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특집 : 루터를 만나자 〈3〉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특집 : 루터를 만나자 〈3〉

글 | 김명희 (동행 편집위원)

  • 등록 2017.01.0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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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마귀 때문? 


루터가 어릴 적부터 우울증환자였던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라면서 루터는 종종 말할 수 없는 우울증에 빠지곤 했는데 

이 우울증은 당시 종교의 영향 때문이었고 한다. 

루터가 태어난 독일 튀링엔지방은 종교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곳이었다. 

이 지방 사람들은 폭우, 홍수, 전염병, 인간이 죄를 짓고, 

인간이 우울증에 걸리는 것 모두가 악령의 짓이라고 믿었다. 

루터 또한 잡신 들이 계란, 우유, 버터까지 홈친다는 

어머니의 말을 굳게 믿곤 했다. 

그는 “사방에 마귀들이 득실거린다.'’ 고 말할 정도였다. 

당시 가정도 학교도 교회도 수도원도 

마귀와 귀신과의 씨움에 집중해 있었다. 

인간의 병도 마귀의 짓이라고 믿었기에 수도원 곁에는 

저녁 기도회 종소리를 들으며 병 낫기를 바라는 병자들로 붐비곤 했다. 

루터는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실제로 빠져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기까지했다. 


두려움의 도피처가 된 수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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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와 귀신, 악령에 대한 루터의 공포심은 

에어푸르트 대학교 시절에도, 

수도사가 된 다음에도 이어졌다. 

당시 교회는 활활 타오르는 지옥을 말하며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야 사람들이 교회의 성례들에 

열심히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 겁에 질려 있으면 

진정제로 연옥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 덕에 면죄부 수익도 올릴 수 있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인간을 벌하는 무서운 ‘심판관으로 묘사됐다. 

그런 심판자 하나님께 구원 받는 길은 인간의 행위’ 에 달려 있었다.

하나님은 루터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루터는 1505년 7월 벼락에 맞아 땅에 나됭굴었을 때, 

가장 먼저 '무시무시한 하나님’ , '가차 없는 그리스도’ , 

‘지옥으로 인도하는 마귀들’을 떠올렸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 루터는 수도사가 되기로 서원했고, 

2주 후 에어푸르트 대학 옆 아우구스티누스 은자수도원에 입회했다.

수도원은 마귀와 두려움의 피난처였고, 

수도원생활은 하늘나라로 통하는 지름길처럼 보였다.  

루터가 입회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은 규칙이 엄격했고, 

계율을 철저히 지켰다. 

루터는 계율을 엄격하게 지킬수록 

하나님에게 더 인정 받을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심판자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었다.

1507년 4월 3일 에어푸르트에 있는 성 마리아 대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루터는 5월 2일 첫 미사를 집전했다. 

성만찬 미사에서 루터는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떨칠 수 없었다. 

"나는 티끌, 잿가루, 죄투성이 입니다.”

피조물이자 불완전한 촌재라는 의식이 루터를 괴롭혔다. 

그는 하나님께 다가가는 듯했지만, 

동시에 하나 님으로부터 배척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떻게 하찮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있을까7', 

‘‘어떻게 죄인이 감히 하늘의 거룩한 하나님을 대할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무서운 심판자 하나님을 

어떻게 가까이 할 수 있을지 루터는 고뇌했다.  


시험을 통해 만나주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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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가 시험으로 고통당할 때 

고해 신부였던 슈타 우피츠가 한 말이 떠올랐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리스도를 바라보라!” 

루터는 성경 속에서 숨어계신 하나님을 발견했다. 

그 하나님은 심판자가 아닌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었다.

죄인인 인간을 위해 자기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은혜의 하나님이었다. 

수도원규칙을 어겨도, 잘못된 행위를 해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믿기만 하면 

구원해 주시는은총의 하나님이었다. 

고난의 십자가 처럼 시험과 환난은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였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부르짖었을 때 

실제로 하나님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계셨다. 

하나님께서 멀리 떨어져 계실수록 

인간은 하나님의 특별한 접근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루터는 비로소 깨달았다. 

역설의 신비였다. 

시험과 환난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은 인간에게 더 가까이 오셨다. 

시험의 고통 속에서 루터를 구해준 것은 

수도원도, 계율 준수도, 고해성사도 아닌, 오직 성경말씀이었다. 

루터는 시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독일어 ‘안페히퉁(Anfechtung, 시험)’ 은 훗날 루터의 십자가신학의 중심개념이 됐다.


시험극복의 책, 시편  


루터 당시 성경은 아무나 읽을 수 없었다. 

수도원이나 대학에서도 성경은 덮어져 있었고, 성경강의도 없었다. 

루터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도 성경을 보지 못했다. 

에어푸르트 대학을 졸업할 때에야 

비로소 대학 도서관에서 성경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시험을 극복 할 수 있었다.

1512년 신학박사 학위 후 비텐베르크대학교 성경교수가 된 루터는

오직 성경만이 시험당하는 자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특히 루터는 시편 강의를 통해 

시편을 깊이 목상 하고, 말씀을 바로 이해하면서 

시험을 극복할 수 있었다. 

처음 맞는 영적 평화였다.

‘심판자 하나님은 잘못된 신학의 가르침에서 온 것이었다. 

시험극복의 책 시편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방식이 들어있었다. 

하나님은 오직 은혜로 믿는 자를 의롭게 하신다 는 것과 

환난을 통해 성도가 안주에 빠지지 않게  하신다는 말씀이었다. 

‘‘시련이 없이는 아무도 성경, 믿음, 하나님에 대한 공포나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 번도 시험을 받아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소망의 의미를 모릅니다.” 

오랜 시험 속에서 빠져 나온 루터의 고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