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월간동행

부활절,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글: 이준희 목사

  • 등록 2023.04.19 13:35
  • 조회수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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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목사

 부활절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달걀이다. 어릴 적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더더욱 부활절은 달걀 먹는 날로 기억될 것이다. 언제부터 부활절에 달걀을 먹게 되었는지에 대해 정확한 근거는 없고 여러 가설들이 있다.

 

독일 작가 페터 제발트가 쓴 가톨릭에 관한 상식사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달걀은 거의 모든 문화와 종교에서 다산과 부활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이 상징성이 더 강화되었다. 달걀은 훼손되지 않은 껍데기 때문에 죽음을 이겨낸 예수의 부활을 가리킨다.”

 

이는 모든 생명은 알에서 나온다.”는 모든 문화와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달걀의 상징성이 기독교 내에 흡수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부활절 달걀은 사순절(부활절 전 40)과 깊은 관련이 있다. 17세기 수도원에서는 사순절 기간 동안 채소만 먹고, 짐승 고기뿐만 아니라 물고기나 달걀까지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부활절이 되면 그때 오믈렛이나 반숙된 달걀을 먹었다. 당시 달걀은 매우 귀한 것으로 서민들은 부활절 아침 식사 때에야 비로소 달걀 요리를 먹었다고 한다. 이것이 하나의 부활절 달걀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는 가설이다.

 

사실 이러저러한 가설을 보지 않더라도 달걀의 형태만으로도 부활과 연관 지을 수 있다. 달걀이 딱딱한 껍질은 예수님이 봉인된 무덤을 상징하며, 달걀을 깨는 것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하지만 달걀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하여도 주객전도(主客顚倒)’되어서는 안 된다. 부활절의 초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달걀을 주고받고 달걀을느냐 마느냐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부활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은 주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이다. 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이 말이 되냐고 말한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셨음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다. 부활의 사건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래서 부활은 우리에게 소망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가 석가탄신일을 최대 경축일로 삼고 있듯이 기독교는 성탄절이 가장 중요한 절기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에는 성탄절외에도 대림절’, ‘주현절’, ‘사순절’, ‘오순절등 다양한 절기가 있지만 부활절이야말로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것도 중요한 사건이지만 그 분이 왜 이 땅에 오셨는가를 생각하라.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날 아침이야말로 기독교의 최대 경축일인 것이다

 

1225일을 성탄절로 지키는데 사실 그 날은 성경이나 초대교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AD 354에 편찬된 필로칼루스(Philocalus)의 연대기에 나온 내용이 있는데 정월의 제 8일째 전날(1225)에 그리스도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연유하여 1225일을 예수님 탄생하신 날로 정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부활절은 분명히 성경에 기록된 대로 행해진다. 유대교의 전통을 따라 지켰던 안식일을 대신하여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함께 모여 성만찬을 하였고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을 나누었다. 부활의 사건을 통해 주어진 감격을 기념하기 위해 매주일 안식 후 첫날을 작은 부활로 지키게 되었고 그것이 주일 오전 예배의 전통이 된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중 45을 보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를 묻는데 그 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리스도는 부활로써 죽음을 이기셨으며, 죽음으로써 얻으신 의에 우리로 참여하게 하십니다. 둘째, 그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이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영광스런 부활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다시 살아나심이다. 그래서 기독교부활의 종교. 예수님의 부활이 있어서 기독교가 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주의 자녀가 되었고 매주일 예배를 드리며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갈라디아서 220이 그 답을 준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생에게 새롭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덤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한 은혜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은혜를 받은 것에 대한 합당한 자세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래 전 사건을 기념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현재도 유효하며 장차 그리스도인의 미래에 재현될 사건이다. 그러니 매년 오는 부활절이라는 생각이 아닌 부활의 감격과 기쁨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을 고백하는 부활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부활절은 부활절의 의미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이것입니다, 정장복, 예배와 설교 아카데미,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