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터치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월간동행

|세상터치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정강현 기자

  • 등록 2018.01.01 16:02
  • 조회수 119

|세상터치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한' 아이가 있다. 

생후 52개월에 생이 멈춰버린 아이. 두 번 다시 ‘안아 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 ‘영우’ 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남자 아이. 

영우 엄마는 화장터에서 아이를 보내며 "잘 가” 라고 말하는 대신, '잘 자’라고 말을 한다. 

언젠가 꼭 다시 만날수 있 을것처럼. 

김애란 작가의 단편 「입동」은 52개월 된 아이를 느닷 없이 떠나보내고, 삶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다. 

아이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부부는 새로 도배를 시작 하는것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끝내 고통은 덮어지지 않는다. 

도배를 하던 부부는 살아 생전의 아이가 벽 아래에 삐뚤삐뚤 적어놓은 제 이름 석자를 발견 하고 오열한다. 

도배지를 엉거주춤하게 떠받친 체 부부가 내 뱉는 이 한 마디가 내 마음을 무너뜨렸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그래,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아이를 잃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를 버티는지를 그들이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음식을 먹고,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흘려 보내는지를. 아마도 그들에게 시간은 엄청난 폭력 처럼 여겨지겠지. 

몽둥이 같은 시간이 그들의 마음을 두들겨 패면서, 그렇게 고통스럽게 어디론가 흘러 가는거겠지. 

소설은 타인이 되어 보는 고통스러우나 유익한 매개체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러나 도무지 저 부부가 되어 볼 순 없었다. 

만 40개월 된 아이를 둔 아빠로서, 나는 최선을 다해 소설 속 부부에 동화되지 않기 위해 애썻다. 

그러나 책장을 덮을 즈음, 나는 거의 눈물이 범벅인 채였다. 

소설이 가공해 놓은 고통이 내게 무참히 건너 왔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꼬박 반나절이 필요했다. 

나는 아무라도 붙잡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이제는 소설의 잔향에서 온전히 벗어났지만, 냐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에게 닥치는 찹척의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아이를 잃어버리는 고통 같은 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런 고통을 묘사하는 소설을 멀리하고 싶다. 

그러나 허구의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에, 참척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게다가 이 나라에선 그런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다. 

세월호의 고통을 겪었던 나라이건만, 이 나라의 안전 시스템은 여전히 나태하다. 

백주대낮에 크레인 이 무너져 시내버스를 덮치고, 사우나에서 화재가 발생해도 제 때 구조를 받기 힘든 나라이다. 

소설 속 영우처럼 어린이집 차에 치여 숨지는 사례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시민들의 생명이 위협받지 않는 나라이다. 

안전 시스템이 공고해서, 어떤 예기치 못한 사고가 벌어져도 생명을 잃어버릴 확률은 극도로 늦은 나라이다. 

소설 속 영우 엄마는 이따금 베란다 창문을 내다보며 같은 말을 되풀이 한다.

 ‘‘여보, 영우가 있는 곳 말이야. 여기보다 좋을 것 같아. 왜냐하면 거기에는 영우가 있으니까.'’ 

가족들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지금 ‘여기' 보다 좋은 나라는 없다. 

새해에는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글 | 정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