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
글 | 정유근목사
기도에는 감사 기도, 회개 기도, 간구의 기도, 찬양의 기도, 목상의 기도, 침묵 기도 등 여러 형태가 있으나
이 모든 유형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고상한 기도의 형태는 중'보기도’ 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보기도는 가장 구체적인 이웃사랑 실천의 장이요 하나님 나라 사역의 가장 권세 있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신학자요 순교자인 본 훼퍼는
"중보기도란 개인과 공동체가 날마다 스스로를 정화하기 위하여 반드시 해야할목욕과같은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인사처럼 하지만, 인사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인사말처럼 변해버렸습니다.
‘기도부탁한다' 해 놓고선 부탁 한 사람도, 부탁받은 사람도 기도 안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이것이 한국 교회의 중보기도 현주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교회적으로도 중보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중보기도의 자리로 부르고 계심을 강하게 느낍니다.
이러한 시점에 나의 하루 24시간 중 기도의 시간 전체를 합하면 얼마나 되는지?
그 중 나 자신만을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아닌 중보기도의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잠시 돌아볼수 있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여러 중보기도 모습으로 가득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직전,
한 민족과 한 도시민들의 운명을 붙들고 기도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와 르비딤에서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기도의 팔을 올려 승리했던 모세의 중보기도와
요한복음17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위대한 중보 기도, 그리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위해 사람들이 간구했던 중보기도와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한 예루살렘 교인들의 중보기도,
그리고 바울을 비롯한 사역자들을 위한 초대교회 교인들의 중보기도 등
수 많은 중보기도와 응답들을 기록하며 우리를 중보기도의 자리로 부르고 있습니다.
나 자신의 문제도 해결 못하고,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던 우리가 주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이제는 주님과 이웃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요, 구원 받은 자의 특권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교회가 함께 중보기도할 때에 소극적으로는 낙심과 절망의 옥문을 여는 것이라면,
적극적으로는 은혜와 축복의 하늘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보기도는 베드로를 묶고 있던 쇠사슬과 옥문도 열고,
엘리야 시절 3년 6개월 동안 굳게 닫혔던 하늘의 문도 열게 하며 하늘은 비를 내리고,
땅은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고 성경은 역설하며
지금도 부족한 우리의 중보기도에도 하늘의 문이 열리고, 닫혔던 옥문이 열리며, 병든 자를 고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질 것입니다.
9월 한 달도 나를 넘어선 중보기도(가족과 가까운 이웃의 구원/교회와
투병중인 담임 목사님/한국교회와 나라와 민족/북 한 동포들과 소외된 이웃/
선교사와 세계 열방/하나님 나라와 땅에 떨어진 하나님의 영광)를 통하여 하늘의 능력을 힘입고 살아가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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