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츠빙글리, 사제가 되다

특집

소년 츠빙글리, 사제가 되다

스위스 종교개혁2

글: 김명희 기자

  • 등록 2023.02.2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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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 2023.2.4360높이.jpg스위스 종교개혁의 주역 울리히 츠빙글리(1484~1531)148411일에 스위스 빌트하우스에서 7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루터보다 7주 늦게 태어난 츠빙글리는 아버지가 광부였던 루터와는 달리, 마을의 지도적 가문 출신의 자손이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마을 촌장이었고, 외삼촌은 사제였으며, 친삼촌은 베센 지방의 참사회장이었다.


고향 빌트하우스는 스위스의 알프스 절경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이곳 거주민들은 목축업에 종사했으며, 명랑하고, 생기있고, 활동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가, 어릴 때부터 우울증을 앓던 루터와는 달리 츠빙글리는 건강하고 원기 왕성한 소년으로 자랐다. 그는 삼촌에게서 가톨릭 교육을 받았고, 부모에게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깊은 신앙을 물려받았다.

 

츠빙글리는 10살 때부터 바젤의 라틴어 학당에서 라틴어 문법, 음악, 변증법을 배우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1498년 베른 대학에 진학했고, 1500년부터 1502년까지는 빈 대학교에서 공부하며 인문학에 열중했다. 츠빙글리는 음악적 재능도 다양했다. 류트뿐 아니라, 하프, 바이올린, 플루트, 덜시머, 수렵용 나팔 등의 악기를 수준급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루터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1506, 그는 바젤에서 인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러나 루터와 같이 신학박사는 되지 못했다.

 

가톨릭 사제가 된 츠빙글리는 1506년에서 1516년까지 10년간 글라루스에서 목회하며 신학연구에 전념했다. 그는 성경을 원문으로 읽기 위해 혼자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그 외에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들, 시인들, 웅변가들, 역사가들의 글을 집중해 읽었다. 그는 이교도 철학자들과 시인들의 고상한 사상들을 탐독하며 그 속에서도 성령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츠빙글리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은 에라스무스였다. 츠빙글리는 에라스무스를 직접 만나서 그를 가장 위대한 철학자요 신학자라고 칭하며, 그의 무한한 학식에 경의를 표했다. 츠빙글리가 이교도의 고전을 높이 평가하고, 교회의 폐해를 비판하며, 성경 연구에 헌신하게 된 것은 에라스무스의 영향이 크다. 글라루스에서 그는 인문주의자이자 애국자로서 저명하고 영향력 있는 공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또한, 루터처럼 종교개혁을 위해 격렬한 투쟁이나 극도의 위기를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부지런히 연구하고 탐구하여 진리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였다. 1516년 츠빙글리는 글라루스를 떠나 아인지델른으로 사역지를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성서연구에 매진하며,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고, 성모 마리아보다는 그리스도를 예배하라고 가르쳤다. 교황제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러나 그가 개혁자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곳은 다음 목회지인 취리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