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가끔은 기뻐서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눈물은 고통과 슬픔, 말할 수 없는 막막함에서 흘러나옵니다. 눈물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보편적 경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힘들게 흘린 눈물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눈물 날 때 문득 “나의 고통을 누가 알까?”, “내가 이렇게 울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 눈물이 그저 한순간 흘러 사라지는 물방울처럼 아무도 관심 주지 않는 헛된 고통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흘린 눈물을 한 방울도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눈물, 심지어 우리가 잊어버린 눈물까지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시고 품으시고 간직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눈물 속에 회복의 씨앗을 심으십니다.
시편 56편은 다윗이 사울 왕의 박해 때문에 블레셋의 ‘가드’로 피신했을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스라엘 땅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한 다윗은 적대적인 민족이었던 블레셋의 영토, 그것도 골리앗의 고향인 가드로 도망쳤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웅을 죽인 장본인이자 이스라엘의 용사인 다윗을 알아보고 그를 붙잡았습니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다윗은 비굴하게도 미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성 문짝 위에 아무렇게나 글자를 긁적거리고 수염에 침을 흘리는 등 수치스러운 행동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속입니다. 시편 56편은 이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은 기도입니다. 사울에게 쫓기며 가장 외롭고 불안했던 그 순간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56:8)
다윗은 자신의 눈물이 헛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병’에 소중하게 담아두시고 ‘주의 책’에 하나하나 기록하셨으며 ‘회복의 소망’을 담은 힘이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1) 눈물은 무언의 간구입니다
눈물이 강력한 이유는 그것이 언어를 초월하는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말이 끊어진 지점에서 눈물은 비로소 하나님께 상달되는 진정한 기도가 됩니다. 우리의 언어는 고통, 슬픔, 혹은 간절한 소망의 극히 일부만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우리는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거나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는 경험을 합니다. 눈물은 언어가 좌절하고 포기한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영혼의 비명이자 몸부림입니다.
또한 바울이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여 입이 닫혔을 때조차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롬8:26)라고 선언했듯이, 성령은 우리의 부족한 언어, 절망적인 눈물을 받아 하나님의 뜻에 가장 합당하고 온전한 기도로 ‘통역’하여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시키십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눈물은 인간적인 말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오류가 없는 영적인 전달력이 있습니다.
2) 눈물은 진실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조차 체면을 차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외식을 버리지 못합니다. 말은 경건한데 마음은 비어 있을 때가 있고, 자세는 겸손한데 속은 굳어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눈물은 이 모든 체면을 단숨에 무너뜨립니다. 눈물 앞에서는 지위도, 경력도, 포장된 신앙도 의미가 없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도 그랬습니다. 그는 왕관을 벗고, 권위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이고 웅변적인 기도보다 눈물에 담긴 진실한 마음을 보십니다(시38:5). 눈물은 인간이 쌓아 온 장벽을 허물고 영혼을 하나님 앞에 벌거벗겨 놓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며,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가장 깊이 일하십니다.
3) 눈물은 믿음의 선언입니다
눈물은 인간이 더 이상 스스로 해결할 힘이 없으며 세상의 어떤 위로나 물질적인 도움으로도 고통을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힘, 능력, 지혜 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자신을 맡긴다는 강력한 신앙 고백입니다. 다윗의 기도(시56:8)에서 눈물은 절대적인 의존을 잘 보여줍니다. 다윗은 자신의 불안하고 방황하는 상태를 하나님께서 계수하셨다는 믿음을 선언합니다.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는 간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고통과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을 잊지 않고 소중히 기억하며 보존하신다는 확신의 표현입니다. 또한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는 표현을 통해 그 눈물을 흘리게 한 다윗의 고난의 역사와 그를 향한 구원의 약속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 이미 확정되어 있음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다윗에게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정의와 구원이 반드시 임할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그의 눈물은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구원의 근거가 되는 힘을 지녔던 것입니다.
우리의 눈물도 단지 슬픔의 잔해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들으시는 무언의 간구이며, 주님께 상달되는 가장 순도 높은 진실한 기도이고, 주님의 책에 기록되어 반드시 응답받을 영원한 약속의 증거입니다.
