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첫 성경학자 오리게네스
글 | 김명희 (동행 편집위원)
2018넌 우리교회의 표어는 「가르쳐 지키고 전하는 교회」(마28:19~20)다.
고일호 담임 목사님은 새해 첫 예배 설교에서 영은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을 권면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고 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말씀에 대한 관심’ 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심이란 곧 사랑이다.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는 성경공부를 하려하고, 성경도 읽으려 하며, 또 그 말씀을 전하려 한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이라는게 설교의 메시지다.
올 한 해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말씀 가르치기’ , ‘실천하기' , ‘전하기’ 의 세 가지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성경을 가르치고 지키고 전했던 오리게네스
초기 기독교 역사에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고 전해야 할 것을 주장한사람이 있었다.
바로 로마 박해 시대에 교회의 아버지(敎父)로 불렸던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년)다.
알렉산드리아 학피를 대표하는 기독교의 교부 오리게네스는 사도 바울 이후 성경 말씀을 학문적 체계를 가지고 가르쳐 지키고 전한 최초의 사람이다.
그의 독창적인 신학체계는 당시 이단논쟁에 맞서 기독교 신학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 기독교신앙의 핵심이 되는 삼위일체론도 오리게네스에게서 출발하며, 성경의 우의적 해석도 그가 시작한 작업이다.
또한 헬레니즘의 이방문화에 그리스도교를 접목시킨 사람도 오리게네스다.
그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시작한 기독교가 세계의 종교가 됐을까 하는 의구심이들 정도다.
오리게네스는 신학자이자 성서학자로서 기독교 신학의 학문적 체계를 세운 교부이자,
평생 이교도들에게 기독교를 알리고 가르치는 일에 헌신한 교육자다.
「가르쳐 지키고 전하는 교회」란 교회의 표어를 1800년 전 오리게네스가 주창 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하다.
박해 속에서도 말씀을 가르치다
오리게네스는 185년경 로마의 기독교 박해 시대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칠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오리게네스의 아버지는 그가 17살 되던 해에 황제 세베루스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에 못 이겨 모진 고문 끝에 순교했다.
아버지의 순교를 지켜 본 오리게네스는 평생 순교자의 아들로서 신앙을 지키며 살았고, 자신도 박해의 심한 고문 끝에 6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오리게네스는 아버지의 공개 처형 후 가족의 재산도 몰 수 당하는 비운을 맞게 됐다. 장남인 그는 어머니와 기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17살에 이미 문법에 두각을 나타내 사설 문법학교를설립했고, 18살에는 교리문답학교의 교장이 됐다.
세베루스황제의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자,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그들의 사명을 저버리고 배교의 길을 갔다.
하지만 오리 게네스는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끗끗이 가르쳤다.
박해가 끝나자 알렉산드리아에서 본격적으로 신앙교육을 시작했다.
그는 성경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전념하고자, 생계수단이었던 문법학교를 폐쇄하고, 교리문답학교를 설립했다.
그리고 독신, 금식, 기도, 스파르타식 주거생활, 적은 수면 시간등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면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원했다.
이단들로부터 기독교를 지키다
오리게네스가 성경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에 헌신 한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당시 로마제국에는 이단들이 득세했다.
스스로 사도 바울의 후계자라고 주장하는 마르시온 (Marcion, 85~160년)은 구약의 하나님은 폭력과 보복의 신이지만,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의 신이라면서 신약과 구약의 분리를 주장했다.
또한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이자 동시에 사람이라는 기독교 신앙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리게네스는 마르시온에 대항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자비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증언해야 했다.
그리하여 그는 로고스 기독론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 곧 로고스인 하나님이 육신이 된 분)으로 이단들에 대항했으며,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의 교설을 이용해 아버지, 아들, 영의 관계를 규정했다.
독자적 실체인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는 등급과 종속관계가 있다는 그의 '종속설'은 훗날 삼위일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당대 유명한 철학자 켈수스는 178년에「 진리」란 책을 저술해 기독교인들을 이교도로 개종시키려 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하나님의 세상 창조를 부정했고, 예수의 부활도 믿지 않았다.
기독교는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황폐하게 만드는 가르침이라고 비난 했다. 또한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를 옹호했다.
켈수스는 기독교를 완전히 없애버릴 것처럼 공격했다.
오리게네스는 이교도 켈수스에 맞서 기독교를 변호하는 대작 『켈수스에 대항하여』란 책을 저술했다.
이 책에서 오리게네스는 켈수스의 기독교 공격에 대해 잘못된 점을 조목조목 논증했다.
켈수스를 반박하는 그의 글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바른성경해석과 탄탄한 신학체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리게네스는 이단과 이교도에 맞서 싸우면서 성경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는 당시 헬레니즘 문화의 주류였던 그리스 철학을 통해 성경해석을 시도한 기독교의 첫 성경학자가 되었다.
오리게네스는 인류역사를 끊임없이 위로 나아가는 웅대한 교육과정으로, 즉 인간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교육학으로 이해했다.
죄 때문에 인간 안에 파 묻힌 하나님의 모상이 하나님 자신의 섭리와 교육학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회복된다고 믿었다.
오리게네스는 인류의 역사가 하나님의 교육과정이기에 기독교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고 전할 사명이 있다고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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