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再建)의 기초, 비전 선포 <느2:11-20>
글| 이승구 담임목사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온 지 삼 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는 소수의 사람을 데리고 잠행을 나섭니다(느2:12). 느헤미야 기록을 보면 골짜기 문에서 분문까지의 길이를 1000규빗이라고 합니다. 1000규빗이면 450m 정도가 됩니다. 느헤미야는 이 정도의 거리를 가면서 줄곧 예루살렘 성벽의 상황을 자세히 주목하여 살펴보고 조사하였습니다. 그가 본 것은 무너진 성벽과 불탄 성문뿐이었습니다. 어느 한 곳도 온전한 곳이 없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민족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후 비전을 선포합니다.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느2:17)
그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방향을 선포합니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비전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까?
먼저 느헤미야의 비전 선포는 기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민족의 아픔을 품고 기도하는 리더였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전을 발견하였고, 기도하는 가운데 민족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준비하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민족의 아픔을 놓고 기도하면서 민족을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영적 통찰력을 갖게 되었고, 새로운 도전을 위한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영적 통찰력을 갖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영적 통찰력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며,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것을 듣게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비전을 보게 합니다.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라는 책 제목처럼 비전 선포 또한 기도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면 영적 통찰력이 깊어집니다. 그 통찰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우리를 이끄는 비전이 보입니다.
두 번째로, 느헤미야는 냉철한 판단력을 통해 비전을 다듬어갔습니다.
그는 잠행을 통해 얻은 정보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리더였습니다. SWOT라는 문제 분석법이 있습니다. Strength(강점), Weakness(약점), Opportunity(기회), Threat(위협) 등 기업 내부 조직, 팀, 개인의 역량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외부 환경요인인 기회, 위협 요인을 분석, 평가하고 이들을 연관시켜 전략을 개발하는 툴(TOOL)입니다. 느헤미야도 잠행을 통해 공동체 내부와 외부의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단일 신앙 공동체이자 한 민족 공동체입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잠재성이 강점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으며 재건에 대한 두려움이 깊다는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닥사스다 왕의 지원으로 다양한 물적, 인적 자원을 갖춘 호재를 맞이했습니다. 반면, 성벽 재건을 비웃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끈질긴 훼방, 외부의 침입에 의한 환난과 능욕이 끊이지 않는 위협적 상황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체가 어떻게 해야 더 이상 분열되지 않고 한 마음 한 뜻으로 함께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 냉철하게 판단하여 비전을 다듬어 나갔습니다.
셋째로, 느헤미야는 공동체에 동기를 부여하며 비전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이끄는 매력이 있는 리더였습니다. 그는 필요한 시기에 적합한 말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합니다. “우리가 왜 무시를 당해야 합니까? 일어나서 건축합시다! 모두 힘을 내어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실패감에 깊이 절망하고 있는 백성들과 성벽 재건이라는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동기가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왜 성벽을 재건해야 하는지 그 동기를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에서 비전이 완성된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비전 선포에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느2:18)’기로 합니다. 그들은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성벽 재건에 대한 의지를 피력합니다. 느헤미야의 동기부여로 인해 당시 제사장들과 방백들, 포로 귀환 공동체의 지도자 그룹과 백성들이 모두 동참합니다. 이제 성벽 재건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귀환 이후 그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던 대적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느헤미야의 일을 방해합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느2:19)
대적자들은 느헤미야 일행의 계획을 듣고서 두 개의 동사로 자신들의 행동을 나타냅니다. 먼저 ‘업신여기다’라는 말은 어떤 것에 거의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마땅히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야 할 어떤 대상을 경시하고 모욕하는 부당한 태도입니다. 업신여기는 말은 열심히 해 보겠다는 사람의 의욕을 꺾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또한 ‘비웃다’는 말은 ‘말을 더듬다’라는 의미입니다. 타인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더듬더듬 말하여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여 상대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대적자들은 느헤미야와 그와 함께 하는 자들을 업신여기고, 또한 우스꽝스러운 말로 비웃으면서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합니다. 비전 선포로 똘똘 뭉친 사람들의 마음을 흐트러트리려 합니다. 나아가 대적자들의 훼방은 협박으로 이어집니다. 성벽 재건 시도를 반역 행위로 규정하면서(느2:19) 이들을 저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어떤 훼방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을 조롱하는 대적자들에게 이렇게 반박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느2:20)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의 허락을 받고 귀환민들과 함께 성벽을 재건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추진하는 이 일은 반역이 아니라 왕명을 따르는 일입니다. 오히려 느헤미야 일행을 방해하는 대적자들의 행동이 반역인 셈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오직 신앙적인 측면에서 답변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형통케 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대적자들의 음모를 물리칠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합리적인 반박의 항변보다도, 지금까지 함께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무한 신뢰가 느헤미야에게는 가장 큰 힘이었으며, 대적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었습니다.
조선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노래 <용비어천가> 2장은 뿌리가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을 소재로 합니다. 특히 샘이 깊은 물은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그 샘에서 나오는 물이 내를 이루어 결국 바다까지 흘러간다고 합니다. 느헤미야의 삶이 바로 이런 샘과 같았습니다. 그는 쓰러져 가는 민족에게 필요한 생명수를 흘러보내는 샘과 같은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소망이 없어 말라가는 민족에게 소망의 생명수를 공급하는 샘과 같은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을 살리는 물을 흘려보내는 샘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비전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이 비전이 이 시대에 우리의 삶과 신앙과 예배의 재건을 위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이 비전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이 비전은 우리에게 주신 지혜를 통해 다듬어집니다.
이 비전은 함께 공유하며 동기 부여가 될 때 완성되어 갑니다.
이러한 비전을 통해 삶의 재건을 위해, 신앙의 재건을 위해, 예배의 재건을 위해 생명을 살리는 물을 흘러보내는 깊은 샘과 같은 삶을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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