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어머니의 눈물

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어머니의 눈물

김명희 (동행 편집위원)

  • 등록 2018.05.0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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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어머니의 눈물 

글 | 김명희 (동행 편집위원)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아우구스 티누스(354~430, 혹은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증세 기독교 신학의 아버지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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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탕아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11월 13일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의 소도시 타가스데(오늘날 알 제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모니카는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 으나, 아버지 파트리키우스는 이교도였다.

훗날 모니카는 난폭하고 부도덕한 이교도 남편을 그녀의 헌신과 기도로 세례를 받게 했다. 

모니카는 아들 아우구스티누스를 임신했을 때도 태안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 것을 서원하며 기도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아들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방탕아로 자랐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릴 때 공부하기를 무척 싫어하고 놀기를 좋아해 학교 선생님에게 매도 많이 맞았다. 

뿐만 아니라 도둑질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트럼프놀이도 즐겨하는문제아였다. 

어머니 모니카는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속이 타 들어 갔다. 청년이 된 아우구스티누스는 더 많이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청운의 꿈을 안고 카르타고 (지금의 튀니지)로 유학을 갔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곳에서 더욱 더 방탕아가 되었다. 

카르타고는 이교 사상과 기독교, 상인과 군인, 옛 것과 새 것이 서로 뒤섞여 있었고, 

로마의 교통중심지로서 세상사람들로 붐비는 곳 이었다. 

이 도시 사람들에게는물질주의와 감각적 쾌락, 그리고 오락이 삶의 최고 목표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카르타고의 감각적 향락에 빠져 살았고, 

오랜 동안 젊은 여자와 동거하며 아들을 낳기까지 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성적 방탕과 육체적 쾌락의 근원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단 마니교에 10년간 몸 담기도 했다.

'나를 가쁘게 한 것은 오직 ‘사랑을 주고받는 것 , 그것 뿐이었습니다. 

육체의 허황된 정욕의 물거품 같은 젊음의 환락에 사로잡혀 어두운 안개 속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노여움이 내게 이르렀으나 나는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점점 주님으로부터 멀어졌고 주님은 나를 내버려두었습니다. 

나는 내팽개 쳐지고 버려져서, 간음으로 정욕을 불태우고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고백록 2권) 그렇다. 16살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오직 육신의 정욕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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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육체적 타락과 신앙적 타락의 끝자락에 있었던 아우구스티누스를 하냐님은 버려두지 않았다. 

주님은 기도의 어머니를 통해 그에게 말씀 하곤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행실을 잘 가져야 한다. 

여자와 함부로 간음해서는 안 되며 특히 유부녀와 간통을 해서는 안 된다 고 충고했다. 

그러나 아들은 그 충고가 주님의 말씀이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주님께서는 일체 말씀이 없으시고, 다만 이야기하는 것은 어머니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침묵하지 않으셨고, 어머니를 통해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젊은 나는 어머니를 무시함으로써 주님을 무시했습니다.'’ (고백록 2권) 

주님은 잘못 된 길을 가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바라보며, 어머니를 통해 끊임 없이 설득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무시했고, 더 악덕을 행했다.

훗날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있었던것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와 아들의 회심 

당신의 충실한 여종인 나의 어머니가, 세상의 어머니들이 축은 자식을 위해 우는 것보다 슬피 울면서, 

나를 위한 애절한 마음으로 당신에게 기도를 했을 때, 주님은 높은 곳으로부터 거룩한 손길을 뻗치시어 이 어두운 구렁텅이에서 내 영혼을 구해주셨습니다. 

주여! 당신은 어머니의 소원을 받아들여, 어머니가 넘쳐흐르는 눈물로 땅을 적셨을 때, 그 눈물을 소홀히 여기지 않으셨습니다."(고백록 3권) 

주님은 죽은 자식을 위해 우는 어머니보다 더 애절히 울면서 기도하는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네가 기독교인되는 것을 볼 줄로 믿는다"며 평생 기도한 어머니의 소원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 찾아간 밀라노에서 회심의 순간을 맞이했다.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집어 읽어라!" (Tolle, lege!)란 어린 아이의 노랫소리를 듣고, 

손에 들고 있던 성경을 펼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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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낮에 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 13-14)는 주님의 말씀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신 표적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세례를 받기로 결심했다. 

그는 387년 부활주일 암브로시우스 주교에게 세례를 받고 수도자가 되었다. 마침내 어머니의 기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쁜 소식을 전하려 고향의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세상에 없었다. 

평생 아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간절히 기도했던 어머니는 사제가 된 아들을 보지 못하고 주님 곁으로 갔다. 

비록 어머니의 육신은 아들을 떠났지만, 어머니가 기도하며 쏟은 눈물은 아들이 사제로서 

교회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마르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의 꽃은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 위에서 만개했다. ‘오직 은총’의 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