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공동체를 유익하게!

Stand, 공동체를 유익하게!

<살후3:6-15>

글: 이승구 담임목사

  • 등록 2023.03.3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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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공동체의 일치와 연합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133:1)

 

새번역성경은 이 부분을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로 번역합니다. 공동체로 함께하는 것이 본래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 뜻이며, 연합하는 것 자체가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라고 강조합니다그러나 신약의 서신서를 보면 그렇지 못한 공동체의 상황을 발견합니다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 가운데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불평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

 

싫어하거든으로 번역된 단어는 자기 의지로 원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일할 기회가 있으나 이를 거부하고, 일보다는 말이 앞서는 것이 불평꾼의 특성입니다. 인간은 모두 각자의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누구에게나 힘들고 피곤한 상황이 있습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불평과 불만만 말하는 사람은 함께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부정적인 말이 쌓이면 소음을 넘어 고통이 됩니다. 이런 불평꾼은 공동체를 유익하게 세워갈 수 없습니다.

 

말썽꾼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살후3:11)이 있습니다. 이들은 두루 다니면서 쓸데없이 부산스럽습니다. 남의 일에 과도하게 관여하며 말썽을 일으킵니다. 흰 양떼 가운데 섞인 골칫덩어리 검은 양(A Black Sheep)’ 같은 존재입니다. 디오드레베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요삼1:9)

 

디오드레베는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를 소개하면서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라고 합니다. 아마도 디오드레베는 섬기기 위해 낮아지는 리더십보다 자신의 명예와 특권을 위한 리더십을 추구했던 것 같습니다. 복음과 공동체의 일치보다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요한은 그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요삼1:10)

 

디오드레베는 악한 말로 사람들을 비방하며, 자기와 생각이 다른 자를 냉대하였고,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자를 쫓아냈습니다. 으뜸이 되기를 좋아한 그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일은 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말썽꾼은 공동체를 유익하게 세워갈 수 없습니다.

 

훼방꾼

바울은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살후3:12)”고 말합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본분은 감당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남의 일을 방해하고 시끄럽게 하는 훼방꾼입니다. 느헤미야 성벽 재건 사역에도 훼방꾼이 있었습니다. 다 백성이 힘을 모아 성벽 재건 공사를 진행하자 산발랏이 그들의 사기를 꺾으려 합니다. 예루살렘의 재건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될 것을 우려한 그는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4:2)” 외칩니다. 여기서 미약한으로 번역된 단어는 사라지는’, ‘시들고 있는’, ‘소망이 없는것을 뜻합니다. 도무지 희망이 없는 민족이 어떻게 스스로 견고하게 하,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킬 수 있겠느냐며 비웃습니다. 암몬 사람이며 산발랏참모였던 도비야 또한 귀환 공동체를 조롱하며 혼란을 야기합니다. 도비야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4:3)” 합니다. 가벼운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것이라고 비방하며 산발랏과 함께 유다 사람들의 성벽 재건 공사를 방해하고자 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귀환 공동체에 위기를 야기하는 훼방꾼이었습니다.

  

 

그러면 불평꾼과 말썽꾼과 훼방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이웃공동체유익하게 세워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평꾼을 멀리하라

바울은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살후3:6),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살후3:14)“고 합니다. ‘게으르게 행하(살후3:6)’는 자는 마치 행군의 대열에서 벗어난 낙오된 병사처럼 정해진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방자하게 행동합니다.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않고, 주의 뜻을 저버리는 자들에게서 단호하게 떠나야 합니다.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오염되는 것을 예방하려면 철저하게 관계를 끊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명예와 수치를 중시하는 고대 사회에서 공동체에서 공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명예가 손상되는 부끄러운 일이었기에, 이들과 거리를 두는 태도는 잘못된 행위를 일삼는 구성원을 교정하는 효과적인 방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하는 것은 처벌과 추방보다 그를 회개시켜서 돌이키게 하는 것에 궁극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공동체에 해를 끼친 자이지만, ‘원수가 아니며 여전히 형제라는 것입니다(살후3:15). 비록 불평을 많이 하고, 일만 만들며 힘들게 하고, 훼방하더라도 원수가 아니라 형제로 여겨주는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말썽꾼에게 본이 되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을 것(살후3:7)을 권면합니다. 바울은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살후3:7)’였습니다. 무질서는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여 공동체를 해칩니다. 바울은 공동체를 유익하게 만들기 위해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는 삶을 실천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유익보다 타인을 우선에 두었습니다(살후3:8). 종교 교사로서 후원받을 권리가 있었음에도 그것을 행사하지 않고, 성도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살후3:9). 이처럼 불평꾼들에게 본이 되는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훼방꾼에 대해 낙심하지 말라

바울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3:13)”고 권면합니다. 공동체의 화평과 질서를 깨뜨리는 불평꾼, 말썽꾼, 훼방꾼 때문에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내가 선을 행함에도 불평하는 자들, 일부러 부정적인 말을 지어내는 자들, 선을 행하고자 할 때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어 낙심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 모든 의욕과 용기를 잃어버리고 지금까지 잘 해오던 선한 사역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와 이웃과 공동체를 유익하게 세워가기 위해서는 낙심하고 넘어지고 실패하였을지라도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낙심할 만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일어서야 합니다.

 

일치와 연합이 있는 공동체는 아릅답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즐거움과 다양한 유익함이 넘칩니다그런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불평만 늘어놓는 불평꾼, 일을 만들기만 하는 말썽꾼, 일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하는 그 누구가 불평꾼이고, 말썽꾼이고, 훼방꾼이라도 그들은 우리의 형제자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의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선한 수고를 다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나와 이웃과 공동체를 유익하게 세워가기 위한 우리의 몫이고 책임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수고를 통해 나와 이웃과 공동체를 온전히 세워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