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4차산업혁명과 슐라이어마허 -현대 신학의 아버지 슐라이어마허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며-

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4차산업혁명과 슐라이어마허 -현대 신학의 아버지 슐라이어마허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며-

김명희 (동행 편집위원)

  • 등록 2018.11.0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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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4차산업혁명과 슐라이어마허 

-현대 신학의 아버지 슐라이어마허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며 -

글 | 김명희 (동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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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현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아버지 슐라이 어마허가 탄생한지 250주년이 되는 해다. 

1768년 11월 21일 독일 브레슬라우(현재, 폴란드 영토)에서 개혁교회 목사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슐라어마허 (F. Schleiermacher, 1768.11.21-1834.2.12} 는 

500년 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이래로 또 한 번 기독교 신앙의 혁명을 일으킨 ‘근(현) 대 개신교 신학의 아버지' 다. 

이번호에서는 21세기 제4차산업혁명 시대에 18세기 신앙의 혁명을 일으킨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탐색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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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의 명암

우리는 지금 초지능혁명 시대인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1) 하나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생생히 접할 수 있게 되었다. 

<1) 1차산업혁명(1750-1830) : 증기혁명, 2차산업혁명(1870-1980) : 전기혁명, 3차산업혁명(1969-2014) : 지식정보(IT)혁명> 

유투브, 페이스북, 구글 등은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언제든 꺼낼 수 있는 ‘무한 빅데이터 창고’다. 

사람이 아닌, 시물과 사물이 연결되는 사물인터넷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독일의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밥은 처음으로 ‘4차산업혁명’ 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4차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을 융합하여 

‘초연결성’ , ‘초지능성’ 을 지향하 는 새로운 산업패러다임이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자율주행자동차, 클라우드, 3D프린팅, 가상현실, 공유경제, 

블록체인, 바이오 기술, 스마트 가전기기, 스마트 홈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인간 삶의 향상을 위해 추진된 4차산업혁명이 인류에게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 한다.  

인간의 삶과 생계수단의 변혁을 위해 만든 로봇, 지율주행차, 드론, 가상현실과 같은 미래 산업이 

향 후 인간에게 큰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인간을 위해 만든 인공지능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인간 삶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빅컴퓨팅 기술로 전지전능에 가까운' 빅휴먼’ 이 등장하게 되면, 

인간은 이 신 같은 ‘수퍼맨’ 을 하나님 대신 의지하며 살게 될 것이다. 

또한 '빅휴먼’ 이 널리 퍼 지면서 자신이 ‘신’ 이라고 착각하는 이도 많이 나타날 것이다. 

교회도 달라져서 , 다른 나라로 선교사를 파견히는 대신 케이블 TV와 온라인 동영상으로 선교하게 될 것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더 이상 하나님께 "잘 살게 해달라” 는 기도를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로봇,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연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하나님이 필요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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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라이어마허의 신앙혁명 

250년 전 이와 유사한 문제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준 이가 있다. 

바로 베를린대학의 신학자이자 삼위일체교회 목사였던 슐라이어마허다. 

그는 당시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들을 향해 하나님을 감정안에서 직접 느끼고 경험할 것을 호소하였다. 

하나님은 ‘이성과 행위’ 가 아닌, ‘직관과 감정’ 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과학 및 계몽주의와 함께 시작된 18세기 사람들은 하나님을 머리로 이해하려 하였다. 

베를린의 교양인들은 예배의 자리보다는 카페의 토론자리를 즐겼다. 

슐라이어마허는 과학적 사고와 역사적 상대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교양인들’에게 

종교의 본질은 ‘이성'과 '도덕'이 아닌 '직관과 감정'임을 설파하였다.

'직관'이란 하나님을 직접 ‘의식하는것'이다. 즉 하나님을 ‘감정’ 안에서 ‘느끼는 것’ 이다. 

신앙이란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절대의존의 감정'이다. 완전한 하나님 의식인

'절대의존감정’ 은 근원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 

때문에 슐라이어마허는 기독교야말로 ,'종교들 중의 종교’ 라고 역설한다. 

그의 감정의 신학? 은 근대 프로데스탄트 신학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들에게는 ‘신앙의 혁명’ 이 되었다. 

‘절대의존감정’ 으로 알파고 이기기 

1차 산업혁명시대의 슐라이어마허의 ‘감정의 신학은 250년이 지난 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혁명적이다. 

사물과 기계로부터 침탈당하는 인간의 고유영역을 ‘절대의존감정’ 으로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의존감정’ 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제어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빅데이터가 아닌, 인간의 ‘직관과 감정’ 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종교경험은 컴퓨터나 로봇이 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그래서 슐라이어마허는 기독교의 본질이 ‘절대의존 감정’ 이라고 확신한다. 

절대의존감정의 영성을 지닌 인간은 더 이상 사물과 기계를 통해 자신을 강화하려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의존감정을 통해 자신을 강화시킨다. 

절대의존감정을 통해 하나님과 융합한 사람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의 초지능, 초연결성에 소외 되지 않는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인간들은 빅데이터 외에 어느 것도 믿으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의 초월성을 믿지 않는다. 이 시대에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 ,

곧 ‘절대의존감정’ 이다. 바둑의 제왕 이세돌을 이긴 인공지능 알파고는 절대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 

하나님은 빅데이터를 초월해 계신분이기 때문이다. 알파고 또한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의촌감정’ 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