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터치
나의 방북 취재기
지금으로부터 11넌 전, 그러니까 2007년 이른 봄에 나는 평양행 고려항공에 몸을 실었다.
분명 봄이었는데, 평양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어쩌면 마음이 어수선 해서 더 춥게 느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입국 과정에서 느껴졌던 삼엄한 보안은 누군가가 나를 감시할 목적으로 따라 붙으면서 더욱 엄격해졌다.
나는 분명 정식 비자를 받고 취재를 하러 온 기자였지만, 북한 당국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11년 전 기억이 불쑥 떠오른 건 얼마 전 풍계리 핵실 험장 폭파 현장을 취재하러 간 동료 기자들의 소식을 듣고서다.
그들은 북측의 꽤 융숭한 대접을 받은 걸로 알려졌지만, 대접의 크기만큼이나 강도 높은 통제에 시달렸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내어준 전용 열차를 타고 이동할 때, 그들은 커튼을 열지 못했다.
고급 요리가 나온 취재진 전용 호텔에서도 로비 밖으로 마음대로 나갈 순 없었다.
그들의 취재 환경은 정확히 11년 전 나의 평양 취재기와 일치한다.
나 역시 이동하는 버스에서 커튼을 열 어 볼 수 없었고, 투숙했던 호텔의 로비를 벗어 날 수 없었다.
심지어 당시 나는 평양의 칠골교회에서 주일 예배도 드렸는데, 한 편의 연극 같은 예배가 끝나고
신도랍시고 앉아있는 평양 시민들에게 말을 걸었다가 심한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11년 전에 비하면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남북 관계가 급변하고 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두 번이나 회동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상황이다.
나는 진심으로 이런 평화무드를 환영하고, 남북은 물론 북미가 확고한 평화 체재를 구축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현직 기자의 직관으로 말하건대, 이런 희망은 결코 헛된 바람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염려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이른바 ‘정상 국가 로서의 북한 얘기다.
북한은 분명 급진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지만, 여전히 강고한 봉건 체제다.
11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취재 통제가 그걸 입증해준다. 우리가 다 아는것처럼,
북한은 북미 정상 회담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미국과의 실무 회담장에 무단으로 나타나지 않기도 했다.
‘정상 국가’ 간의 외교무대에선 있을 수 없는 무례다.
이와 같은 외교적 결례가 반복된다면, 앞으로 전개될 비핵화 과정이 덜컹거릴수밖에 없을것이다.
나는 이번 기회에 북한이 ‘정상 국가’로서 국제 사회에 데뷔하길 기대한다.
개혁개방의 길을 가겠다면,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 되는 과정이다.
어쨌든 최근 북측에서 보내오는 신호들은 그 길을 가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북미정상회담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이어서 남북미 3자 정상회담까지 열리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정신호’ 가 될 것 0]다.
부디 북한이 핵을 내려놓고 ‘정상 국가의 길을 걸 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평양 시내를 마음껏 활보하면서
취재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오기를. 혹시 아는가. 멀지 않은 미래에 ‘평양 특파원’ 자격으로 고려항공에 몸을 싣게 될 지.
그런 과격한 상상조차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며, 나는 한반도의 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글|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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