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은숙 은퇴권사 교회장(敎會葬)
지난 8월 31일 오전 9시 본당에서 故박은숙 은퇴권사의 교회장이 있었다.
故 박은숙 은퇴권사는 1933년 1월 평양에서 태어났다. 1956년 11월 노용배 성도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1966년 부산 평광교회에서 집사로 헌신하다가, 1984년 서울 상경과 함께 영은교회에 출석,
2003년 4월 권사 직분을 받고 기도와 봉사로 섬기다가 2003넌 12월 28일에 은퇴하였다.
故 박은숙 은퇴권사는 5년 전 발견된 질병으로 오랜 투병생활 끝에, 2018년 8월 29일 8시 20분경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이날은 허남기 원로 목사님의 〈예수 안에서 자는 자〉 라는 제하의 설교로,
고 박은숙 은퇴권사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말씀을 전하였다.
다음은 신현분 은퇴권사의 조사이다.
조사(弔辭)
존경하는 故 박은숙 권사님
인간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딸 박은숙 권사님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하나님만을 섬기 는 일생을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주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니 , 감사합니다.
故 박은숙 권사님은 인자하시고 겸손하며 다정하셨고, 사랑이 많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어려운 일에 함께 하셨습니다.
상처 받고 방황하는 자들을 섬 기고, 사랑으로 인도하신 권사님은, 본인의 몸이 힘들면서도
예수님을 닮아 먼저 섬기는 모습으로 늘 웃으며 봉사하셨습니다.
이제 막상 그 모습을 볼 수 없이 우리 곁을 떠나 신다고 생각하니 마음 속 슬픔의 빈 자리가 너무나 크고 허전합니다.
권사님! 이제 우리 육신의 눈으로는 권사님을 볼 수 없으나, 천국에서 별처럼 빛나고 있음을 저희는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부활의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영생을 받아, 육신으로는 잠시 헤어지지만
머지않아 믿음 안에서 권사님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약속의 하나남 친구였고 동역자였던 박은숙 권사님을 주님 품으로 떠나보냅니다.
이제는 권사님을 하나님께서 친히 돌보시고 품어 주시고 눈동자 같이 지켜 주옵소서.
남아있는 저희들은 주님을 위해 살다 가신 권사님을 본받아,
권사님이 이루지 못한 일들을 이전보다 더욱 충성되게 감당하겠습니다.
권사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도 머지 않아 천국에서 다시 기쁨으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신현분 은퇴권사
고(故) 이명숙 은퇴권사 교회장(敎會葬)
지난 9월 7일 오전 9시 본당에서 故이명숙 은퇴권사의 교회장이 있었다.
故이명숙 은퇴권사는 1930년 12월 중화민국 무순시에서 출생하여 1948년 4월 김동호 장로와 결혼,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또한 영은교회 초대교인으로서, 1972년 4월 영은교회 권사 직분을 받은 후
기도와 헌신으로 섬기다가 2000년 12월 은퇴하였다.
이날 허남기 원로 목사님은 〈의의 면류관〉이라는 제하의 설교에서,
궂은 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봉사하던 故이명숙 은퇴권사에 대하여 ‘그야말로 권사 같은 권사’ 라 전했다.
故이명숙 은퇴권사는 은퇴 후에도 주일을 성수하며 기도로 후원하다가, 2018년 9월 5일 새벽 3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다음은 신현분 은퇴권사의 조사이다.
조사(弔辭)
존경하는 고 이명숙 권사님
인간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귀한 딸 고 이명숙 권사님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는 일생을 살게 하셨던 권사님을
이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주님 나라에 들어 가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저희 은퇴권사들이 오는 주일날 이명숙 권사님을 찾아뵙기로 약속했었는데,
무엇이 그리 급하셔서 기다려주시지도 뒤돌아보지도 아니하시고 가셨습니까? 정말 미안합니다.
