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영부 수련회
글 | 장진아 집사 (120구역)
지난 10월 24일 수요예배시 음영부수련회가 있었습니다
예배중 말씀으로 이승철 목사님은 〈원망이 아닌 찬송을〉이라는 제목으로
모든것을 한 순간에 잃은 욥 이어떻게 하냐님을 찬양할 수 있었는지 말씀을 주셨고,
이어진 수련회에서는 이준희 강사 목사님을 모시고 교회 음악의 어제와 오늘을 되돌아보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찬양에 어떤 역사가 녹아있는지,
교회 음악이란 무엇인지 등을 실제적으로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였습니다.
흑인과 백인이 함께 어우러진 찬양대 영상을 보며 나와 생각과 성향이 다른대원들이 있더라도
마음을 합해 한마음으로 찬양 해야 함을 느꼈고 또한 찬양대원은 먼저 한 사람의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함도 배웠습니다.
교회 음악 에 대한 이해와 찬양대원으로 필요한 기본적 소양도 점검해 볼 수 있는 귀한시간이었습니다.
‘찬양이 나의 만족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찬양의 이유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라는
맺는 말씀으로 짧지만 알찬 2018년도 음영부 수련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편집자주〉 다음은 지난 10월 24일 음영부 수련회에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찬양〉이라는 제하로 우리 교회 이준희 목사님께서 강의하신 내용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찬양
글|이준희 목사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매주일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드리는 목적, 찬양하는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목적과 의미를 알 때 내가 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깨닫는다.
예배(禮拜)는 무엇인가?
앨버트 토저(AW.Tozer)는 “인간은 예배를 위해 지음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그분을 예배할 수 있다.
예배라는 말은 영어로 worship이라고 한다.
가치를 뜻 하는 ‘worth’ 와 신분, 상태를 뜻하는 ‘ship’ 의 합성어다.
즉 예배란 하나님의 신분에 합당한 영광과 가치를 드리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는 온전히 하나님 께 드려져야 하는 것이다.
예배는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1) 재연으로써의 예배(극화로서의 예배)
재연을 할 수 있는 어떤 극본(예배서)가 있고 그 방식에 따라서 그대로
예배를 드리면 잘 되었다고 판별 한다.‘성만찬’ 과 ‘세례식’ 이 재의의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재연적인 요소를 반복함으로써 제의를 충족시킨다.
그러나 개신교는 ‘이해로서의 예배'로 나아간다
2) 이해로서의 예배
이해되지 않는 예배는 예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개혁가 칼뱅은 예배에서의 이해를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예배는 자국어로 드려져야 하며 자국어 성경이 읽혀져야 했다.
장로교 예배의 중요한 부분은 예배에 대한 이해이고 설교는 그 중심이 되었다.
3) 경험으로서의 예배
칼뱅은 이성을 강조하고 감성을 억눌렀는데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예배가 될 수 있는가라는 주장이 나왔다.
하나님 만남의 체험으로써의 뜨거움, 눈물 홀림과 같은 것들이 없다면
그것이 과연 진짜 예배인가? 성령 중심, 체험 중심의 예배가 바로 이것들이다.
찰스 피니 목사는 완전 새로운 방식의 예배를 이야기하였다.
‘‘경험만 줄 수 있다면 어떤 예배도 가능하다.'’ 예배 안에 서 어떤 성령의 경험이 있는가,
그리고 ‘영혼 구원’ 이라는 결과물만 있다면, 많은 사람이 회심한다면 그것은 좋은 예배라고 평가된다.
4) 만족으로서의 예배
현대 교회의 예배는 만족으로써의 예배이다. 여기에 작용하는 가치관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소비자 만족’ 이다.
이전에는 재연, 예배자의 이해, 감정적 경험 등에 있어서 ‘예배의 대상으로서 인간’ 에게 집중했으나
오늘날에는 예배를 드리는 인간들, 즉 소비자들이‘예배를 얼마나 만족하는가 가 중요하게 되었다.
이 네 가지 중 어떤 것이 올바른 예배인가? 하나만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이 모든 것은 사실 형태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예배에 있어서 형태보다 내용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배의 내용에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 그 분이 하신 일, 하고 계신 일 그리고 하시기로 약속하신 일에 대한
우리의 신앙의 내용이 표현되어야 한다. 우리의 신앙 과 믿음이 조금의 삐둘어짐이나 왜곡됨이 없이
제대로 표현될 수 있는 예배야말로 건강한 예배가 될 것이다.
예배 안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음악이다. 그
래서 그리스도인은 음악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교회에서의 음악은 여러 명칭으로 불린다. 찬양, 예배음악, 교회음악 등이다.
가장 큰 개념은 교회음악이고 그 다음 찬양, 그리고 예배음악이다.
교회음악은 성도들의 모든 삶 어디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개념적으로 보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교회음악 개념은 찬양과 같거나 그보다 크다.
예배음악은 가장 작은개념이다.
(1) 찬양 또는 찬송
찬양 또는 찬송이라는 말은 어떤 한 가지 의미만을담기에는 부족하다.
예배에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찬송가는 Hymns의 번역어로 본다면 찬양은 예배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으로 교회음악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2) 예배음악
예배음악은 예배를 위해 상당한 정도로 공적인 절차를 걸쳐서 인정된 음악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음악 들은 이미 있어 온 역사적 음악으로부터 뽑아온 것이며,
오랜 동안 교회에 의해 불려서 ‘교회음악으로서’ 신자들에게 친숙한 음악이다.
(3) 교회음악
교회음악이란 신자들과 관련된 모든 음악을 포괄한다.
잘못된 선입견이 교회음악을 오해하게 한다. 교회 음악은 예배와만 관련되어있어야 한다는
전례주의, 하나님 찬양이냐 아니냐의 가사내용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가사 내용주의,
음악의 양식을 교회음악의 기준으로 삼는 양식주의가 그것이다.
이 중 전례주의, 양식주의는 카톨릭 교회에서 보이는 양상이다.
개신교는 중교 개혁시기에 교회로서의 신자들을 강조하는 회중찬송가를 도입함으로써
이러한 틀을 과감히 깨고 나왔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교회음악의 목적은 첫째, 하나님을 영화롭게 히는 것이고,
둘째, 신자들을 성스럽게 하고, 그들의 신앙심을 돈독하게하는것이다.
교회는 예배와 찬양을 통해 그 교회의 모습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고백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목적에 합당한 예배, 올바른 찬양이 드려져야 한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찬양이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해야 하고 바른 예배가 무엇이고
온전한 찬양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먼저 던져야한다.
그리고 그 답을 찾을 때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찬양이 바르게 세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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