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가르쳐 지키고 전하는 ‘전도부인’

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가르쳐 지키고 전하는 ‘전도부인’

김명희 (동행 편집위원)

  • 등록 2018.12.01 18:11
  • 조회수 107

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가르쳐 지키고 전하는 ‘전도부인’

글 | 김명희 (동행 편집위원) 



201812-08a.jpg

어느 덧 2018년 한 해도 저물어간다. 

올 한 해 우리교회 표어는 『가르쳐 지키고 전하는 교회』(마 28:19~20)였다. 

새해 첫 설교에서 고일호 담임목사님은 영은의 모든 성도가 2018년 한 해 동안

 ‘말씀에 관심을 갖고 ‘가르쳐 지키고 전하는 교회’ 가 되어야 할 것을 권면했다. 

한국교회 부흥의 주역 ‘전도부인’ 

한국 기독교 초기 역사에도 까르쳐 지키고 전하는 전도자들이 있었다.

바로 '전도부인'들이다.이들은 한국교회의 실질적인 첫 여성 지도자들이자 한국교회

부흥의 주역들이다. 하지만 남성 중심의 교회 구조로 인해서 ‘전도부인’ 에 대한 기록은 미미하다.

다행히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여성사연구팀의 수고로 ‘전도부인’ 의 교회사적 업적이 

빛을 보게 되었다. 1999년 연구팀이 발표한 『한국교회 전도부인 자료집』에서 전도부인은 한국교회의

실질적 첫 여성 지도자들이자 기독교의 한국토착화의 주역이라고 소개한다. 

당시 전도부인의 총수는 1,215명으로, 감리교 717명, 장로교 209명, 성결교 138명, 교단 미상 151명이다. 

전도부인이 생겨난 것은 1890년대 이후다. 

초기 여선교사로 한국에 온 감리교 스크랜톤 여사는 1892년 지방을 순회하며 전도사업에 주력했다. 

장로교 여선교사들도 부산, 공주, 평양 등에서 전도를 하였다. 

하지만 이들 여선교사들에게는 한국의 낯선 언어와 문화, 풍습으로 인해 복음 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특히 이방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려하는 한국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이들을 도와 준 사람이 전도부인이다. 전도부인들은 서양 선교사들을 대신해 ‘안방전도’ 에 성공했다.

 

 

201812-08b.jpg

바이블우먼 & 전도부인 

‘전도부인’ 은 복음을 전하는 기혼 여성’ 이라는 뜻이지만, 

외국 선교사들은 ‘전도부인' 을 바이블우먼(Bible Women, 성경여성)’ 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전도부인이 전도뿐 아니라, 성경을 판매하는 일도 했기 때문이다. 

선교부 보고서에 따르면, 곽씨라는 전도부인은 한 해 동안 297명을 방문했으며, 

병원에서 1,652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도르가라는 전도부인은 한 해 동안 369권의 복음서를 팔았고, 2,540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한나 라는 전도부인도 한 해에 426개 의 복음서를 팔았으며, 3천여 명의 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세지라는 전도부인 또한 한 해 동안에 1,481명을 방문하고 복음서 236권을 팔았다. 

전도부인은 '바이블우먼' 이었다. 전도도 하면서 성경도 팔았다. 

무즈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보배'’ 라고 부른 전도부인은 5년 동안 전도부인의 일을 하면서 6,730명의 여성을 방문했고, 

그들에게 개인적인 구원에 대해서 말했으며, 성경을 4,491권이나 팔았다. 

그 외에도 기독교적 가르침을 포함한 1,500개의 달력과 소책자들을 팔았다. 

매일 아침 그녀는 그 날에 팔 책들을 가져다가 천으로 싸서 허리 주위에 차고 이집 저집 팔기도 하고, 

간단한 성경 이야기도 들려주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무지한 자들에게는 읽는법을가르치며,듣기를원하는지들에게는읽어주고,노래를 불러 주기도 했다.”

 전도부인들은 선교사들이 가지 못하는 시골이나 깊은 산간벽지 등을 마다하지 않고 

하루에도 수십 수 백리를 걸어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이들의 헌신적 전도의 열정은 선교시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한국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201812-08c.jpg

전도부인의 성경교육 

전도부인들은 전도와 성경 판매 이외에도 주일학교 관리와 교사 일도 맡았다. 

뿐만 아니라 장기 결석자를 심방하고, 목사를 돕기도 했다. 

여성성경반을 운영하며 가르쳤으며, 좌담회를 이끌기도 했다. 

또한 새벽기도 모임을 인도하였으며, 잘 훈련된 전도부인들은 다른 교회의 사경회에 초청되기도 했다.  

전도부인들의 교회에서의 역할이 커지자 선교사들은 전도부인들의 교육에 역점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많은 여성성경학교들이 곳곳에 세워졌다. 

장로교의 경우 1897년 단기성경학원을 시작으로 1907년에는 여교역자 훈련원을 세워 106명의 학생이 입학 했으며, 

1910년에는 여자성경학원으로 발전했다. 

감리교는 1906년 원산의 보혜여자성경학원을 비롯해 개성(1909), 춘천(1918), 평양(1915) 등 

지방 도시와 만주(1937)에까지 전도부인들을 위한 성경학교가 설립됐다. 

이렇게 시작한 성경학원은 30여 개가 되었으며, 1,600명(1918넌)이던 학생 수는 

5년 후에는 2,576명(1923년)으로 증가되었다. 

이후 고등성경학 교가 세워졌고, 1902년 9월에는 협성여자신학교가 설립되었다. 

전도부인들을 위한 교육은 ‘여성교육'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전도부인들은 여성들에게 복음을 가르쳤고, 성경을 전했으며, 말씀을 지켜냈다. 

우리교회에는 권사회가 있다. 지난 11월 18일 19명의 권사가 새롭게 세워졌다. 

권사의 직무는 ‘‘교역자들을 도와 궁핍한 자와 환란 당한 교우를 심방하고 위로’'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도부인의 직무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 성경을 가르쳐 지키고 전하는 직무가 더해진다. 

올 한해 권사 63명이 성경 157독을 했다고 한다. 

권사의 직무를 잘 감당하기 위해서 성경 읽기가 우선 되어야 한다는 권사회는 매년 성경 통독을 실행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부흥을 다시 일으킬 ‘전도부인들’이 영은교회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