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특집 : 루터를 만나자 〈5〉
말씀 묵상
글 | 김명희 (동행 편집위원)
말씀으로 돌아가기
500년 전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수도사이자 비텐베르크대학교 교수인 마르틴 루터는 로마교회와 교황을 향해 ‘‘원천으로 돌아가자(ad fontes)!”고 담대히 외쳤다.
루터에게 ‘원천’ 은 하냐님의 말씀, 곧 ‘성경’ 이었고, 말씀속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 였다. 하지만 교황은 성경에 대해서 무관심했으며,
로마의 사제들은 부패와 타락의 길에서 방황했고, 교회의 면죄부 판매는 떼돈을 버는 사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회 어디에도 그리스도는 없었다.
말씀이 아닌, 교회와 교황의 가르침만이 신앙의 척도가 되고 있었다. ‘원천’ 에서 멀어진 교회에는 십자가도 그리스도도 없었다. 누구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다.
루터는아우구스티누스수도원탑방에서 ‘‘어떻게 하면 죄인인 인간이 전능한 하나님을 만날수 있을까?' 씨름하며 고뇌했다. 마침내 그에게 답을 준 것은 ‘성경말씀'이었다.
루터는 ‘오직 말씀 (sola scriptura)'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이후 말씀묵상(meditatio)은 루터 삶의 중심이 되었다.
기도는 복종의 행동
루터는 날마다 성경을 읽기 전 골방에 들어가 무릎을꿇고,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바쳤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것을 올바로 깨닫기 위해 기도를 드렸다.할 일이 많았던 날에는 두 시간 밖에 기도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루터에게 신앙은 ‘오로지 기도' 였다. 기도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명령하셨기 때문에 하는 '복종의 행동’ 이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회롭게 하리로다."(시50:15)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마7:7)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만드는 힘이다. 기도하는 것은 성령과 하나님 말씀의 위로를 구하는 것과 다르지않다.
루터는 깊은 기도에 앞서 ‘주의 기도’ 를 드렸다.
‘주의 기도’ 는 그리스도인에게 언제나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그는 주기도문을 기도의 모델로 심았고, 기독교 기도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했다.
루터에게 주기도는 예배의 말미에 하는 기도가 아니다. 주기도는 모든 기도 앞에 선행되는 기도다.
특히 주기도문에서 중요한 것은 ‘아버지’ 라고 부르는 맨 처음 부분이다. 루터는 다음과 같이 토로 한다
“이것(아버 지)은 가장 짧은 말이지만, 모든 것을 말한다. 그때는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정으로 말한다.”
‘하나님 되심의 모든 근원은 하나님의 이름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으로 우리를 ‘믿도록 묶으시며, 그분은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분의 진정한 자녀가 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우리가 진심으로 ‘아버지’ 라고 부르는 것에 달려있다. 이 ‘아버지’ 를 부르며 시작하는 주기도는 기도 중의 기도다.
루터는 주기도 외에도 짧은 화살기도’ 도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화살기도는 우리의 일상적 활동과 연결되는 것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기도다.
루터는 화살기도를 통해 짧지만 자주, 그리고 강하게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기도속에서 하는 성령체험이 중요하다. 성령체험을 통해 성경을 바로 이해할수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터는 말씀을 읽기전에 기도를 했고, 기도를 통해 성령을 구했다.
침묵명상이 아닌 말씀묵상
루터는 매일 아침마다 기 도(oratio)와 묵상(meditatio)을 했다. 그의 묵상은 침묵명상이 아닌 성경본문을 성찰하는 말씀묵상이었다.
루터는 신비주의자들과 수도사들이 추구한 침목명상은 주관적 망상에 빠질 수 있다며 멀리했다.
그가 제시한 말씀묵상은 환상이나 신비적 경험과는 다른 것이다. 일반적인 관상(contemplatio)은 관상자로 하여금 시험(tentatio)에 빠지게 하는데,
말씀을 토대로 하는 묵상(meditatio)은 시험을 이기게 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한다. 성경구절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말씀 속에 ‘계시된 하나님’ , 즉 ‘그리스도’ 를 만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숨겨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파악할 수 없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또 갖도록 허용된 것은 오직 계시된 하나님뿐
이다. 계시된 하나님은 말씀’ 에 매여 있으며, 설교
되는 분이다. 인간은 떨씀’을통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말씀은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이자, 숨어 계신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하는 ‘장소' 다.
로마교회와 교황도, 성인과 성물도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지 못했다. 루터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오직 성경 (말씀)이었다.
일용할양식 '빵’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빵' 에 비유한다. 말씀/ 빵을 영혼이 먹을 때 힘을 얻고 크고 살찌게 된다.
인간이 날마다 빵을 먹어야 살 수 있듯이, 하나님 말씀도 날마다 읽고 목상해야 영혼이 산다. 매일 말씀과 동행하며 말씀을 일용할 영혼의 빵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루터에게 빵은 하나님의 말씀’ 이자 ‘그리스도’ 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빵, 즉 말씀/그리스도를 주셨다. 이 빵을 먹는자는 영원히 살게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빵을 먹을 때 인간이 빵과 하나가 되듯이, 말씀을 먹을 때(=묵상할 때) 인간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실재償在)가 되기 때문에, 죄인인 인간은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받아들여야만 영원히 살 수 있다.
주기도문 중 ‘우리에게 매일의 빵 을 달라는 기도가 있다. 인간은 빵을 매일 먹어야 살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만 빵을 먹는다면 생명을 잃게 된다. 루터는 이것을 깨닫고 생명의 원천인 빵 곧 말씀’ 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았다.
Copyright @2024 동행.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