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나를 따르라” 디트리히 본회퍼

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나를 따르라” 디트리히 본회퍼

김명희 (동행 편집위원)

  • 등록 2018.06.0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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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나를 따르라”   디트리히 본회퍼 

글 | 김명희 (동행 편집위원) 

우리교회에서는 5월 13일 주일 오후친양예배 후 공동의회가 있었다. 

875명의 성도들이 참여한 공동 의회에서는 장로 5명, 안수집사 9명, 권사 19명, 총 33명의 항존직분자들이 선출되었다. 

교회를 위해 헌신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행동하는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생애를 통해 성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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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 저항하다 

디트리 히 본회 퍼 (Dietrich Bonhoeffer, 1906-1945)는 

1904년 2월 4일, 독일 브레슬라우(현재,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명문가정 출신의 본회퍼는 8살 되던 무렵 가족을 따라 베를린으로 이사를 갔다. 그는 그곳에서 학교교육을 마쳤다. 

1927년에는 베를린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30년에는 「행위와 촌재」라는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얻었다. 

같은 해 본회퍼는 미국으로 건너가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을연구하였다. 그때 뉴욕

의 할렘가에 있는 흑인 빈민들의 삶의 문제에 관심 을 갖게 되었고, 매 주일 흑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1931년 고향을 찾은 본회퍼는 2년간 베를린 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교목으로 사역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사건을 맞게 됐다. 

1933년 2월 1일 아침, 본회퍼는 베를린 방송을 통해 독일의 총통이 된 히틀러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연설했다. 

그러나 연설 도중 갑자기 방송이 중단되고 말았다. 두 달 후인 4월 7일 독일전역에 아리안법이 제정되어 반포됐다. 

그것은 유대인 혈통을 배격하고, 유대인과 결혼한 독일인들의 공직을 박탈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됐다. 

독일 개신교회(게르만교회)는 이 법을 수용했고, 베를린대학교의 교수들은 이 법에 대해 침묵했다. 

이에 실망 한 본회퍼는 1933년 교수직을 포기하고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목회를 하면서, 

히틀러에 반대하여 설립된 고백교회를 위해 활동했다. 

고백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복종의 대상이요, 하냐님의 계시’ 라는 내용의 

〈바르덴 선언〉을 통해 히틀러에 대한 불복종을 선언했다. 

1935년 런던에서 돌아온 본회퍼는 1939넌까지 독일 핑켄발트에 있는 고백교회 신학교의 책임자로 봉사했다. 

신학교가 비밀경찰국장 힘믈러에 의해 폐쇄되자, 본회퍼는 그해 6월에 다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독일 피난민들을 위해 봉사하다 7월에 귀국 해 집단목회 훈련원의 책임자가 됐다. 

본회퍼는 1940년 매형 도흐나니를 통해 히틀러 암살모의에 참여했다. 

그러나 암살모의가 발각되어 1943년 4월 5일 베를린에서 비밀경찰에게 체포되어 테겔 군 형무소에 수감됐다. 

18개월 동안 데겔 형무소에 있으면서 쓴 서신들은 그가 사형당한 후 『저항과 복종』이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본회퍼는 2년여간 수용소 생활 끝에 플로쎈부르크 집단 수용소로 이송되어, 

1945년 4월 9일 이른 아침 교수형을 받았다. 3주일 후 히틀러는 자살하였고, 1945년 5월 8일 독일은 패배하였다. 

본회퍼가 처형된 같은 날 매형 도호나니가 작센하우젠에서, 형 클라우스는 4월 23일 베를린에서 처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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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따르다 

1934년경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 는 것과 그의 ‘제자가 된다' 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씨름했다. 

그 답은 예수의 산상설교에 있었다. 그는 나치정권에 맞서기 위해서 산상설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하다고 확신했다.

본회퍼는 고백교회의 공동체와 베를린대학에서 산상설교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뒤따름' 관해 열심히 강의했다. 

그의 강의는 학생들 사이에서 놀라운 반응을 일으켰다. 

1937년 국가경찰이 핑켄발트의 고백교회 공동체를 폐쇄했을 때, 

그의 원고는 이미 출판사로 넘어가 『나를 따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배포되기 시작했다. 

본회퍼가 발견한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름은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신 그분의 뒤를 따르는 것을 의미했다. 

본회퍼에게 신앙은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뒤를 따름 이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름이 없는 신앙은 불완전한 믿음이요 불신앙이다. 

본회퍼는 만일 베드로가 나를 따르라’는주님의 명령을 듣고 그의 뒤를 따르지 않았다면, 

그는불신앙인이 되었을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뒤를 따름이 없는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라고 선언한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의 것을 포기해야 한다. 

세리는 세관을 버리고, 베드로는 고기잡이 그물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뒤 따른 것처럼 세상의 것을 버려야 한다. 

부르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는 ‘나를 따르라, 내 뒤를 따르라!” 고 말할 뿐이다. 

따름의 대가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는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완전히 내용이 없다. 

어떤 목적과 이득이 있어서 예수를 따르는 게 아니다. '뒤따름.’ 은 의미심장하게 실현될 것처럼 보이는 인생 프로그램이 아니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표와 이상이 전혀 아니다. 뒤따름은 인간의 생각에 그 어떤 것이나, 

심지어 자기 자신을 바칠 가치가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예수에게서 부름을 받은 제자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다. 

그들이 특별히 가치가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따른 것이 아니라, 단지 부름에 응답하려고 세상의 것을 포기하고 순종하며 따른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예수를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하나님의 참 은혜를 받았다면 ‘그리스도의 뒤따름 이 있어야한다고 역설한다.

지난 5월 13일 33명의 항존직분자가 선출됐다. '세상의 것을 포기하고 나를 따르라' 는 단순한 그리스도의 부름에 순종하며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