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에는 ‘시인 장로님’이 계신다. 김경섭 은퇴장로님이 그 주인공이다. 내 오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로님은 교육자이자 시인이셨다. 장로님의 시는 특별한 때마다『동행』에 게재되곤 했다. 학교 국어교사이자 교회 중등부 교사였던 김경섭 장로님은 평생 교육에 몸담았던 ‘시인 교사’였다. 올해로 93살이된 장로님은 “예수 믿으면 복 받아서 장수하고 건강해요!”라며 활짝 웃는다.
■ 불교집안에서 태어나 믿음의 가정을 꾸리다
김경섭 장로님은 1931년 8월 3일 황해도 수안군 대성면 내덕리(생금촌)에서 5남매 중 3남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부모님은 불교 신자였다. 가족 모두가 불자로 살았다. 이후 장로님이 ‘믿음의 씨’가 되어, 온 가족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장로님이 예수를 믿기 시작한 건 군대에서다. 장로님은 1954년 7월, 마산 군인교회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됐다. 23년 만에 장로님 가정에 최초의 기독교 신자가 탄생한 것이다. 장로님은 “6.25가 큰 복”이라고 회고한다. 황해도가 고향인 장로님이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남쪽으로 피난 오게 됐고, 휴전 이듬해에 군대에 입대했다. 그 군대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으니 ‘큰 복’을 받은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후 장로님은 부모님과 형제들을 전도해 모두 신앙인이 되었다.
장로님은 제대 후 영서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이어갔다. 이웃 교회이자 우리 교회와 교단이 같은 영서교회는 김청달 목사님이 1956년에 영등포구 양평동 2가 409번지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창립된 교회다. 김경섭장로님은 영서교회 창립 교인이었다. 7년이 지난 1963년에 영은교회의 창립 교인이었던 김광수 장로의 모친 김재석 권사의 권유로 영은교회에 등록하게 됐다.
영서교회 김청달 목사님은 장로님에게 “믿음 좋은집의 자제와 결혼하라”고 조언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유치원 교사의 주선으로 김명화 권사를 만나게 됐다. 권사님은 아버지가 장로였고 어머니가 권사였던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분이었다. 장로님이 김명화 권사님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김청달 목사님의 말씀대로 ‘믿음 좋은 집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 것이다. 1962년 4월 3일에 장로님은 김명화 권사님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듬해에 두 분은 영은교회에 등록 교인이 됐다. 김청달 목사님도 이후 영은교회로 오셔서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생을 마치셨다.
■ 시인 & 교사가 되다
김경섭 장로님은 제대 후 중학교 국어교사가 됐다. 놀라운 건 중학교 밖에 안 다닌 장로님이 국어교사가 된 것이다. 여기에는 장로님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숨어 있었다. 6.25 전쟁으로 중학교 교육만 받은 장로님이 남한에 내려와 혼자 공부를 해서 경기공립보통사범학교(현, 서울교육대학교 전신)에 입학했다. 졸업후 서울사립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그러나 김명화 권사님의 병환으로 교편을 접어야 했고, 권사님이 운영하던 학원(피아노학원, 미술학원 등)을 돌보기 시작했다. 장로님이 ‘시인’이 된 것은 초등학교 때 글짓기를 통해 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다. 어른이 된 장로님은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시인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 영은교회는 가장 건전한 교회입니다
김경섭 장로님은 1963년 영은교회에 등록한 후 줄곧 중등부에서 교사로 봉사했다. 장로님은 교회창립 30주년 기념식이 있던 1990년 4월 22일에 장로 임직식을 가졌으며, 2001년 12월 30일에 은퇴하시기까지 11년 동안 장로로서 헌신하셨다. 장로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목회자를 꼽는다면, 제1대 박조준 담임목사다. 장로님을 영은교회로 이끌어 준 분이기 때문이다. 장로님은 영은교회의 가장 큰 자랑은 ‘교회의 건전성’이라고 한다. “우리 교회는 건전한 장로교회입니다. 가장 건전한 교회가 장로교 통합 교단 교회인데, 그중에 영은교회가 가장 건전합니다. 영락교회, 새문안교회와 나란히 영은교회도 최고의 교회라고 할 수있습니다.” 영은교회에 대한 장로님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서인지, 장로님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동안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씀한다. 교회가 항상 재미있어서 힘든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93살의 장로님은 10년 전 김명화 권사님(2014.12.11. 별세)을 먼저 주님 곁으로 보내고 현재 아들 김태화 집사와 함께 산다. 김명화 권사님은 숭의여전 유아교육학과를 나와서 평생 어린이 교육에 삶을 바치셨다. 살아 생전에 시부모님을 잘 모셔서 “영등포 효부상”을 받기도 했다. 김경섭 장로님과 결혼하기 전 권사님은 “시부모님은 생전에 제가 모시겠습니다.”라고 언약했는데, 그 약속을 평생 지킨 것이다. 김명화 권사님은 1991년에 권사에 취임해 2007년에 은퇴했다. 장로님은 슬하에 2남 1녀(태선,은주, 태화)를 두었다. ‘시인 장로님’의 바람이 있다면 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건강 주셔서 장수합니다.” 장로님이 주는 최고의 신앙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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