다『동행』에 게재되곤 했다. 학교 국어교사이자 교회 중등부 교사였던 김경섭 장로님은 평생 교육에 몸담았던 ‘시인 교사’였다. 올해로 93살이된 장로님은 “예수 믿으면 복 받아서 장수하고 건강해요!”라며 활짝 웃는다. ■ 불교집안에서 태어나 믿음의 가정을 꾸리다 김경섭 장로님은 1931년 8월 3일 황해도 수안군 대성면 내덕리(생금촌)에서 5남매 중 3남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부모님은 불교 신자였다. 가족 모두가 불자로 살았다. 이후 장로님이 ‘믿음의 씨’가 되어, 온 가족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장로님이 예수를 믿기 시작한 건 군대에서다. 장로님은 1954년 7월, 마산 군인교회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됐다. 23년 만에 장로님 가정에 최초의 기독교 신자가 탄생한 것이다. 장로님은 “6.25가 큰 복”이라고 회고한다. 황해도가 고향인 장로님이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남쪽으로 피난 오게 됐고, 휴전 이듬해에 군대에 입대했다. 그 군대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으니 ‘큰 복’을 받은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후 장로님은 부모님과 형제들을 전도해 모두 신앙인이 되었다. 장로님은 제대 후 영서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이어갔다. 이웃 교회이자 우리 교회와 교단이 같은 영서교회는 김청달 목사님이 1956년에 영등포구 양평동 2가 409번지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창립된 교회다. 김경섭장로님은 영서교회 창립 교인이었다. 7년이 지난 1963년에 영은교회의 창립 교인이었던 김광수 장로의 모친 김재석 권사의 권유로 영은교회에 등록하게 됐다. 영서교회 김청달 목사님은 장로님에게 “믿음 좋은집의 자제와 결혼하라”고 조언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유치원 교사의 주선으로 김명화 권사를 만나게 됐다. 권사님은 아버지가 장로였고 어머니가 권사였던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분이었다. 장로님이 김명화 권사님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김청달 목사님의 말씀대로 ‘믿음 좋은 집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 것이다. 1962년 4월 3일에 장로님은 김명화 권사님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듬해에 두 분은 영은교회에 등록 교인이 됐다. 김청달 목사님도 이후 영은교회로 오셔서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생을 마치셨다. ■ 시인 & 교사가 되다 김경섭 장로님은 제대 후 중학교 국어교사가 됐다. 놀라운 건 중학교 밖에 안 다닌 장로님이 국어교사가 된 것이다. 여기에는 장로님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숨어 있었다. 6.25 전쟁으로 중학교 교육만 받은 장로님이 남한에 내려와 혼자 공부를 해서 경기공립보통사범학교(현, 서울교육대학교 전신)에 입학했다. 졸업후 서울사립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그러나 김명화 권사님의 병환으로 교편을 접어야 했고, 권사님이 운영하던 학원(피아노학원, 미술학원 등)을 돌보기 시작했다. 장로님이 ‘시인’이 된 것은 초등학교 때 글짓기를 통해 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다. 어른이 된 장로님은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시인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 영은교회는 가장 건전한 교회입니다 김경섭 장로님은 1963년 영은교회에 등록한 후 줄곧 중등부에서 교사로 봉사했다. 장로님은 교회창립 30주년 기념식이 있던 1990년 4월 22일에 장로 임직식을 가졌으며, 2001년 12월 30일에 은퇴하시기까지 11년 동안 장로로서 헌신하셨다. 장로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목회자를 꼽는다면, 제1대 박조준 담임목사다. 장로님을 영은교회로 이끌어 준 분이기 때문이다. 장로님은 영은교회의 가장 큰 자랑은 ‘교회의 건전성’이라고 한다. “우리 교회는 건전한 장로교회입니다. 가장 건전한 교회가 장로교 통합 교단 교회인데, 그중에 영은교회가 가장 건전합니다. 영락교회, 새문안교회와 나란히 영은교회도 최고의 교회라고 할 수있습니다.” 영은교회에 대한 장로님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서인지, 장로님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동안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씀한다. 교회가 항상 재미있어서 힘든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93살의 장로님은 10년 전 김명화 권사님(2014.12.11. 별세)을 먼저 주님 곁으로 보내고 현재 아들 김태화 집사와 함께 산다. 김명화 권사님은 숭의여전 유아교육학과를 나와서 평생 어린이 교육에 삶을 바치셨다. 살아 생전에 시부모님을 잘 모셔서 “영등포 효부상”을 받기도 했다. 김경섭 장로님과 결혼하기 전 권사님은 “시부모님은 생전에 제가 모시겠습니다.”라고 언약했는데, 그 약속을 평생 지킨 것이다. 김명화 권사님은 1991년에 권사에 취임해 2007년에 은퇴했다. 장로님은 슬하에 2남 1녀(태선,은주, 태화)를 두었다. ‘시인 장로님’의 바람이 있다면 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건강 주셔서 장수합니다.” 장로님이 주는 최고의 신앙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