■ 눈물이 눈물을 만나다, 힘이 되다
눈물이 힘이 되기 위해서는 눈물을 만나야 합니다.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코끼리 아저씨가 물방울이 가득 담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사막을 가다가 강렬한 태양 때문에 물 몇 방울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두운 동굴을 지나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바람에 많은 물방울을 날려 버렸습니다. 하필 선인장밭에 떨어져 엉덩이에 가시가 박힌 채로 길을 가던 코끼리 아저씨는 눈앞의 개미집에서 불이 난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물방울을 거의 소진해 버렸지만, 위기를 만난 이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남은 물방울 몇 개를 나눠 주며 급한 불을 껐습니다. 겨우 위기를 수습하고 길을 떠나는 코끼리 아저씨는 벌떼의 공격을 받아 길을 서두르다가 또다시 물방울을 떨어뜨립니다. 겨우 숲길을 빠져나올 즈음에는 목마른 기린이 목을 빼고 물동이의 물방울을 가져갑니다. 이제 물동이에는 물방울이 몇 개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날아가는 새들이 물고 가 버려서 이제 텅 빈 물동이만 남아버렸습니다. 코끼리 아저씨는 빈 물동이에 코를 들이밉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물방울은 없습니다. 마을 전체를 위해 온 힘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결과는 ‘실패’와 ‘공허’뿐입니다. 텅 빈 물동이에 코를 들이밀고 물을 찾던 코끼리 아저씨의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주르륵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때 잿빛 하늘에서 눈물 한줄기가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한 줄기, 두 줄기 내려오던 눈물은 어느새 세찬 빗줄기가 되어 쏟아집니다. 코끼리 아저씨의 빈 물동이에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더니 이내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차고 넘쳐흐릅니다. 물방울이 가득 찬 물동이를 새끼들에게 건네는 코끼리 아저씨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눈물이 눈물을 만나는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코끼리 아저씨의 고달픈 여정은 우리 신앙의 여정과 비슷합니다. 코끼리 아저씨가 태양과 동굴, 낭떠러지에서 잃어버린 물방울은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흘린 땀과 노력, 하지만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 것들이기도 합니다. 엉덩이에 박힌 가시와 따라붙은 벌들은 우리를 괴롭히는 고난, 조롱, 육체적, 정신적 아픔과도 같습니다. 개미와 기린에게 준 물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소유’마저 기꺼이 내어준 희생과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고통의 과정을 지워버리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야말로 우리의 잔을 비우는 시간입니다. 코끼리 아저씨가 모든 것을 잃고 텅 빈 물동이에 코를 들이미는 절망의 순간은 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는 채울 수 없는 극한의 무력감을 느낀 지점입니다. 그러나 텅 빈 물동이에 코를 들이밀고 물을 찾던 코끼리 아저씨의 눈에 눈물이 고여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리자, 하늘도 눈물로 응답했습니다. 텅 빈 물동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이 완전히 비워지고, 더 이상 스스로 채울 수 없음을 인정하는 눈물이 터져 나올 때 주님께서 눈물로 마중 나오십니다. 잿빛 하늘에서 내려온 눈물 한줄기는 우리의 고통을 아시는 하나님의 깊은 공감과 응답의 시작입니다. 한 줄기 두 줄기 내리던 비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물동이를 넘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은혜입니다. 100개의 물방울로는 결코 채울 수 없었던 갈증이 하나님의 무한한 공급으로 채워지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텅 비워낸 그 자리에 하나님은 비교할 수 없는 충만한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눈물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부르는 자리입니다. 다윗의 눈물은 버려지지 않았고, 히스기야의 눈물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눈물이 터져 나오는 그 지점에 가장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고 말 대신 눈물만 남았을 때 그 눈물은 이미 주님께 상달된 기도가 됩니다. 눈물을 보신 주님은 눈물로 우리를 마중 나오십니다. 그래서 성도의 눈물은 절망의 끝이 아니라 은혜의 시작입니다. 비워진 자리, 포기한 자리에서 “주님밖에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눈물 위에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