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메오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인생의 절정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성경은그에 대해서 ‘맹인 거지 바디메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막10:46)라고 소개합니다. 맹인이며 거지인 바디매오가 길가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주 씻지 못해 서 얼룩진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찌든 냄새 때 문에 그에게 가까이 가는 사람들이 없었을 것이며, 누더 기옷 때문에 멀리서도 한눈에 그가 거지인 것을 알아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길가에 앉아 남루한 행색으로 동냥 할 때마다 많은 이들에게 멸시와 모욕을 당했을 것입니 다. 심지어는 그를 향해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이며, 침을 뱉으며 ‘저리 가라 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 을것입니다.
바디매오는 길가에서 투쟁의 일상을 살아가야만 했습 니다. 그에게 길가는 날마다 긴장하고,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가야 하는 장소였습니다. 생존을 위해 날마 다 깊은 굴곡의 삶을 살아가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바디내오는 바로 그 길가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 다. 온갖 멸시와 모욕을 당하였던 바로 그 길가에서, 아 무 소망이 없던 바로 그 길가에서 그는 인생의 절정을 맞이합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막10:47)
바디메오는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다. 예수가 왔다. 예수가 우리 도성 여리고를 지나간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는 사람들의 소리를 통해서 예수님을 소개받았습니다. 본인의 귀로 들려오는 예수님의 프로필은 나사렛 예수" 였습니다. 당시 예수님 을 부를 때 가장 많이 사용했던 표현이 나사렛 예수였습 니다. 하지만 나사렛 예수라는 말의 밑바탕에는 경멸과 조소의 의미가깔려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빌립이 나 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빌립 이 나다나엘에게 ‘‘모세가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 렛 예수니라’ (요 1:45)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나다나 엘은 ‘‘나사랫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 1:46)라고 반문합니다. 요한복음의 이야기로 볼 때 복음 서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에 사람들은 나사랫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디매오의 귀에 들려온 예수님에 대한 소개는 나사랫 예수’ 였습니다. 사람들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못마당한 듯 들립니다. 예수님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배척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나사렛"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디맹오는 예수를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부릅니까? 그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며 나아갔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바디매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가 메시아 라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사람들이 비꼬듯 부르는 나사랫 예수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자 신을 구원할 메시아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했던 메시아의 왕국이 펼쳐질 때 인어날 기적 가운 데 하나인 맹인의 눈이 밝을 것” (사 35:5)이 실현될 것 이라고 믿었습니다. 바디메오는 바로 그 메시야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나사랫 예수가 다 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이며, 그분은 바로 자신의 눈 을뜨게 할수 있다는 믿음을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그는 예수님의 앞에서 ‘디윗의 자손 예수 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소리지릅니다.
그런데 바디매오가 인생의 전환점에서 맞이한 최고의 기회를 향하여 나아가는 바로 그 순간에 방해물이 나타 납니다.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서 간절 하게 외치는 그에게 ‘‘잠잠하라’ 라고 명령합니다. 항상 자신을 멸시하고 조롱하던 그들이 메시아에 대한 확신 을 품고 나아가던 바디매오를 가로막으려 합니다. 사람 들의 제재를 받은 바디매오가 어떻게 합니까? 그는 더욱 크게 소리 지릅니다.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막 10:48). 그는 더욱 크게 소리 지르면서 믿음의 고백을 다 시 쏟아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 이 한 마디의 외침에 바디메오의 메시아를 향한 뜨거운 신앙고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바디매오의 외침을 들으신 예수께서 어떻게 하십니 까? 예수께서는 바디매오가 지르는 소리를 듣고 가던 길 을 멈추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입니다. 바로 이 본문이 끝나는 이후부터 예루살렘 입성 장면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에는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 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고통의 정체를 분명히 알고 계셨 습니다. 주님은그곳에서 당할모욕과모멸과고통을다 알고 계시면서도 그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 십자가를 향해 임중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길가 에서 한 소경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은 예수께서는 멈추 어 서십니다. 메시아의 사역을 기다리며 간절히 외치는 울부짖음을 외면하지 않고 머물러 섭니다. 고통받는 이 를부르시고 그를 향하여 메시아의 사역을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네 믿음이 너를구원하였느니
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막10:52)
바디매오는 그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또한 어둠 속에 있었던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디메오의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 버리면 왠지 섭섭할 것 같습니다. 성경은 '길에서 따르니라' 라는 말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에서 '길가에 앉았다가'로 소개된 ‘그길'이 다시 반복되면서 예수님을 ‘그 길'에서 따라갔다고 기록합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도 길가였고, 마지막도 길가입니다.
우리는 바디매오의 이야기를 읽을 때 맹인이 눈을 뜬 기적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기자가 강 조하려는 기적은 단지 눈먼 자가 보게 되었는 사실만이 아니라, 바디매오가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고, 그리고 앞 으로 살아갈 그 길가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새로운 인생 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를 따라갔다는 사건 자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길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길가에서 어떤 기적을 경험하며살아가고있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길가는 결코 쉬운 곳이 아닙니다. 바디 메오가 온갖 모욕과 멸시를 당했던 그 길가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길가 또한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욕과 멸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 길가에서 좌절을 느낍니 다. 때로는 그 길가에서 하임없이 눈물만 흘리기도 합니 다. 그 길가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버거워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길 가에서 주님이 어디 계시냐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그 길가가 우리에게 기적의 장소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바디매오가 믿음으로 말 미암아 길가에서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 바디매오가 메 시아에 대한 확신으로 길가에서 육적인 눈과 영적인 눈 을 뜰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면 그 길가에서 많은 기적을 경험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걸어가는 그 길이 너 무 좁다고, 왜 꼭 그 길로 가야 하느냐고 비웃을지라도,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주님에 대한 확신만 있다 면 그 길가에서 많은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길 가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길가에 서 우리를 만나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님은 우리가 걷고 있는 그 길가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며, 그 길가에서 예수님을 따르며, 그 길가에서 많은 기적을 경험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길가에서 예수님이 베풀어 주시는 기적 같은 삶을 살아 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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