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립적 신앙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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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립적 신앙인인가?

- 청년2부 수련회를 마치고 -

글: 신영광(청년2부)

  • 등록 2023.08.25 13:59
  • 조회수 435

올 한해 영은 청년부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기도를 굉장히 많이 한다. 특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의 청년을 위해 하는 중보기도가 주가 된다. 참 우리가 구원에 관심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예수께서 죽음보다도 힘겨운 고난을 이기시고 승리를 위해 죽으셨다. 그리고 부활하셨다. 앞 문장을 진리로 믿는다면 내 인생을 복음에 던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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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 신앙인

 

청년2부 수련회 주제는 독립적 신앙인이다. 독립적 신앙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은 신앙을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또 내 주인으로 고백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세상이 무엇이라 해도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게 한다. 사울이 바울이 된 사실처럼 말이다. 진짜 복음을 마음에 지닌 성도는 세상에 미혹되지 않는다. 돈과 명예와 부, 그 외 다양한 가치가 복음보다 소중하다고 설득해도 세상을 굴복시키는 힘이 복음이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우리 청년들이 복음에 인생을 던지고 세상을 굴복시키는 성도가 되리라,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교회와 나라, 세계와 열방이 변화할 것이다.

 

어떻게 내 신앙을 독립시킬 수 있을까?

 

관계로부터 독립

 

우리는 어떻게 내 신앙을 독립시킬 수 있을까? 하나는 관계로부터 독립, 둘은 보편으로부터 독립을 통해 이룰 수 있다. 사피엔스같이 인간사에 관한 책을 읽으면 인간의 특별함은 사회성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독립이라니 조금은 재미있다. 인간은 혼자 살지 않는다, 사회를 구성한다. 그러므로 관계는 인간에게서 떼어 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관계를 떼어 낸 믿음을 기대하신다.

 

사람이 좋아서 사역에 참여한다. 사람이 싫어서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 기분이 좋아서 예배를 잘 드린다. 기분이 나빠서 예배를 못 드린다. 관계가 좋은 설교자의 말씀이 은혜로운 말씀이 된다. 관계가 안 좋은 설교자의 말씀은 듣기도 싫다. 관계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신앙에는 생명이 없다. 의지 없이 그저 관계에 따라 움직여지거나 멈추어지는 꼭두각시 같은 신앙에 불과하다.

 

사사 중 삼손은 나실인의 정체성을 갖고 태어났다. 삼손은 구별돼야만 했다. 그러나 여자관계에 온 은사를 다 내버리고 꼭두각시가 되어 제 약점을 스스로 발설하여 죽는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다른 존재를 끼워 넣다 보면 하나님께로 가기 위해 그 존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하나님 외의 다른 관계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보편으로부터 독립

 

다음은 보편으로부터 독립이 필요하다. 세상이 우리를 미혹하는 법은 다양하다. 돈과 명예 같은 가치가 복음보다 의미 있다며 설득한다. 또 말씀에 반대되는 교훈을 주며 세뇌한다.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사람을 손가락질하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말하는 보편적인 방식을 진리로 여겨서는 안 된다. 또한, 세상 상을 얻기 위해 눈치 보며 굴복하는 선택을 해서도 안 된다. 똑같은 길을 걷더라도 하나님의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고 성도이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4:19-25)라고하신다. 이전에 갖고 있던 모든 생각과 습관, 나 자신까지도 벗어 내던지고 말 그대로 새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보편에게 독립을 선언해야 한다. 이것은 삶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정하는 행위다. “하나님이 내 주인이다.”라고 말로만 외치는 가짜 고백이 아니라, 내 생각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계획이 더 신실하다고 인정하는 믿음이다. 그때 비로소 나를 괴롭히던 세상의 거짓된 교훈에게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확신할 수 있다. 보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하나님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던 우상을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 연약함을 핑계로 보편적 가치를 포기하지 못하면 나의 삶은 점점 하나님께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는 핑계를 제공하기 위함이 아니다. 사랑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을 닮은 우리는 연약할 수 없다. 인간의 연약한 속성은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깨달음을 위해 존재한다. 결코, 세상에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에 더 이상 광야는 없다

 

수련회를 통해 많은 교훈과 가르침을 얻었다. 앞서 글은 신앙생활을 하는 누군가가 아닌 내 삶을 투영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나의 인생도 하나님께서 똑같이 하셨다.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셨고 내 하루에도 넘치는 은혜를 주셨다. 청년부 예배에서 한 달에 두 번은 꼭 듣는 말이 있다. “나는우리청년들이광야생활을 40년씩이나하지않기를기도한다.이스라엘은 마땅히 40년의 광야 생활을 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믿음이 없었으니까 말씀 몇 장을 보니 하나님의 공의는 좋은 게 좋은 거다.”하며 넘어가지 않으시고 꼭 벌을 주신다.

 

나는 질문한다. “신영광, 너는인생의얼마만큼을광야에서허비하겠느냐?”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드리기로 다짐했다. 내 작은 것 하나까지도 은사가 되는 삶이 내 목표다. 나라는 사람이 참 연약하다. 내 인생에 더 이상의 광야는 없다. 죽어도 하나님을 위해 죽고, 살아도 하나님을 위해 산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다.

광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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