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이레’ 의 본래 의미는 ‘스스로 계시다’ 는 의미 의 ‘여호와와 미리 보다, 준비하다’ 는 의미의 ‘이레’ 가 합쳐진 말입니다. 즉 ‘여호와 이레’ 는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순간에, 믿음의 고백으로, 신뢰하며 걸어갈 때에, 주께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여호와 이레’ 의 하나님을경험한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오랜 기다림 끝에 ‘이삭’ 이라는 약속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의 전성 시대가 펼쳐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에 하나님 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창22:1)’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을데리고모리아팡으로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갑자기 이삭을 바치라고 하면 서 그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대 아들’ , 대 사랑하는 독자 라는 표현을 반복할 만큼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어떤 존재임을 아셨습니다. 그럼 에도 그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게다가 이 명령은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창21:12)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위배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삭 외에는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고 약속하셨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대체 왜 이런 시험을 주시는지,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 말 없이 순종으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아브라함은 자신 의 연약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순종에서 멀어지고 싶은작은욕망과변명의 여지를원천봉쇄합니다.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창22:3)'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자기에 게 일러 주신 곳으로 촐발합니다.
아브라함이 순종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 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아브 라함의 신뢰는 종들과의 대화, 이삭과의 대화에서 분명 하게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은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두 종에게 ‘여기’ 에서 기다릴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고 내 가 돌아온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가' 돌아오겠다고 말합니다(창22:5). 이 말에는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이지 않고 살려 보내실 것이란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어서 함께 길을 가던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번제할 어린 양이 어디 있는지 묻습니다.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창22:8)’’ 고 답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으로 나아간 고백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 인 신뢰가 빛나는 고백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전의 약속과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그 마음에 품었던 생각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 니라…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히 11:17~19)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운 명령 앞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죽은 자를 얼마든지 다시 살리실 수 있는 분이라는 변함 없는 신뢰를 바탕으로 순종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요구에 언제라도 따를 수 있도 록 철저히 준비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 고 나갔습니다.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순간 에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습니 다. 그러자 바로 그 자리에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 리라 하더라’ (창22:14) 아브라함은 주가 일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만난 곳에서 자신이 만난 하나님의 이릅을 부릅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여호와 이레를 경험한 또한 사람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히나니’ 의 방문을 받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 (느1:3)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여기서 사로 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읍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것을 듣게 됩니다.
에스라의 기록에 의하면, 아닥사스다 왕 때 제2차 귀환 후 성읍 재건의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대적들의 반대로 재건은 중단되었고, 성은 오랫 동안 방치되다 훼파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니를 통해 예루살렘 성의 황폐함을 알게 된 느헤미야는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 느헤미야는 어떻게 합니까?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1:4)
본문은 연속된 동사(듣고/앉아서/울고/슬퍼하며/금식 하며/기도하여)를 사용하여 느헤미야의 안타까운 심정과 슬픔을 묘사합니다. 극심한 절망과 슬픔 속에서 느헤미야 가한일은식음을전폐하고하나님께 기도하는것이었습 니다. 공동체의 불행을 자기의 불행으로 여기고, 기도의자리로 나아가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 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1:11)
그의 기도 가운데 중요한 것은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라는 말입니다. ‘이 사람 이 누구입니까?
당시 세계 제일의 제국을다스리는왕입니다. 느헤미야 는 큰 권력을 가진 왕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신뢰하며 기도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리 하여 느헤미야는 지도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을 다시 건축하자는 비전을 제시합니다.(느2:17) 하나님이 지금 까지 어떻게 도와주셨고,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 여 주셨는지 간증합니다. 이렇게 백성의 마음에 용기를 주고 격려하니 온 이스라엘이 동참하였습니다.
그런데 일이 막 잘 되려던 시점에 사마리아 총독인 산 발랏과 그의 오른팔인 암몬 사람 도비야, 요단강 동쪽과 남쪽을 다스리던 게셈이 도전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지도층과 결탁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자들인 데, 느헤미야의 지도력과 백성들의 염원을 꺾기 위하여 강력하게 방해합니다.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 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느2:19) 이 방법은 이미 13넌 전 에스라의 주도로 쌓던 성벽을 중단시켰던 바로 그방법이었습니다. 성벽을 쌓는 일을 가장 민감함 정치적사안으로만들어 도다시 방해를시도한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성벽 재건 공사는 ‘오십이 일 만인 엘룰 월 이십오일에 끝냈 습니다.(느6:15) 느헤미야의 계획이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를 이곳으로 이끄신 하나님의 계획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모든원수와주변의 여러 민족이 이 소식을듣 고 완공된 성벽도 보았다. 그제서야 우리의 원수는 이 공사가 우리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깨달 았다. 그래서 그들은 기가 꺾였다.'’ (느 6:16-새번역)
느헤미야가 경험한 ‘여호와 이레’ 는 성벽 재건을 반대하고 방해했던 원수들의 상황 변화까지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원수들이 어떻게 되기를 기도하지 않았 습니다. 하지만 미처 기도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준비하 시는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에게 여호와 이레를 경험 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이레’ 를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 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까지, 그래서 기도하지 도 못했던 것까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 주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올백 예배주일’ 을 우리가 함께 준비합니다. 저는 우리 영은교회가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가 ‘여호와 이레’ 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예배자로 섭기는 삶이 매우 힘든 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점점 시간이 갈수목 예배에 대해 편한 쪽으로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더욱 간절히 고백하는 믿음을 지녀야 할 것입 니다. 코로나 때문에 예배의 자리틀 떠난 분들을 위해 서 중보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모두가 예배자의 삶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현장 예배 든지 온라인 예배든지 신실한 예배자의 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 ????욜 모아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주가 일하실 것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결단의 삶이 필요합니다. 그 자리가 어디든지 하나님께서 준비 해 놓으신은혜가 있음을 기대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 기대를 사모하는 마음을 함께 모아가는 시간이 넬백 예배주앨입니다.
울백 예배주일’ 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를 위해 최선의 것을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 를 경험하 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우리의 신앙의 여정 도한 ‘여호와 이레’ 를 경험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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