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주일예배는 교회 창립 61주년을 기념하는 예배로 드렸다. 특히 3부 예배에는 창립 교인 열두 분 중 일곱 분이 참여하여 교회 창립을 기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은교회는 1960년 4월 24일 양평동 1가 106 번지 소재 이창호 집사 댁에서 58명의 성도(남자 23 명, 여자 35명)가 모여 창립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됐 다. 현재 101살의 이승진 장로님을 비롯한 창립 교인 열두 분이 기도의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영은교회를 지키고 있다(김동호 원로장로, 이승진 은퇴장로, 송미 자은퇴권사, 김찬규 은퇴장로, 이팔순 은퇴권사, 김 후선 명예안수집사, 김춘화은퇴권사. 박복순은퇴권 사, 한영기 은퇴권사, 이혜숙 은퇴권사, 이순희 은퇴 권사, 이수진 은퇴권사).
영은교회 박조준 초대 담임목사님에게 듣는 특별한 이야기
영은교회 초대목사는 박조준 목사님으로서 1960 년 11월 29일에 부임해 교회건축과 교회 부흥의 기초를 다졌다. 이후 영락교회에 청빙되어 한경직 목사 님의 후임으로 담임목사가 되셨다. 박조준 목사님에 게 영은교회는 목사 안수 후 첫 담임 목회를 시작한 ‘특별한 교회’ 였다. 국민일보(2016년)에 게재된 박조 준 목사님(세계지도력개발원 설립자, 갈보리교회 원 로)의 글 ‘‘목사국임도 □????이 맞으니 영은교회 날로 부흥을 통해 초기 영은교회의 모습을 회고해 본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위로는 하나 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곳이다.
영은교회는 소위 세상에서 유력한 사람들이 모이 는 교회는 아니었다. 성도들은 주중에 일터에서 성실 하게 일하다가 기다리던 주일이 되면 정성껏 준비해 예배드리러 나왔다. 말씀을 그대로 받아드리며 "아멘"하고 화답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성도들 사이뿐 아니라 담임 목사를 향한 교인들의 사랑 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 정성이었다.
교인중에 안양천둑에 움막을 짓고 지내는 분들이 있었다. 심방을가면 목사를 정성껏 대접한다고 밀가루 반죽을 해서 수제비를 만들 어 주셨다. 맛있다고하니 더 주셨다. 그 정성을 생각해서 먹기는 했지만 내 위의 소화 능력이 감당할 수 없어 화장실에서 모두 토해낸 적도 있었다.
나는 중학생 시절, 찬밥 먹은 것이 잘못되어 위궤 양을 앓으면서 오랜 세월 고생을 했다. 175cm 키에 몸무게가 55kg밖에 나가지 않았다. ‘‘바람에 날아갈 것 같다 는 말을 곧잘 들을 정도였다. 식사를 하고 나면 소화시키는 것이 크나큰 부담이었다. 밥을 먹은 후 고통 없이 지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교인’’
들 사이에 ‘‘우리 목사님은 수제비를 좋아하신대 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심방 갈 때마다 수제비를 대접 받은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교회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교회부지를 구입(1960. 12. 4.하고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 1층 공사가 끝나고(1961.7.23. 1층 완공 입당예배) 2층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느 날, 영락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부목사로 와 달라는 초빙 요청이었다. 이 소식을 둘은 당회와 제직, 성도들은 난리가 났다. ‘‘이렇게 은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왜 우리 목사를 데려가려 하느냐.’’
성도들의 반발이 너무 심했다. 나는 사실 그때까지 한경직 목사님을 한 번도 뷘 적이 없었다. 그저 멀리 서 존경하고 그분의 방송 설교를 통해 은혜받으며, 참으로 홀륭한 설교자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냥 잠 자코 있자니 교회 입장이 어려울 것 같았다. 만일 내 가 떠나며 교회에 큰 상처를 남길 것 같아서 한경직목사님을찾아갔다.
‘‘부족한 저를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목회자의 양심상 영은교회를 떠날 수 없습니다. 목사님 요청에 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한 목사님께서는 퍽 아쉬워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이 면 E追에 기회가 또 있겠지요.’’
목사가 마음을 정하자 교회는 안정을 되찾았다. 교회는 계속 성장했다. 예배당 건축을 완공하고도 교회 가 비좁아 영등포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2부 예배를드리게 되었다.
당회가 열리면 당회원들은 한결같이 목사의 계획 에 찬성표를 던져주셨다. 그때마다 나는 막중한 책임 감이 더해졌다. 그래서 무슨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더 많이 기도하고 연구하고 계획해서 당회에 올렸다. 모두가 목사인 내 책임이기 때문이다.
영은교회는 많은 교회와 교역자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예배당 을 신축해 완공(1962. 10. 28. 성전봉헌)하고 위임식 (1962. 10. 28.)까지 모두 마쳤는데, 영락교회에서 또 다시 청빙 요청이 왔다. 남아있을 것인가, 새로운 곳 에서 좀 더 배울 것인가.’ 고민이 시작됐다.
(글 출처 : 국민일보 2016년 11월 7일)
박조준목사
서울대 문리대 졸업 /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대학원 졸업 / 1960년 : 영은교회 초대목사 부임 / 1973년 : 영락교회 담임목사(한경직 목사 후임) / 1985년 : 갈보리교회 개척 / 2003년 : 미국 세계지도력개발원 설 립 · 원장, 2021년 3월 퇴임
Copyright @2025 동행.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