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지작된 새벽기도회

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지작된 새벽기도회

김명희 (동행 편집위원)

  • 등록 2018.04.0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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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지작된 새벽기도회


글 | 김명희 (동행 편집위원) 


우리교회에서는 팅, 가을 일 년에 두 차례 일주간 전교인 특별새벽기도회를 갖는다.

이번에도 3월26일(월)부터 31일(토)까지 전교인 특별새벽기도회가 진행됐다.

'예수 그리스도로 리필하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믿음,소망,사랑,기도,사명,성령'으로 성도들의 '영적 밧데리'를 ‘리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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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선주 장로가 시작한 새벽기도

한국교회의 특징 중 하나가 ‘새벽기도'다. 180여 년전 서양선교사들에 의해 한반도에 전해진 기독교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중심 종교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새벽기도의 힘이 컸다. 

한국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된 새벽기도는 1906넌 가을 길선주 목사에 의해 시작됐다. 

당시 평양 장대현교회 장로였던 길선주는 친구 박치록 장로와 함께 약 2개월간 매일 새벽 4시에 교회에서 기도했다.

평양시 교인들의 냉랭한 신앙을 일깨우려 시작한 새벽기도였다. 이들의 새벽기도회는 최초의 '공동새벽기도회’ 가 되었다. 

길선주와 박치록 장로가 새벽기도를 시작하자 소문을 들은 교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길선주는 처음엔 어느 누구에게도 새벽기도모임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둘의 새벽기도가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게 됐고, 

매일 새벽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모임에 동참하게 됐다. 교회에 그와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길선주 장로는 당회의 허락을 받아 정식으로 주일 오전 예배 때 새벽기도회 광고를 했다. 

그는 새벽기도 참여자들을 위해 매일 새벽 4시 3아본에 교회 종을 치겠다고 알렸다. 

그러자 다음날 새벽 1시부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새벽 2시에는 수 백명이 예배당에 앉아 있었다. 

4시 30분에 길선주 장로가 교회 종을 치자, 4~5백 명의 성도들이 몰려들었다. 다음 날은 6~7백 명이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새벽기도회가 시작된 지 나홀째 되던 날, 기도 중 전 회중이 갑자기 자신들의 신앙의 무관심과 냉랭함, 

사역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결여에 대해 죄를 통회하기 시작했다. 

이 후 성도들은 사죄의 기쁨과 함께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강한 열정을 갖게 됐다. 

그리고 새벽기도를 통해 은혜받은 성도들은 다음 날거리로 나가 불신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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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교회 성도가 함께 모여 드리는 ‘새벽기도’는 이렇게 시작됐다. 장대현교회의 새벽기도는 이후 ‘새벽기도회’ 혹은 ‘새벽기도모임’ 으로 이름이 정착됐다. 

한국교회의 부흥을 일으킨 장대현교회 새벽기도 

1906년 가을부터 시작된 길선주 장로의 새벽기도회는 이듬해 1월 2일부터 15일까지 있었던 장대현교회 겨울사경회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사경회는 평양대부흥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14일간 열린 사경회에는 2천여명이 모여 말씀과 기도, 성령체험을 했다. 

사경회 여섯째 날에는 길선주 장로의 회개를 필두로 모두가 통곡하며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고, 

사도행전의 오순절 다락방 체험과 같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경험하게 됐다. 장대현교회 사경회는 한국교회 부흥의 촉진제가 됐고, 

이 시기를 전후하여 한국 교회는 3배 증가하게 됐다. 통성기도는 웨일스 부흥 운동에서 시작된 기도방식이었지만. 

장대현교회 사경회와 평양대부홍은동을 계기로 한국교회의 기도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됐다. 

길선주는 1907년 1월 사경회가 있은 지 육 개월 후 목사안수를 받고 장대현교회 목사가 되어 20년간 시무했다. 

그가 발의해 실시된 새벽기도회는 교회의 공식적인 집회로 정착하면서,한국교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특징이 되었다. 

길선주목사는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교인들의 배척으로 장대현교회를 사임하고 이항리교회를 창립하여 목회하면서 

전국교회를 다니면서 부흥사경회를 인도하기도 했다. 길 목사는 33인의 한 명이 되어 〈독립선언서〉에 서명했으며, 그 때문에 옥고를 치렀다. 

한국교회의 새벽기도는 길선주 목사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미국 선교사 존스톤(1860~1936) 목사의 영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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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가을 장대현교회를 방문한 존스톤 목사가 장대현교회에 전해준 웨일즈와 인도의 부흥에 관한 보고서가 

장대현교회의 새벽기도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본다. 확실한 것은 웨일즈와 인도의 교회 부흥에 교인들의 매일기도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평양의 중심교회였던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새벽기도가 한국교회의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도 대한민국 곳곳에서는 새벽마다 눈 물 홀리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다. 

새벽을 깨우려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 ‘전교인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