언제나 조용하셨고 만나면 빙그레 웃어주시던 권사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항상 수고한다고 말씀 해주시던 음성이 귓가에 맴돕니다.
권사님은 어느 자리에서도 겸손과 인자함으로 섬겨주셨고, 다정하셨을 뿐 아니라
사랑이 많고 자기주장을 내 세우지 않은채 늘 낮은자세로 섬기셨습니다.
그것이 더욱 고맙습니다.
이제 그 모습을 볼 수 없음에 눈물이 마냥 흐릅니다.
우리 곁을 떠나셨다고 생각하니 더욱 살펴드리지 못한 것이 생각나 마음이 아픕니다.
권사님! 이제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는볼 수 없으나,
권사님의 영혼이 주님의 품에서 별처럼 빛나고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사랑하는 고 이명숙 권사님은 저희 은퇴권사들의 친구였고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이제 고통도 슬픔도 없는 주님의 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남아있는 저희들은 남은 여생 주님을 위해 살다 죽으신 권사님의 귀한 마음을 본받겠습니다.
권사님의 이루지 못한 일들을 이전보다 더욱 충성되게 감당하겠습니다.
권사님! 우리 머지 않아 천국에서 다시 기쁨으로 만날 것 이라 믿습니다.
산현분 은퇴권사
고(故) 조명화 은퇴권사 교회장(敎會葬)
지난 9월 13일 오전 9시 본당에서 故조명화 은퇴권사의 교회장이 있었다.
故조명화 은퇴권사는 1934년 1월 중화민국 요령성 심양시에서 출생하여
1954넌 12월 고 김희관 집사와 결혼,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또한 영은교회 창립 성도로서, 1990년 4월 영은교회 권사 직분을 받은 후 헌신 봉사하시다가 2004넌 12월 은퇴하였다.
이날 설교를 맡은 조기민 목사님은 누가복음 23 장 46절의 말씀을 가지고 〈맡기는 믿음의 고백〉이라는 제하의 설교를 전했다.
故조명화 은퇴권사는 2018년 9월 11일 오전 9시 반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며,
영은설악동산에 안치되었다.
다음은 신현분 은퇴권사의 조사이다.
조사(弔辭)
존경하는 故 조명화 권사님.
지난해 가을 저희 은퇴권사회에서 부목사님을 모시고 권사님 계신 곳을 찾아갔을 때가 기억납니다.
권사님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셔서 저희 은퇴권사들을 맞이하셨지요.
그렇듯 밝던 권사님께서 갑자기 위독하다는 소식에 지난 7월 부목사님 및 열 분의 은퇴권사님과 함께 찾아갔을 때,
권사님께서 침대에 누워계신 것을 보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권사님, 저 신현분 권사예요. 들리세요?' 했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으셨죠.
호흡기까지 하고 있던 조명화 권사님의 모습을 보니,
그동안 우리에게 말씀은 안 하셨어도 무척 힘드셨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쓰리고 아팠습니다.
그 후로 하나님께, 아프신 권사님 건강이 빨리 회 복되고, 사시는 동안 고통이 없으시게 해 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권사님을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아팠습니다. 언젠가 하나님 부르실 때가 오겠으나, 그 날이 언제이든 덥지도 춥지도 비도 눈도 오지 않 는 그런 날에 불러주시기를 기도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주일 간격으로 세 분 권사님께서 돌아가시다니, 슬프기 그지 없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젊어서 주일학교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하셨고, 또 고생도 많이 하셨지요.
더는 고생 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덥지도 춥지도 않은 때에 천국에 불러,
먼저 가신 두 분 권사님과 만나게 하시려는것이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존경하는 조명화 권사님을 사랑하셔서 오래 아프지 말라고 부르신 것이겠지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故조명화 권사님은 다른 권사님들의 친구가 되시고, 믿음의 동역자이셨습니다.
이제 고통도 슬픔도 없는 주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신현분 은퇴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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