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터치 ‘어쩌다 어른’ 의 반성문

월간동행

|세상터치 ‘어쩌다 어른’ 의 반성문

정강현 기자

  • 등록 2017.10.01 14:56
  • 조회수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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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어른’ 의 반성문 


‘어쩌다 어른’ 은 꽤 많이 팔린 에세이집 제목이다. 가까운 선배가 그 책의 저자다. 

책의 내용도 매혹적이지만, 나는 이 책이 독자를 잡아 당긴 힘의 상당 부분이 재목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이 제목은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일이 당혹스럽거냐 고통스러운 대부분 어른 들의 무릎을 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 매력적인 제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저자인 선배에게 물어봤다. 심각하게 고민하고 지은 제목은 아니라고 했다.

편집자가 책의 한 구절에서 추출한 제목이라는 설명이었다. 그 구절은 이것이다. 

‘‘어쩌다 어른은 돼 가지고 젠장!”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 어른으로 살아 가는 일이 덧씌우는 중압감을 감정적으로 토로한 대목이었다는게 저자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 제목이 실제로 지어진 배경이 어떠하든, 내 마음을 흔든 것은 ‘어쩌다 라는 부사 그 자체였다. 

이 부사는 공동체 의식이나 사회적 책임 의식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채 어쩌다 어른이 돼버린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반성의 기호로 내게 읽혔다.

사실 우리는 학교에서 충분히 좋은 어른이 되는 교육 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다. 

학교는 동무들과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 경쟁자들이 우글대는 정글이었다. 교사는 함께 살아가는 일의 가치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짓밟아야 성공한다는 생존의 법칙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런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이 꾸역꾸역 자라서, 어쩌다 어른이 됐다. 

최근 10대 청소년들의 끔찍한 범죄 사례를 접하면서, 나는 ‘어쩌다 어른’ 이란 말이 뼈아프게 떠올랐다. 

공동체 의식을 충분히 훈련받지 못하고 어쩌다 어른이 된 우리가 아이들을 또 다른 ‘어쩌다어른’ 으로 무심코 길러내고 있는건 아닐까. 

하지만 ‘어쩌다 어른' 들은 문제의 원인을 아이들에 게 돌림으로써, 스스로 함량 미달의 어른임을 인증하고 있다.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 터진 이후, 여당의 어떤 의원은 초등학생에게도 사형을 구형할 수 있는 내용의 소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분노히는 이유는 충분히 알 겠으나, 나는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거 라고확신한다. 

우리가 굳이 어른과 아이들을 구분지어 부르는건 두 존재의 양식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어른은 가르치는 존재이고, 아이들은 가르침을 받아서 성장해야 하는 존재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가르침을 잘못 준 어른들의 책임이다. 

아이들의 세계에 어딘가 고장이 났다면, 그걸 고칠 책임도 어른에게 있다. 

그러니 어쩌다 어른이 된 자들아, 아이들 문제를 아이들 탓으로 돌리지 마라 .

아이들 문제나 청소년 문제로 불리는 사회 현상은, 대개 어쩌 다 어른이 된 못난 어른들이 만들어 낸 문제다. 

〈글 | 정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