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터치
심해에 피어나는 꽃
얼마 전 이사 온 동네는 ‘뉴타운’ 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제법 목가적인 풍경을 품고 있다.
나무가 도처에 있고 작은 개천도 흘러서,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있지만
자연의 넉넉한 품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요즘 같은 여름밤엔 풀벌레 소리가 방 안을 넘나들고,
별빛이 밤하늘을 어지럽게 수놓기도 한다. 도심에 비해 밤 하늘이 깊어서, 밤이 펼쳐놓은 하늘이
때론 깊은 바다처럼 여겨질 정도다. 저 많은 별들은, 어쩌면 깊은 밤바다를 헤엄치고 있는걸까.
깊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진 나는, 문득 ‘심해 라는 말을 떠올렸다.
내가 별들의 행렬 을 올려보고 있는 이 순간, 깊은 바다 속에선 어떤 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수정 시인의 표현을 훔친다면,심해엔 무시로 눈이 내리고 있다고 한다.
바다엔, 한생애를/지느러미에 맡기고살던 것들이 /수평선 너머로 가고 싶은 마음인 채로 축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다 하는데,I흩어진 사체가 고운 눈처럼 내린다고 하는데(…)’ (이수정, ‘심해에 내리는 분 일부)
물고기들은 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사체를 가만히 가라앉힌다.
그래서 심해엔 계절을 막론하고 눈이 내 린다. 수평선 너머로 가고 싶은꿈을 이루지 못한 물고기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제 생을 마감 하는 중이다.
그러나 그 풍경은 쓸쓸하지 않고 찬란하다.
시인은그것을 ‘고운눈’ 이 내리는 광경으로 그려 냈다. 비록 이루진 못했지만,
저 물고기들도 한 평생 꿈을 꾸었으리라. 꿈을 향해 부단히 헤엄쳤으므로,
그 생이 내리는 풍광은 고운 눈이 내리는 것처럼 아름다웠으리라.
나는 심해에 눈이 내리는 풍경을 떠올리며, 얼마 전 제 생을 가라앉힌 ‘정치인 노회찬’ 을 떠올린다.
그 생의 종결에 대해 이런저런 정치적인 논란이 있음을, 나 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논란을 잠시 미룬 채로, 그가 품었던 꿈의 한 토막만 새겨두려 한다.
그가 생전에 남긴 연설에 6411번 시내버스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에서 출발해 강남 개포동 주공 1단지까지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다.
새벽 4시경 하루를 시작하는 그 버스엔 강남의 큰 빌딩에서 청소 일을 하는 아주머니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그들이 새벽 5시 30분부터 일몰 때까지 청소를 하고 받는 돈은 한 달에 85만원 남짓.
그러나 그저 ‘청소 아줌마’ 로 불리는 그 미화원들의 노고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들은 우리 사회의 ‘투명 인간’ 이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투명 인간들을 위한 정치를 꿈꿨으나, 끝내 그꿈을 다 이루지 못한 채 좌절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수평선 너머를 꿈꾸다 좌절한 물고기처럼 가라앉고 말았지만,
누군가는 그 꿈을 이어갈 거라고, 나는 믿는다.
저 멀리 심해엔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생애를 지느러미에 맡기고 살던 것' 들이
고운 눈처럼 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깊은 바다에선,
물고기 사체가 가라앉은 자리에 미끈한 해초들이 꽃처럼 피어난다고 한다.
` 〈글 | 정강현 기자〉
Copyright @2025 동행.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