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터치
동심, 유년의 아랫목
한 아동 미술전문가와 저녁을 함께 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동심(童心).
어린 아이의 마음 또는 세계관이란 뜻 일게다.
특히 미취학 아동의 정신세계를 뜻한다고 그는 소리 높여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들려주는 아이들의 그림 이야기는 놀라웠다.
’가족’이 그림의 주제였다고 했다.
한 아이는 주먹이 얼굴보다 큰 아빠와 입이 얼굴의 반쯤 차지한 엄마의 얼굴을 그렸다고 한다.
싸움이 잦은 부 모를 아이는 그렇게 표현했다.
다음은 '자연’이라는 주제. 한 아이가 뱅글뱅글 돌며 내려오는 빗방울을 그렸다.
다른 아이의 비는 빨간색이거나 노란색, 혹은 초록빛 이었다.
“아이의 마음으로 보면 이 세상에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움직입니다.’’ 이 말 을 할 때 그 전문가의 눈은 아이처럼 초롱댔다.
정말 그랬다. 아이란 어른이 강요하는 질서에서 비껴서 있는 존재다. 제 아무리 강요해도 소용없다.
아이는 인간의 개별성이 최고치에 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홀로 생각하고, 이 세계를 홀로 그려낸다.
그러고 보면 얼마 전 다섯 살 아들이 생일 선물이라며 내게 건넨 무지개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은 스무가지도 넘는색깔로 무지개를그렸는데, ‘일곱색깔 무지게 라는 정답에 갇힌 어른은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고유하게 아름다운 무지개였다.
동심을 잃어버린 채 어른이 된다는건 내 마음속 망아지에 재갈을 물리는 것과 같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얽매는 게 어른이고, 어른의 세계에선 단 하나의 정답만 진리의 값을 지닌다.
반면,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진리가 여러 겹임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세계를 규정하는 온갖 질서를 극복하기 위해 선 바로 아이와 같은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른이란 아이처럼 세계를 비뚤게 보는 법을 상실해 온 세월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결국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은 진리는 독점될 수 없다는
자명한 이치를 깨닫는 데서 비롯된다. 그 맨 앞 에 동심이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추신.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동심이 은신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 동심의 눈으로 세상의 다양한 시각과 견해들을 품어낸다면,
어른들의 세계가 유년의 아랫목처럼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글 |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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